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송 마틴 와일드플라워 린넨 대표
▶ “남과 경쟁 말고 나와 치열히 경쟁해라”
미 1% 상류층, 유명스타 결혼ㆍ파티 디자인
오프라 윈프리ㆍ엘튼 존ㆍ백악관 파티
2011 포브스지 선정 올해의 여성 경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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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명 인사나 최상류층의 웨딩과 파티를 책임지는 이 분야의 ‘핫’한 컨설턴트 회사를 꼽는다면 ‘와일드플라워 린넨(WildflowerLinen)’이 몇 손가락 안에 든다.
이 회사는 오바마 대통령의 백악관 파티를비롯해 오프라 윈프리, 엘튼 존, 제니퍼 로페즈, 코비 브라이언트 등 세계적인 헐리웃 배우와 스포츠 스타들을 비롯해 상류층 파티를맡고 있다.
또한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시상식, 베니스, 선댄스 영화제의 월드 프리미어 파티 디자인을 책임지는 등 개인과 품격이 강조되는행사에는 와일드플라워 린넨이 빠지지 않는다.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해 한국 등 전 세계총 7개 지점을 두고 있는 와일드플라워 린넨.
이곳의 대표는 한인 1세 영송 마틴씨이다.
영화 ‘트와일라잇-브레이킹 던’ 주인공들의극중 로맨틱한 숲 속 결혼식 디자인도 그의손에서 탄생했다. 미 파슨스 디자인스쿨 오티스미술대학 수석강사이기도 한 그는 2011년포브스지 ‘올해의 여성 경제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영송 마틴씨가 세계적 파티 디자이너로 성공하기까지 과정과 자신만의 철학, 신념 등을 인터뷰를 통해 담았다.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나.
▷꿈이 여러 가지 많았다. 그 중 노래를 잘못했지만 성악가가 꿈이었다. 어릴 때 바른말을 잘해서 어른들이 국회로 보내라는 농담을 하곤 했다. 그러고 보면 손으로 뭐 만드는걸하고 싶었다. 지금 돌아보니 하고 싶은걸하고 있더라.
◆성격은 어땠나. 내성적이었나. 외향적이었나?
▷초등학교 통지표에 ‘굉장히 명랑하고 쾌활하지만 소극적이다’는 말이 쓰여 있어 충격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난 눈도 잘 못마주치고, 뒤에 숨어있고, 사람 많은 자리에서 소극적인 부끄럼을 많이 타는 소녀였다.
하지만 내가 사는 낯익은 동네, 골목에만 들어오면 골목대장 노릇을 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미국에 언제 왔고, 처음에 어떤 일을 했나.
▷1979년 당시 21살 때 기회가 생겨 혼자미국에 오게 됐다. 버클리에 살면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했다. 세탁소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어 학비를 냈다. 많을 때는 한꺼번에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다. 졸업 후 패션계에서 알려진 유명회사인 ‘거니삭’(gunne sax)에 입사했고 정해진 틀에 맞춰 하루하루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오클랜드에 있는 회사에 어시스트 디자이너 자리가 있다는 걸 알고 원서를내고 인터뷰를 보러 갔다. 24가였는데 우범지대에 당시 마약을 파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었다. 근무 환경도 열악하고 한마디로 무서웠다. 하지만 가능성이 보였다. 열심히 일해서 1979년 마침내 내 이름을 딴 ‘YS’라는 패션브랜드를 론칭했고 4개의 매장을 열었다.
◆현재 회사를 일구기까지 과정을 들려 달라.
▷90년대 초반 패션산업에 M&A(기업 인수합병) 바람이 일면서 무서워졌고 재미가 없어졌다. 10년 간 회사를 이끌었고 하면 할수록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화성인과지구인처럼 언어가 다르게 느껴졌다. 회의와갈등이 심해져 나중에는 그동안 쌓아온 일들이 필요 없게 느껴졌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조카의 결혼식 이벤트를 설계하면서 흥미를 느꼈다. 41세에 현재의 회사를 차리면서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했다.
◆현 분야에서 최고가 됐는데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고, 그 순간순간을 어떻게 견뎌냈나.
▷항상 느끼지만 달라진 건 없다. 여전히인종차별, 성차별이 존재한다. 이 분야도 마찬가지다. 아시안 악센트에 자그만 체구의 동양인 여성에게는 더더욱 힘들었다. 하지만 탑이되려고 하기보다 열심히 했고 인정을 받았다.
인정받으려고 일했다기보다 내 자신을 위해일했다. 지금도 예전에 살던 집에 살고 있고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한 건 없다. 직원들에게 항상 “1등은 되기 쉽다”고 말한다. 학교에서든 어디서든 누구나 한번쯤은 1등을 경험해 봤을 거기 때문이다. 한 번만 잘하면 1등이 된다. 하지만 1등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키기는 어렵다. 무수한 노력이 필요하다. “계속1등 하자." 그게 나와 우리 회사의 달라지지않는 목표고 끌고 나가는 힘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웨딩과 파티는 무엇이며어떤 철학이나 메시지를 작품에 담고 싶은가.
▷웨딩은 누구에게나 일생에 있어서 최대잔치다. 간단히 말하면 틀에 박힌 결혼식이아닌 의미 있는 결혼식을 만들어주자는 게내 생각이다. 그리고 난 예술 작품을 만드는사람이 아니다. 소품을 이용해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을 만들어주는 ‘고용된 하녀’다. 작품을 만들 만한 여유가 없다. 난 상품을 만드는 사람이다. 고용된 상태에서 신랑신부가 원하는 것을 듣고 해석하고 도와줘야 한다. 이들의 마음을 읽어내 디자인으로 표현하는 게내가 맡은 일이다.
◆오프라 윈프리 등 유명 인사들이 왜 당신의 디자인에 매료됐다고 생각하나.
▷비즈니스를 하고 상품을 만들지만 그 안에 진정성과 예술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유명미술대학 출신들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성스럽게 한 땀 한 땀 옷을 꿰매만들었던 패션 디자이너의 경험도 한몫했다.
◆유명인의 파티나 결혼, 영화 등과 관련한에피소드를 소개해 달라.
▷베버리힐즈 아이들(beverly hills 90210)의 여자 주인공이었던 섀넌 도허티의 결혼식이 기억에 남는다. 처음에는 그녀의 평판이좋지 않아 일을 맡기 싫어 직원을 보냈다. 꼭내가 와야 한다고 설득해 말리브의 집으로 갔고, 우여곡절 끝에 직접 대화를 나누면서 괜찮은 사람이구나 라는 것을 느꼈던 경험이있다.
◆자신의 인생을 뒤돌아보면.
▷내 인생이 사랑스럽다. 모든 힘들었던 것, 가난까지도 말이다. 가난은 하고 싶은 것에 제약을 둬 불편했지만 그 불편함이 나를 예술성 있게 만들어줬다. 좋은 집도 필요 없다. 지금도 바늘주고 옷을 꿰매라고 하면 행복하다.
◆여전히 도전과 모험을 즐기나. 앞으로 꿈이 있다면.
▷앞으로가 아닌 매일 목표가 있다. 남들과 다른 회사를 운영하고 싶고, 미 50개주 전체에 지점을 두고 싶다. 중상층도 우리 제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싶기 때문이다. 5월에는 텍사스에도 오픈한다.
◆이 시대를 사는 도전하고, 꿈꾸고, 때론 실패하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해 달라.
▷누구나 다 똑같이 21세기를 살고 있고 하루하루를 산다.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본다. 컵에 물이 반이 있는 것을 보고 어떤 사람은 “반밖에 안 남았다” , 또 다른 이는 “아직 반이나 남았다”라고 생각한다. 걱정하고 근심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
태양은 또 뜨고 진다. "굳이 남과 비교하지마라” 이게 내 철학이다. 남과 경쟁하지 말고 오늘을 살고 있는 나와 치열하게 경쟁하란 뜻이다. 어제 보다 못한 나, 잘한 내가 중요하다.
어제 보다 잘한 나를 자랑스러워해라. 치열하게 놀고, 치열하게 공부하고 모든 것을 치열하게 해라. 그리고 이 모든 걸 날 위해 해라.
<김판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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