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스틴, 샌 안토니오 & 휴스톤
▶ 끝없는 텍사스 벌판, 애절한 집시의 바이올린 퍼져
오스틴에 위치한 주청사의 모습
샌 안토니오 리버워크 전경
청사 앞에 텍사스 지배했던 나라의 깃발 6개 나부껴
샌 안토니오 강따라 현대와 과거의 건물들이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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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간데없는 텍사스 벌판, 너무나 아름다워 슬프기 조차한 저녁노을은 어두움에 쫓겨 회색 빛 울음을 토하고 있는데 애마 가득히 집시의 애절한 바이올린(Gypsy Violin)이 하늘 끝까지 퍼져 나간다. 그러나 난 그 집시의 가슴을 얼마나 같은 느낌으로 가고 있을까. 헝가리 인들의 불신과 냉대, 사회 가장 밑바닥 가난을 등에 져야 했던 집시, 찌가니(Zigany)! 이런 애절한 음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을 생각하며 달라스에서 남쪽으로 2시간 달려 텍사스 주도 오스틴(Austin)을 만난다.
오스틴 텍사스 주 청사 앞을 가보면 6개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영어로 Six Flags over Texas라고 한다. 텍사스를 지배했던 나라들 – 프랑스, 스페인, 멕시코, 텍사스 공화국, 성조기 그리고 남부 연방기이다. 1845년 미합중국(The United States)의 28번째 주로 편입됐지만 독립 전쟁 때 남부 연방(The Confederacy)에 속했다가 패배한 뒤 다시 합중국의 주가 되었다.
스페인은 영국 청교도가 미국 동부 연안에 도착하기 100여 년 전에 텍사스 지역의 소유권을 처음으로 주장했으나 잠시 프랑스 소유로 넘어갔다. 그러나 프랑스의 복잡한 자국 문제로 다시 스페인 통치하에 놓이게 된다. 그 후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멕시코 령이 된다.
따라서 텍사스는 이질적인 두 문화 즉 멕시코에 근거한 히스패닉(Hispanic) 문화와 또 하나는 미국의 이주 집단인 영국 청교도(Anglo) 문화가 존재한다. 하지만 두 문화는 서로 융화되지 않고 마침내 1836년 Anglo Texan은 반란을 일으켰으며 결국 승리를 거둔 후 텍사스는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미국인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알라모(Alamo) 전투가 그때 일어난다.
오스틴이란 이름은 식민지 건설을 성공적으로 이룩하여 “Father of Texas”라 불리는 Stephen Austin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주도라 그런지 도시가 질서 있고 정리가 잘 되어있는 느낌을 준다.
“세계 라이브 음악의 수도”라 불리기도 할 만큼 6, 70년대 많은 음악가들의 무대가 되었으며 세계 모든 종류의 음악, 블루스 컨트리 레게 재즈 스윙 락 등을 즐길 수 있다. 텍사스 대학이 있는 이곳은 삼성 반도체를 비롯해 Intel, Dell등 IT 산업체가 많이 분포되어 있어 Silicon Hill이라 부르기도 한다. 삼선전자 반도체 공장 앞길은 ‘삼성대로(Samsung Blvd)’로 명명, 가슴이 뿌듯해진다.
오스틴에서 한 시간 더 남쪽으로 내려오면 텍사스에서 두번째 큰 도시 샌 안토니오(San Antonio)를 만나게 된다. 우리가 도착할 때가 마침 NBA 챔피언 결승 5차전이 벌어지는 날이라 시청 청사엔 온통 Spurs 응원 포스터로 뒤덥혀 있어 미국인의 스포츠 사랑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사실은 개인적으론 열렬한 마이아미 Heat Fan이라 뭐라 표현 할 수도 없고 ㅎㅎ빌딩 사이를 가로지르는 샌 안토니오 강을 따라 현대 도시미가 물씬 풍기는 고층빌딩과 옛 자취가 남아있는 복고풍의 건물들이 멋있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샌 안토니오는 1718년 스페인군이 군사 요새로 건설한 도시다.
시청 주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샌 안토니오 랜드마크인 San Fernando Cathedral Church인데 카나리아 제도에서 건너온 스페인 이주자들이 1731년에 세운 것으로 미국에 남아있는 성당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한다. 성당에서 몇 블록 건너편에 텍사스 사람들의 젖줄, 샌 안토니오 강의 도심 구간을 개발한 리버 워크(River Walk)를 볼 수 있는데 리버 워크는 도시의 골칫덩이가 효자로 탈바꿈한 대표적인 성공사례이다.
걸핏하면 범람한 강물이 도시를 덮쳤고 주변을 우범지대로 만들었던 물길을 개발해 댐, 수로와 더불어 산책로, 다양한 모양의 다리를 만들고 나무를 심으면서 도심의 휴식과 소비, 관광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진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지금은 샌 안토니오 최고의 명소로 자리 잡아 그 물길을 따라 우리에겐 영화로 더 알려진 그 유명한 알라모 요새 유적을 비롯한 도심의 기념물, 박물관 극장 그리고 유명 레스토랑들과 호텔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베니스 풍의 유람선도 즐길 수 있어 한 해에 2천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도시를 찾고 있다. 이곳 리버 워크가 바로 서울의 자랑거리 청계천 복원의 모델이 되었다는 건 다 아는 사실.
알라모 전도소(Mission Alamo)는 1718년 샌 안토니오강 인근에 지워진 수도사들이 쓰던 기도소로서 거의 폐허가 되어있던 상태였는데 186명의 텍사스 방어군이 산타 안나 장군이 이끄는 6천명에 이르는 강력한 멕시코 군대와 맞서 싸우다 3명만 살아남고 전멸한 전쟁터 -- 텍사스군 샘 휴스턴 장군에게는 장병과 보급품을 모을 수 있는 시간을 얻게 되어 6주 후에 멕시코군을 물리치고 텍사스의 독립을 이루어 낼 수 있는 전기가 되었다.
13일간 포위한 후 단 한 명도 살려두지 말라는 장군 산타 안나의 잔인성은 많은 텍산들을 분노하게 하여 그들을 군대에 입대케 했으며 복수심에 불탄 텍산들은 전력 면에서 열세인데도 불구하고 멕시코군을 격퇴시켰다. 엄청난 희생과 용맹의 현장 알라모는 일찍이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자유의 상징이었으며 텍사스 독립의 상징적인 장소로 남아있다.
생각보다는 작은 규모의 유적지였지만 오래 전에 본 영화 알라모, 이곳에서 장렬하게 최후를 맞는 죤 웨인의 모습이 오버 랩되어 아직도 그때의 함성 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글∙사진 성기왕 통신원>
알라모(Alamo) 전사
-장 금자
아무런 욕심 내지 않았다
푸른 창공의 독수리 되어
대지 흔드는 말발굽 되어
네 부족 내 조상만 위해 살았네
한 줄기 빗방울에, 바람에
흩어져 있는 바위 한 점에도
머리 숙여 경배하며
하늘 우러러 살아왔네
천년 지켜온 이 땅
어느 날 화약연기 바람 섞이고
낯선이의 웃음 강물 적시워
가슴 찢는 포효 속에
형제들 떠나갔네
그 위대했던 알라모 전사들
찬란한 햇살 되어
오늘 알라모 요새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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