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헬기 아달스테인슨• 홍주희씨 가족의 ‘한국어 사랑’
▶ 아빠와 두 아들 한글공부하는 동안 엄마는 한국학교 점심 준비
아름다운 전통 이어지려면 누군가의 헌신과 봉사 뒷받침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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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 대부분 가정은 자녀들의 음악교육, 스포츠활동으로 분주하다. 그러나 헬기 아달스테인슨(Helgi Adalsteinsson 45), 홍주희(46)씨는 두아들 인기(10), 훈이(7)와 함께 오클랜드한국학교로 향한다. 이렇게 토요일마다 온가족이 한국학교에 나간 지 3년이 됐다.
■ 한국가족과 같은 말 쓰고 싶어요
홍주희씨는 어릴때 한국어로 대화하다가 불현듯 자신만 또래아이들과 다른 언어를 쓴다는 것에 이상한 괴리감을 느끼는 아들들을 위해 자신이 영어를 쓰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영어 대화에 편안해했고 안정감을 얻는 듯했다. 그러나 홍주희씨는 한국어를 점점 잊어버리는 아들들의 모습에 초조해졌다. 엄마의 나라 말인 한국어를 포기하면 한국에 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유대관계는 이어졌다 해도 사실상 끊어진 것과 다름없다는 불안함이 엄습했다.
그래서 그는 튜터를 모셔 두 아들에게 한국어 레슨을 시켰지만 동기부여나 관심유발면에서 소극적이었고 왜 자신이 굳이 한국어를 공부해야만 하는지 거부감마저 갖고 있는 듯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지인에게 오클랜드한국학교를 소개받고 한국학교 문턱을 넘었다. 소속감을 못느끼고 항상 겉돌던 아이들이 자기에게 신경써주는 한국학교의 가족적인 분위기를 좋아하면서 덩달아 한국어 교육에 대한 호응도 높아졌다. 한국학교 선생님을 통해 선생님 가족과도 친하게 되고 선생님 남편에게 테니스도 배우면서 한국학교에서 맺어진 인연들이 인기 훈이 가족들의 생활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고 있다.
■ 한국학교 주제로 이야기할 때 즐거워요
큰아들 인기는 “한국에 갈 때마다 아는 단어가 충분하지 않아 항상 아기 취급당하는게 좀 슬프지만 좀더 한국어를 잘하고 싶다”면서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들과 전화로 통화할 때 몇마디라도 한국말로 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인기는 “가족이라면 같은 언어로 소통하는게 중요하다”면서 “어릴 때는 할머니를 할미아라고 부르면서 잘 따랐고 지금도 할머니와 한국말로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다”고 웃었다.
그는 “한국 주소는 유난히 길어 혼란스러울 때가 많지만 경주 등 역사적 도시와 박물관을 둘러보는 것을 좋아한다”면서 “가끔 한국학교에 오는 것이 싫기도 하고 좋기도 하지만 온가족이 다니니까 더 재미있고 한국학교를 주제로 가족끼리 할 이야기들이 많다”고 말했다.
둘째아들 훈이는 “한국어로 동물소리를 흉내내는 의성어들을 배울 때 신나고 한국학교에서 하는 공작시간이 즐겁다”면서 “얼마전 연꽃잎 속에서 나오는 효녀심청을 만들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꼽았다.
또 한국어를 배우면 ‘코난’ 같은 한국만화영화를 볼 수 있고 김밥, 떡국, 미역국 등 한국음식을 한국학교에서 점심으로 먹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자신의 속맘을 표현했다.
홍주희씨는 “한국문화에 동화되지 못하고 한국어도 잘 하지 못하는 한인 2세 성인들을 보면 자긍심이 부족한 듯 보였다”면서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이나 자긍심은 수업을 통해 가르쳐준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서 저절로 흡수하고 생겨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어에 노출되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그런 점에서 한국학교만한 환경이 없다고 강조했다.
UC산타바라라에서 유학온 홍주희씨와 만나 결혼한 아빠 아달스타인슨(구글 근무)씨는 " 주말에 모두 한국학교에 가면 나만 외톨이인 것 같아 한국어를 배우기로 했다”면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성인반 학생들과 어울리다 보면 배우는 것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가족간의 정이 두텁고 특히 정치적인 성향이 강한 것이 인상적”이라면서 “처음엔 한국이 복잡해서 정신없었지만 지금은 지하철도 혼자 타고 다닐 정도가 됐다”고 자랑했다.
그는 “특히 두아들의 한국학교 숙제를 봐줄 때 가족간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 같다”면서 “두아들보다 항상 우위의 한국어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욕심이 살짝 있다”고 귀여운 승부욕을 보였다.
■ 우리 엄마가 한국학교 점심해줘요
이렇게 남편과 두아들이 한국어 교육을 받을 동안 홍주희씨는 한국학교 학생들의 점심을 준비한다. SFSU 영양학(dietetics) 학사과정중인 그는 이시간 오클랜드연합감리교회 여선교회 봉사자들과 100명분의 음식을 정성껏 마련한다.
홍씨는 “급변하는 사회를 따라잡느라 정신이 고갈되고 비만에 쉽게 걸린다”면서 “어떤 음식을 섭취하느냐에 따라 정신이 지배를 받는다”고 밝혔다. 그는 “사람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나혼자만 자식을 잘 키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면서 “내가 가진 지식을 사회와 나누려 한다”는 깊은 뜻을 내비쳤다.
그는 알라메다 공중보건국 영양사 돕기, 오클랜드 아동병원 심장학 영양프로그램에서도 봉사활동을 펼쳤으며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을 앓는 스패니시 아동들 상담에도 주력했다. 홍씨는 먼저 한국학교에서 과일, 야채들이 빠지지 않는 저지방 식단으로 바꿨다. 또 한국음식에도 매운맛을 덜어내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한국적인 건강식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그랬더니 아이들의 반응도 좋고 더욱이 음식쓰레기가 반으로 줄어드는 성과를 냈다.
홍주희씨는 “한국학교는 한글교육만 받으러 오는 것이 아니다”면서 “한국의 전통이 살아숨쉬고 전수되는 곳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 아름다운 전통을 잇는 것은 누군가 한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면서 “그 전통에 매료된 사람들의 헌신과 봉사가 뒤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엄마의 입장에서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도 좋겠지만 단지 언어 전달만 목표가 되는 한국어 교육은 문화의 이중성을 유발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면서 “아무리 자기가 한국인이라고 생각해도 막상 한국에 가면 갑자기 외국인이 되어버리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홍씨는 “집에서는 한국인, 밖에서는 미국인이 되는 갈등보다는 항상 두가지를 공유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제3의 정체성이 필요하다”면서 두개의 문화가 적절히 두아들의 내면 안에 공존하길 바란다는 마음을 전했다. 새해에도 홍씨 가족의 한국어사랑은 지속될 예정이다.
<신영주 기자>
헬기 아달스테인슨과 홍주희씨가 두아들과 함께 한국어 동화책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왼쪽부터 큰아들 인기, 아빠 아달스테인슨씨, 둘째아들 훈이, 엄마 홍주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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