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몬트레이 지역 한인 스왑밋 3곳을 찾아간다
▶ 살리나스 ‘알리살 인도어 스왑밋’* ‘DC 패션마트’
알리살 인도어 스왑밋에서 의류업소를 운영하는 메간 박씨(오른쪽)가 손님들에게 최신 유행 옷들을 소개해 주고 있다.
DC 패션마트에서 업소를 운영하는 한인들이 연말을 맞아 한자리에 모여 애환과 희망을 이야기 했다.
스왓슨빌에는 ‘디스카운트 몰’, 3곳에 50여 한인업소
주민 75%가 히스패닉계***이웃처럼 가족처럼 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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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왑밋! 그곳에 가면 마치 한국의 재래시장, 남대문 시장처럼 아직도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다. 흙먼지를 뒤집어 써서 초라해 보이는 농부가 뙤약볕 아래서 어렵게 번 돈을 가지고 가족과 함께 와서 이것저것 사 주며 행복해 하는 표정, 고향으로 돌아가는 농부가 가족들에게 안길 선물을 진지하게 고르는 모습, 부모 손을 잡고 장난감을 사던 아이가 이제는 커서 자기 옷을 고르는 것을 보고 대견해 하는 주인의 모습, 아리따운 히스패닉 처녀가 자신의 몸을 단장할 속옷과 드레스를 고르는 모습. 계산기를 들고 손님들과 서투른 스패니쉬로 가격 흥정을 하는 주인, 새로 해온 물건을 진열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업주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속으로 따스함이 저절로 스며드는 것을 느낀다.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지난 23일 오후 살리나스시에 위치한 ‘알리살 인도어 스왑밋’과’DC 패션 마트(윌리암스 스압밋)를 찾았다. 연말연시를 앞두고 손님들로 붐빌 것이라는 당초 기대와는 달리 다소 한산한 분위기여서 의외였다. “과거에는 연말이면 가족들 선물을 사려는 손님들로 붐볐으나, 최근에는 월마트, 지역 쇼핑몰 등 대형 소매점들이 저가의 물품으로 가격 공세에 나서는데다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대폭 할인행사로 스왑밋 주 고객인 히스패닉들도 그쪽으로 몰리기 때문에 스왑밋 경기가 예전 같지 않다”라는 것이 이곳에서 매장을 운영하는 업주들의 푸념 섞인 설명이다.
몬트레이 지역에 스왑밋이 처음 생긴 것은 LA 폭동이 벌어진 직후인 1992년 11월. LA에서 사업을 하던 김중식 대표가 왓슨빌시 다운타운에 위치한 3만 스퀘어피트 규모의 건물을 임대해‘왓슨빌 디스카운트 몰’(347 Rodriguez Street)을 열고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처음 스왑밋을 열었을 때 시에서는 대환영이었다고 한다. 당시 왓슨빌 시에는 이런 쇼핑몰이 없어서 주민들이 쇼핑하는데 큰 불편을 겪고 있었고, 일자리 창출은 물론 지역경제에도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왓슨빌 스왑밋에서 오랫동안 업소를 운영해온 한 업주는“스왑밋의 주 고객인 히스패닉들은 당시 저축에 대한 개념이 부족해서 돈을 벌면 그날로 바로 써버리는 경향이 있었어요. 또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흥정도 없이 바로 사는데다가 가족들과 함께 와서 쇼핑을 했기 때문에 15년 전까지만 해도 스왑밋에서 장사하는 업주 대부분이 돈을 긁어 모은다고 할 정도로 많이 벌었지요”라면서 스왑밋이 한창 호황을 누리던 당시를 설명했다.
왓슨빌 스왑밋의 성공을 계기로 지난 1994년에 살리나스 시에 히스패닉 밀집 지역인 이스트 알리살 거리에 ‘살리나스 인도어 스왑밋’(636 E. Alisal Street)을 당시 대니얼 권 대표가 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001년에 살리나스 윌리암스 거리에 ‘DC 패션 마트’(620 Williams Road)가 오픈했다. (살리나스 인도어 스왑밋은 이 지역 한인들 사이에 통상 알리살 스왑밋으로, DC 패션 마트는 윌리암스 스왑밋으로 불린다).
왓슨빌과 살리나스 두 도시 모두 주민의 75% 이상(왓슨빌 81%, 살리나스 75%)이 히스패닉이고, 또 딸기ㆍ상추ㆍ시금치 등의 농작물 생산이 지역의 주요 산업기반이어서 철 따라 이동해 이곳으로 오는 히스패닉 농부와 가족들의 수도 상당하다.
그래서 농번기가 시작하는 봄부터 가을까지, 그리고 연말에는 스왑밋의 경기가 좋고 1월부터 3월까지는 매출이 크게 떨어진다. 더욱이 최근 수년간 가주에 지속된 가뭄의 영향으로 작황이 좋지 않자 유입 인력이 크게 줄어 스왑밋이 받는 타격이 더욱 크다. 남가주의 대형 인도어 스왑밋에 비하면 규모는 작지만 세 곳 모두 3만 스퀘어피트 내외의 건물 안에 입점한 점포수는 각각 30여 개 내외. 여느 스왑밋과 마찬가지로 금은방, 남성ㆍ여성 의류, 스포츠 의류, 아동복, 운동화, 남성ㆍ여성화, 악세사리 등의 품목을 취급한다.
스왑밋에서 업소를 운영하는 한인들은 왓슨빌 스왑밋이 32개 업소 중 18명, 알리살 스왑밋은 29개 업소 중 12명, 윌리암스 스왑밋은 30개 업소 중 19명으로 절반 이상이 한인이다.
알리살 스왑밋도 과거에는 30 여개 업소 중 21명이 한인 업주였지만, 지난 2008년 2월 1일 아침에 발생한 화재로 건물이 전소되는 사고가 발생해 졸지에 삶의 터전을 잃게 되면서 절반 가까이 이곳을 떠났다. 당시 이곳에서 의류점을 하다가 화재수습대책위원장을 맡았던 대니얼 심씨는“그 때 모두들 절망적이었죠. 일 년 전부터 불어 닥친 불황에다 정부의 불체자 단속안 발표로 손님들 발길이 많이 줄어 걱정하고 있던 상황에서 불까지 나 모든 것을 잃었으니 너무 황당해 눈물도 나오지 않았어요”라고 당시의 참담했던 심경을 말하면서 “그때 너무 힘든 상황을 겪은 터라 이제는 어떠한 어려움도 견딜 수 있을 것 같네요. 어떤 상황이든 이겨내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그 당시 경험했습니다.”며 당시 화재를 겪고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업주가 당시의 심정을 덧붙였다화재가 난지 10개월 만에 알리살 스왑밋은 화재 복구와 내부단장을 새로이 하고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고, 이때부터 대니얼 심씨가 매니저로 스왑밋을 운영, 관리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 쉬는 날을 제외하곤 아침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영업하는 스왑밋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업소가 배치된 구조 때문에 하루 종일 마주 보고 지내다 보니 때로는 경쟁을 하지만, 대부분 친형제,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며, 경조사를 더 잘 챙기는 등 인화가 잘 되고 있다고 한다. 출근 해서 영업 준비를 마치고 나면, 삼삼오오 모여 커피타임을 갖고 가족 얘기 등 소소한 일상을 얘기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또 점심때는 각자 싸온 음식과 반찬을 나누며 식사를 같이 하기도 한다.
지난 27일 아침에도 알리살 스왑밋에서 일하는 한인 업주 대여섯 명이 모여 차를 나누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의 소망을 얘기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스왑밋을 하게 된 사연은 각자 다르다.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며 미국에 이민 와서 처음으로 사업을 시작한 사람, 주류기업에 취직을 위해 노력했지만 이민자에게 취업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고, 초조한 마음으로 지내다 사업을 시작한 사람, 직장생활을 하다가 은퇴를 하고 일도 더할 겸 나만의 비즈니스를 갖고 싶어 시작한 사람, 이민생활 10여 년 동안 여러 사업을 하다가 몇 차례 사업 실패 후 수년 전 부터 스왑밋에서 업소를 운영하는 사람. 어릴 적부터 스왑밋을 운영하는 부모 손을 잡고 나와 업소를 놀이터 삼아 놀던 어린 아이가 어른이 되어 업소를 운영하게 된 사람, 스왑밋을 통해 기반을 쌓고 주류사회로 진출을 계획하는 사람 등 다양하다.
애환과 추억들이 가득한 스왑밋에서 그들이 힘을 다시 얻는 것은 자녀들의 이야기였다. 당일치기로 LA를 오가며 물건을 구매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는 날 없이 열심히 살아가고 강도를 조심하기 위해 매일 집에 가는 길을 달리하고 때로는 먼길을 돌아서 오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란 자녀들 대부분은 일찍 철이 들어서 인지 학생은 학생의 본연의 자세로, 직장인은 직장인으로써 최선을 다해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의사로 변호사로, 구글, 인텔 같은 회사에 또는 경찰 공무원으로 각자의 자리를 잘 찾아가는 자식의 모습을 보며 아무리 힘들어도 또 다시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그들이 살아온 삶과 인생 경험은 다 다르지만, 이곳에서는 같은 경험, 같은 꿈과 희망을 갖고 있다.
“스왑밋 사람들은 마치 한배를 탄 공동 운명체와 같아요. 흥하면 같이 흥하고, 망하면 같이 망하고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지난 번 화재처럼 어느 한 집만 피해를 보는 게 아니라 전체가 다 피해를 보는 것과 같죠. 그래서 남의 일도 마치 내일인 것처럼 서로 돌보고 돕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주 고객인 히스패닉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고, 그래서 돈을 쓸 여력이 없고, 이젠 멕시칸들이 저축에 대한 개념도 생기고, 월마트 같은 대형소매점으로 눈을 돌리기 때문에 스왑밋이 다른 비즈니스와 달리 심하게 불황을 겪는 거 같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정부의 강경한 이민정책도 한 몫을 하고 있지 않나 싶구요. 하지만 우리 업주들이 손님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갖고, 발빠르게 고객이 원하는 물건을 제공하고 업주와 고객사이에서 서로가 믿을 수 있는 신뢰가 쌓여갈 때, 결국 스왑밋에 올 사람은 오지 않겠어요.”라고 스왑밋의 전망을 낙관적으로 설명했다.
이들의 새해 바램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그저 경기가 풀려서 소비심리가 다시 살아나고 손님들 구미를 당길 수 있는 제품을 발빠르게 구비해 줄어든 손님 발길이 다시 잦아지길 바랄 뿐이다. 마침 올 후반기부터 미국 경기가 되살아나고, 유가도 하락해 소비심리가 되살아나는 조짐이 보이고 있어 새해를 맞아 스왑밋도 찾아오는 손님들로 다시 살아 숨 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과거 전성기 때와 같은 호황은 기대하지 않지만, 먹고 살고 자식 교육을 충분히 시킬 만큼은 벌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성공한 많은 한인들이 스왑밋에서 시작을 했던 것처럼 아메리칸 드림이 언젠가는 이뤄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라며 스왑밋 상인들은 새해 소망을 전했다.
DC 패션마트 유정근 대표는 “지금 스왑밋이 하향길이라고 하지만,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전 아직도 자본금이 충분치 않은 서민들에게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의 근면성실함으로 하면 못할 것이 없다고 봅니다”라고 말하듯 스왑밋에서 희망을 본다.
스왑밋은 이민 초창기 한인들의 ‘아메리칸 드림’이 꽃 핀 곳이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즐겨 입는 프리미엄 진 ‘씨위(Siwy)’, ‘레이븐(Raven)’을 생산하고 있는 크리스 박 대표와 가방 전문업체 에베레스트 트레이딩 박병철 대표 등 미국서 성공했다고 하는 한인들은 스왑밋부터 시작을 했다.
한인들의 이민 역사가 깊어지면서 스왑밋이 잊혀진 듯하지만 여전히 스왑밋에서 성공을 꿈꾸는 이가 있고 또 그 꿈을 이루어 나가기에 우리는 오늘도 희망을 노래한다.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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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어 스왑밋이란
건물안에 있는 벼룩시장이 컨셉트
84년 LA 한인이 처음으로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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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어 스왑밋은 특정 비즈니스 종류가 아니고 여러 스몰 비즈니스들이 한 곳에 모여 운영되는 독특한 형태의 구성체로, 백화점 혹은 큰 지역 쇼핑몰처럼 건물 내에 작은 공간을 각 개인들이 빌려서 독립적으로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한 스왑밋 내에는 많게는 50개~80개 정도의 작은 소매점들이 있으며, 크기가 작은 곳은 30개~40개 정도의 소매점을 보유하고 있다. 주요 업종은 인기가 가장 좋은 금은방에서부터 신발, 남녀 의류, 아동복, 내의, 장난감, 전자제품, 스낵 및 음료수, 액세서리, 가방 등이다.
거의 모든 스왑밋이 히스패닉 등 저소득층을 주요 타겟으로 하고 있는데, 이들 대부분이 남미에서 국경을 넘어온 불법체류자인데다 농업, 건설 노동 등 일용직에 종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소득이 낮고, 영어구사도 어려워 백화점이나 지역 쇼핑몰에서 소외되어 왔기 때문이다.
인도어 스왑밋의 시초는 1984년 남가주에 한인이 창업한 ‘캄튼 스왑밋’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어 스왑밋이 생기기 전에는 주차장, 야외극장 등의 공터에서 주말에 열리는 플리마켓이나 아웃도어 스왑밋이 있었다.
백화점, 지역 쇼핑몰이나 일반 소매점을 이용하기 어려운 히스패닉이나 흑인 등 저소득층이 아웃도어 스왑밋을 주로 찾는 것을 보고, 이들이 주말뿐 아니라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동대문이나 남대문 시장 같은 형태의 상설 매장을 착안하게 된 것이다.
캄튼 스왑밋이 최초로 문을 열자 그 인기는 선풍적이었다. 이후 크고 작은 스왑밋이 90년대 초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하다가 LA 폭동과 불황으로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2000년대 들어 성장이 거의 멈춘 상태이다. 현재 가주 지역에 300여 개의 스왑밋이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이중 절반 정도는 한인이 소유하고 있다. 약 12,000명이 이 업종에 종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어 스왑밋이 하양길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한인경제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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