지난 11월20일 동부시간으로 오후 8시, 오바마 대통령이 15분 동안의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이민행정과 관련한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이민체계가 망가져 있다는 것을 전제로 연설을 시작하면서 미국 멕시코 간 국경 경비 강화로 지난 6년간 밀입국자의 수가 절반 넘게 줄었고 1970년대 이래로 최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며 이민체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자신의 노력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는 이어 입법을 통한 이민개혁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겠지만 공화당이 주도하는 하원의 거부로 이민개혁법안이 통과되지 못한 점을 지적하며 이전 대통령들이 그러했듯 자신도 이민체계를 좀 더 공정하게 만들기 위해 행정명령을 내린다며 그 필요성을 강조했다.
법집행을 위한 정부자원이 가족들보다는 중범들, 아이들보다는 범법자들,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어머니들보다는 갱 단원들에 우선순위를 두고, 이 사회의 안전에 실제적인 위협이 되는 부류를 제거하는 일에 계속해서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도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계속해서 이번 행정명령이 앞으로 불법적으로 입국하는 사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주는 것도 아니며, 미국 시민들이 받는 것과 똑같은 혜택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는 의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며, 이번 행정명령이 뜻하는 것은 해당사항이 있는 사람들을 추방하지 않겠다는 것뿐이라는 점을 확실히 하였다.
500만 불법체류자들에게 추방유예와 합법적인 취업이라는 혜택이 주어질 것이라는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나 이는 이번 행정명령의 한계이기도 하기에 씁쓸한 뒷맛을 감출 수 없다.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 중 이번 일로 의회가 연방 정부를 폐쇄하지 않을 것을 요구할 정도로 공화당의 강한 반발은 이미 예견되어 왔고 앞으로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화당의 반발로 이민개혁은 의회 내 논의 자체가 종식될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듯하다. 공화당을 비롯한 보수파 쪽에서는 이미 연방 정부 폐쇄까지 거론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미국은 또 한 번 매우 불안한 정국을 맞이하게 된 것만은 확실하다.
특히 2013년 연방 정부가 폐쇄되는 사태를 일으키고도 2014년 중간선거에서 연방 상하원의 다수 의석을 확보하는 기염을 토한 공화당이기에 이번에도 정치적 피해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 듯하다.
때문에 이민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이면서도 법안 통과의 열쇠를 쥐고 있는 공화당과 사실상 전면전을 선포한 오바마 행정부의 이번 행보가 과연 불법체류자나 다른 이민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이었는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이민국의 경우, 자체 수입으로 예산을 충당하기 때문에 연방 정부가 폐쇄된다고 하여도 다른 부서들과는 달리 계속해서 운영이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취업이민이나 그 외 다른 비이민 취업비자 신청의 한 부분을 맡고 있는 연방 노동청이나 다른 관련부서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이민수속에 심각한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불법체류자들에게 사면을 부여하는 구제안도 아니고 임시방편으로 추방만 유예해 주는 행정명령을 무리하게 단행함으로써 연방 의회 입법을 통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기회를 잃은 건 아닌지, 그리고 현행 이민법과 절차에 따라 착실하게 이민 수속의 길을 걷고 있던 합법적인 이민자들이 연방 정부 폐쇄로 인한 수속지연으로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이민개혁 지지자의 시각에서 봤을 때, 악한 쪽은 공화당이다. 늘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이 당연함에 익숙해진 미국 시민들은 그러한 현 체제와 체계를 무시하여 분쟁의 빌미를 제공한 쪽을 탓한다. 이것이 환영받을 일을 하고서도 욕을 먹는 오바마 대통령의 처지이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라면 아무쪼록 큰 차질 없이 행정명령을 통한 혜택이라도 제대로 받게 되길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이지만 이민개혁이라는 큰 물고기는 당분간 입질조차 없을 것 같은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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