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읽었다. 이 책은 박지원이 청나라 건륭황제 70세 생일 축하사절로 가는 박종원의 개인 수행원으로 1780년 5월에 한양을 떠나 북경을 거쳐 열하까지 갔다가 10월에 돌아온 6개월에 걸친 장대한 여행기다.
요동, 심양을 거쳐 북경으로 가는 동안 찌는 듯한 무더위, 무서운 폭우를 만나고 때로 뱃사공의 등에 업혀 강을 건너는 등 수없이 생사를 넘나든다. 겨우 도착한 북경에 황제는 없다. 열하에 있는 피서산장으로 간 황제는 조선사신단을 열하로 불러들이라 하고 다시 말위에서 잠을 자면서 아득한 북쪽땅 열하로 가는 사행단의 총 3,000리가 넘는 여정이 고스란히 기록된 책이다.
날짜를 기록한 다음에 날씨가 적혀있다. 맑음, 폭우가 쏟아지다가 밤에는 갬 등 상세하게 날씨를 기록했을 뿐 아니라 그날 지나간 마을의 이국적 풍물, 기이한 체험, 낯선 이와의 우정 등과 함께 작가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다. 책을 다 읽고 난 다음부터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일기를 쓰고 싶었다.
미국에 와 산지 오래, 지난날의 기록이라고는 취재수첩뿐이다. 지난 1년 간 마음속에 무엇을 담고 살았는지 찾을 길이 없다. 열하일기를 보면 234년 전의 하루 일과가 고스란히 눈에 보이는데 불과 1년 전 일도 기억나지 않으니 새삼 기록의 중요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양띠 해인 을미(乙未)년이 밝았다. 요즘 인기 있는 한국드라마로 ‘가족끼리 왜이래’가 있다. 아버지 차순봉(유동근분)이 3개월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으면서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버킷 리스트’를 만든다.
홀로 수십년간 두부장사하며 세 자녀를 대기업 비서, 의사, 요식업 종사자로 키웠지만 바쁘다면서 얼굴도 제대로 안보여주는 자녀들을 상대로 아버지는 불효소송을 제기한다. 10가지의 버킷 리스트를 하나씩 지워나가는 아버지는 자식들과의 마지막을 준비한다.
원래 ‘버킷 리스트’(bucket list)의 어원은 좀 무섭다. 목에 밧줄을 건 채 디디고 있던 양동이를 걷어차면 바로 죽음이 눈앞이다. 그러니 양동이(bucket)를 걷어차기 전에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을 미리 해보는 것을 이른다.
대부분의 사람들 버킷 리스트를 보면 세계 여행 떠나기, 하나 이상 외국어 완전 익히기, 악기 하나 배워서 연주하기, 자격증 따기, 누군가의 후원자 되기, 마라톤 등 운동하기, 봉사활동 해보기, 번지점프 해보기, 히말라야 올라보기 등이다.
요즘, 한국 교보문고 매장에서 다이어리 판매량이 작년보다 8% 정도 늘었다고 한다. “다이어리는 경기불황일 때 더 많이 팔린다. 아무래도 2015년이 힘들어 보이니까 어떻게 보내야 할 지 올해의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많은 게 아닐까” 하는 관계자의 말이 눈길을 끈다. 스마트폰으로 캘린더나 메모장 같은 앱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종이 다이어리에 버킷 리스트를 써야 꼭 할 것이라는 사람도 많다.
기본적인 버킷 리스트 작성요령으로 스마트(SMART)가 있다. 즉 Specific(구체적으로), Measurable(측정 가능한), Act Oriented(행동지향적인), Reality(현실적인), Time Limited(마감시간이 있는)등 다섯 가지 방법을 따르면 버킷 리스트를 달성시키는 확률이 높다고 한다. 새해에 나만의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보자. 1년이 내게 주어진 시간이라면, 1년만 산다고 생각하면서 올 한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더 이상 미루지 말고 하나씩 해보면서 버킷 리스트를 지워나가자.
적어도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는 동안 자신과 끊임없는 대화를 하게 된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뭐지? 내일 일을 모르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한번 해보고 죽어야지 등등.... 새로운 한 해가 오면 또 이 해의 버킷 리스트를 만들고, 이룬 다음 지워나가고, 그런 날들이 모여 10년, 20년이 되고 그것이 바로 내가 연출하는 내 인생이 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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