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견습 기자로 동대문 경찰서에 출입하던 1959년 무렵에는 수사과 사무실에서 피의자들을 심문하던 형사들이 피의자들의 뺨을 때린다든지 구두 발길질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반공이 국시였던 이승만 정부시절이었으니까 북괴의 간첩이나 김일성 추종자들을 다루던 사찰과에서는 기자들의 눈에 띄지 않는 밀실에서 물고문이나 전기 충격 등의 고문이 있었을 것이다.
1961년 5.16 군사혁명 이후에 만들어진 중앙정보부(중정)에서는 간첩과 같은 반국가사범들만이 아니라 군사정권에 대한 반대자들도 연행하여 갖가지 고문과 가혹행위로 자백서를 쓰게 만드는 일이 한 둘이 아니었다. 중정이 위치했던 남산엘 불려갔다 오면 가혹행위와 아울러 사람의 위신을 밑바닥으로 팽개치는 수모를 당해 가족들에게나 간신히 발설하고 쉬쉬하기가 일쑤였다. 서울 법대의 최모 교수는 너무 심한 고문을 당하다가 창문으로 뛰어내려 자살을 했었는데 아이러니는 그의 남동생이 부서는 다르지만 중정에 근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최근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미 상원 정보위원회의 9.11 사태 직후에 있었던 CIA 고문에 대한 보고서 발표를 둘러싼 상반된 반응을 보면서 1964년의 도미 유학 전후에 들었거나 읽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러나 적어도 CIA의 고문 대상이 외국인 테러 용의자들 뿐이었다는 점에서 한국과는 다르다.
다이안 파이스타인(민주) 상원정보위원장이 연설과 함께 발표한 500여 쪽의 보고 요약서는 정말로 충격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3,000여명의 미국인들이 한꺼번에 죽음을 당하고 미국 정부와 금융가의 심장부가 공격을 당해 미국 전체가 불안에 떨던 2001년과 2002년 CIA 등 첩보기관들은 왜 알카에다의 테러 공격 계획을 사전에 발견하지 못했는가라는 지적을 받는 동시에 비슷한 테러의 재발을 방지해야할 책임을 부여받았다. 오사마 빈 라덴의 추종자들을 체포하여 미국 국토나 해외 시설에 대한 테러 계획을 사전에 분쇄하기 위해서는 심문을 해야 되었는데 테러리스트들이 순순히 불 것을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심문 방법을 연구하게 된 것만은 당연하다.
그러나 두 명의 심리학자들이 물고문, 잠 안 재우는 고문(혐의자 한명은 7일 동안 당했다), 옷을 갈기갈기 찢고 얼어 죽기 좋을 만한 냉방시설에 집어넣는 일, 양 손을 묶어 천정에 달아 놓는 고문, 항문으로 물을 집어넣는 일, 관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게 하면서 ‘너는 죽어야 이곳을 나간다’고 위협하는 일 등을 건의했으며 CIA는 그 둘이 만든 회사에 8,100만 달러를 지불하여 120여명의 알카에다 혐의자들을 고문했으며 그중 하나는 죽었다는 내용은 충격 그 자체다. 더군다나 파인스타인의 보고서는 그 같은 방법들로 쓸 만한 정보를 추출하지 못했다고 결론 맺고 있다.
이에 대한 보수 진보 진영의 반응이 대조가 된다. 공화당이나 보수계 미디어들은 전현직 CIA 부장들 및 간부들과 아울러 그 같은 ‘향상된 심문 기술’ 때문에 빈 라덴의 위치를 발견하여 처치하는 등 미국 본토에 대한 테러의 재발을 방지하는데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또 상원의 판도가 바뀌는 1월 이전에 파인스타인이 발표한 것은 당시의 부시대통령을 욕보이기 위한 정치적 꼼수가 있다고도 한다.
한편 민주당이나 진보계 미디어들은 고문 자체가 미국의 가치관과 정반대되는 행동이기 때문에 도덕적인 이유로서, 또 참회하는 의미로도 보고서의 발표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오바마의 입장은 테러가 미국 가치관에배치되는 것이기 때문에 보고서는 일종의 고백과 회개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 같다.
그러나 한 논객의 지적대로 무인비행기 원격 조정으로 테러리스트들을 폭사시키는 오바마의 전쟁 계획 수행 중 부녀자들이나 아이들을 포함한 민간인들이 많이 사망한 사실이앞으로 다른 대통령에 의해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은 어찌할 것인가. 이처럼 대부분의 정치적인 사안에는 한마디로 딱 잘라 말하기 힘든 양면성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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