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가 판사를 설득해 피고의 형량을 최소로 줄이듯 로비스트들은 정치인들을 꼬드겨 고객업체의 이익을 최대로 이끌어낸다. 워싱턴 DC나 올림피아의 정치인들 주위에만 로비스트들이 몰려 있는 게 아니다. 돈이나 권력과 거리가 먼 나도 연간 한 차례 ‘로비스트’들과 마주 앉는다. 막막한 처지의 동포들을 돕기 위해 발로 뛰는 ‘천사표’ 로비스트들이다.
한 로비스트가 “11번 신청자는 40대 조울증 환자예요. 남편과 이혼 후 딸과 살고 있는데 아파트 렌트가 밀려 거리에 나앉을 상황입니다”라고 말하자 옆 로비스트가 “32번 할아버지도 사정이 딱합니다. 아들이 행방불명 돼 무의탁 신세입니다. 교인 집의 창고 방에 기거하고 있는데, 찾아가 보니 방이 냉랭하고 당장 끼니부터 걱정이더라구요”라고 호소한다.
이들 로비스트는 시애틀 한인사회의 대표적 봉사기관인 대한부인회, 한인 생활상담소 및 아시안 상담알선 서비스(ACRS)의 대표자와 실무 에이전트들이다. 한국일보 시애틀 지사가 연말연시 불우이웃 돕기 캠페인으로 모은 한인 긴급기금(Korean Emergency Fund)을 한 푼이라도 더 분배받아 자기 기관에 연루된 딱한 한인들을 도우려고 열심히 로비활동을 벌인다.
그러나 이들의 로비가 호락호락 먹혀들지는 않는다. 매년 2월 초 열리는 성금배정 심사회의에는 KEF 이사 7명이 포진한다. 나도 그 중 한 명이다. 이들은 3개 봉사기관이 신청한 40여명의 수혜 대상자 명단을 놓고 한 사람, 한 사람 짚어가며 꼬치꼬치 따진다. 정부기관의 혜택을 받을 방법이 있다고 판단되는 신청자는 3개 등급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쳐진다.
이사들은 이 기금이 ‘너무나 귀중한 돈’임을 누누이 강조한다. 냉가슴으로 내는 세금과 달리 피처럼 따듯한 동포애가 담겨 있다. 성금 총액을 무조건 40으로 나눠 균등하게 분배할 수 없다. 그래서 3~4시간 마라톤회의를 진행하며 신청자의 상황을 경중에 따라 3등급으로 나눠 성금을 분배한다. 물론 모금된 성금은 한 푼 낭비 없이 불우이웃 돕기에 100% 쓰인다.
한국일보 불우이웃 돕기 캠페인이 올해 어언 29년째이다. 내가 이사로 봉사한지도 벌써 15년째다. 해마다 모금액이 늘어났고 그에 따라 수혜자 수도, 분배금 액수도 늘어났다. 한인 수가 증가했다기보다 동포사랑이 넓어진 결과로 보고 싶다. 자선 모금단체로는 한인사회 최초로 주정부에 비영리기관 등록을 마쳐 성금 기탁자들에게 세금공제 혜택이 주어진다.
대부분 십시일반의 적은 액수인데 한 친지는 캠페인이 시작되기도 전에 찾아와 2,000달러를 익명으로 기탁했다. 성금 기탁자는 개인이든 단체든 대부분 이름이 낯익다. 매년 캠페인에 참여하는 단골이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처럼 자선행위가 몸에 배어 있다.
크리스마스가 캠페인 기간에 끼어 있어서인지 기탁자 중엔 교인과 교회가 많다. 성경은 자선(charity)과 사랑(agape: love)을 동일시한다. 예수는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마 23:40)이라고 가르친다. 사도 요한도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1 3:18)고 촉구한다.
마하트마 간디는 “최소한의 친절한 행동이라도 머리 숙인 1,000명의 기도보다 힘이 있다”고 말했다. 테레사 수녀는 “얼마나 많이 기부하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사랑을 기부금 안에 담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건 그런데, 올해 KEF 모금 진도가 작년만 못해 켕긴다. 작년엔 총 5만7,260달러가 걷혀 41명에게 분배했다. 현재까지 모금액이 2만3,000여달러인데 작년 이맘때보다 1만달러 정도 빠진다. 시애틀타임스는 최고기록이었던 작년 페이스보다도 5만달러가량 앞섰다고 했다. 내년 1월 말까지 KEF 모금액에도 신기록이 세워지기를 로비스트들과 함께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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