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예선 소설가 "리더십은 자리가 아닌 존재 그 자체의 무게감"
▶ “사랑보다 더 크고 위대한 리더십은 없을 것"
201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마리오 바가스 요사와 지난 1977 년 국제 PEN 오스트리아 대회에서 만나 기념촬영에 임하고 있는 신예선 소설가.
1971년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파블로 네루다에 대해 뉴욕 PEN이 주최가 되어 1972년 수상 축하연을 개최했었다. 이 축하 연에서 네루다와 함께 기념촬영에 임하고 있는 신예선 소설가
“살아생전 북가주에 문학관 설립이 또 다른 꿈"
노벨문학상 수상자들과 막역한 관계 유지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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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는 앞지른다 또는 선도한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가운데 집단의 통일성을 유지하고 구성원의행동에 여러 가지 방향을 제시하는인물이다. 또한 리더십은 모든 조직활동에 동기를 부여하고 다양한 집단 활동이 일정한 목표로 향하도록일체감을 조성하는 기능이며, 구성원들이 개별적인 발전을 이룩할 수 있도록 각 단체 속에서 서로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여성 리더십이란 수직적이고권위적인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수평적이고 우호적인 문화에서비롯된 리더십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북가주에는 특별한리더십을 가진 여성이 있다. 이 여성을 두고 많은 이들이 북가주란 지역이 그의 명성에 비해 너무 협소하다고 전한다.
’불사조’라는 애칭을 좋아하는 그는, 바로 북가주에서 각종 여성단체설립을 통해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후배 양성에 힘을 쏟아온 소설가 신예선 선생이다. 특히 신 선생은 문학단체를 만들어 매년 문학캠프를 주최하면서 북가주 지역 한인들의 문학적 소질을 개발해주고 있다.
또한 문학적 소질을 갖고 있었으나 문학적 장르에 목말라 하던 진흙속의 진주를 깨내어 문단에 등단시키는 역할도 그가 수십 년간 북가주지역에서 해오고 있는 활동이다.
문학과 리더십의 상관관계가 무엇이냐라고 할 수도 있지만 신 선생의리더십은 문학의 성취만큼이나 그진면목을 보여준다. 북가주 지역의단체장들이 공사불문 그의 고견을듣고자 찾기가 일쑤이고 한국에서북가주를 찾는 정관계 인사들도 익히 북가주에 소’ 설가 신예선 선생’을찾으라는 소리를 한국을 떠나오면서부터 들어왔다고 밝히는 데서도 알수 있다.
신 선생은 리더십에 대해 "리더십은 자리를 갖고 활동하면서 가질 수있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있어도 존재감과 무게감만으로 느껴지는 것이진정한 리더가 갖는 리더십"이라고정의를 내렸다. 그는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고 인간애가 녹아나는 모습이 어떤 리더십보다 강한 리더십”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신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이미 뛰어난 문학적 소양과 소질을 바탕으로 문학계의 될 성싶은 떡잎으로 기대를 모아왔다고 한다. 뛰어난 글 솜씨를 바탕으로 온갖 청소년 독후감대회나 청소년문학대회를 휩쓸고 다니며 문학계의 앞날을 수놓을 인물로 주목을 받았다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신예선 선생에게 있어서 문학은운명과도 같은 것이라고 한다. "나에게 아픔과 슬픔은 물론이고 고독과고난 전부를 품어 준 것이 바로 문학"이라고 신 선생은 밝히고 있다. 자신의 삶에 부딪힌 모든 고통을 대신해 준 것도 문학이며 그렇기에 지금이 자리에 굿굿이 서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밝힌다.
"내 인생을 거슬러 올라가도 내 자신의 삶 안에, 그 중심에 문학이 있었다"고 강조한다. 삶을 아름답게, 풍요롭게 해준 음악도, 그림도, 발레도,영화감상도, 그리고 여행까지도 결국은 문학을 위한 자양분이었다고 하니 그의 삶 전체가 문학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문학을 떠나서 살아 본 기억이 없는 자신의 삶. 수 천, 수만의 밤별 들이 시야에 전개되는 한 순간에도 오로지 문학이라는 한 길만 바라보며살아왔다고 한다.
그렇기에 한국문단을 떠난 지 40여년이 넘었음에도 아직까지 많은독자들의 뇌리 속에 각인되어 남아있음은 물론이고 각종 문학상의 주인공이 되어 북가주 한인들의 자긍심을 높여주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문학적인 소양은물론이고 음악과 미술 등에도 조예가 깊었던 그는 이 모든 것이 소설가의 길을 걷기 위한 일종의 단계였을 뿐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귀국한후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펼치기 시작한 신 선생은 지난 1966년 신태양사에서 출간한 ‘에뜨랑제여 그대의고향은’이라는 장편소설로 청춘 남녀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을 뿐만 아니라 당대의 최고 엘리트들부터 일용노동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들의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한국문단에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에도 1968년‘ 외로운 사육제’ , 1970년‘ 성녀’ ,1971년 유’ 학생’ 등 잇단 장편소설 히트작을 발표하며 한국 문단의 떠오르는 기대주로 활동해왔다. 하지만평생을 가슴속 가득 미어지도록 안고 살아온 그 사랑이라는 단어 때문에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문학적 열정은 식을줄 몰랐다. 국제 PEN대회만 해도 세계 곳곳을 누비며 17회나 참석했으며 해마다 ‘이병주 국제문학제’등을비롯한 국제회의에 초청받아 강연을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보여줬다.
지난 2012년에는 ‘이병주 국제문학상’ 올해의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당시 함께 후보에 올랐던 외국소설가 9명을 비롯하여 김원일, 조정래, 황석영, 이문열 씨 등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고 있는 14명의 쟁쟁한 명성을 지닌 작가들과 함께 후보에 올라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것은신 선생이 이룩한 문학적 가치와 업적이 여실히 증명되는 부분이기도하다.
자전적 소설인 ‘무반주 발라드’로유명세를 떨친 신 선생은 본보에 연재한 소설‘ 심포니를 타는 허밍버드’를 통해서도 탄탄한 애독자 층을만들기도 했으며타 일간지에도 문’학의 향기’라는 코너를 통해 끝없이활동에 매진했다.
물론 지금도 식지않은 열정을 뽐내며 작품구상에 몰두하는 등 문단에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북가주 최초의‘문학의 밤’을 개최한 이도 신예선 선생이다. 1981년 7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계시인대회에 참석한 조병화 선생을 위시한 17명의시인을 초청, 개최된 ‘문학의 밤’에는400여명의 한인들이 참석했으며이를 필두로 지금까지도 북가주지역 문학 행사를주도해오고 있다.
이 지역의 상징적인 문학행사로자리매김 된지 오래인 ‘샌프란시스코 문학캠프’창설도 전적으로 그의 공로이다. 그동안 강사로 참석한 이들이 김남조, 이호철, 성기조, 마종기, 김원일, 권영민,김종회, 황동규, 오세영, 김광규 등 기라성 같은 한국문단의 대가들임을볼 때 긴긴 세월 신 선생이 맺어온인간관계의 산물임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진정 그가 유지하고 있는세계적인 문학인과의 친분관계를 보면 더욱 놀랄만하다.
그는 1971년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파블로 네루다(칠레 시인)는 물론, 1976년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솔 벨로(미국 소설가)와 지난 2012년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마리오 바가스 요사(페루 소설가) 등과 막역한사이였다고 한다. 참으로 보통 삶은아닌 듯싶다.
신 선생은 내년이면 문단데뷔 50년을 맞는다. 이에 본인의 작품 활동은 물론 후세들을 위해서도 몇 가지계획도 갖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본보에 의해 수십 년간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여성의 창에 필진으로 참여한 이들의 글을 묶어 책으로 엮어 내는 것이다.
또한 SF문학지와 문학캠프를 뿌리내리는데 절대적 밑거름이 된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와 관련한 상도하나 제정할 예정이며 여성의 창 필진을 위한 상도 하나 만들겠다는 포부를 펼쳐보였다.
항상 "삶이 신비스러워 가슴이 설레고 내 가슴은 아직 뜨겁다"라는신예선 선생은 "살아생전에 북가주에 문학관을 만들어 후배 문인들을양성하는 것"이라는 또 다른 꿈을밝히며 인터뷰를 매조졌다.
<이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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