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틀란타, 미국에서 가장 발전하는 도시중 하나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작가 마가렛 미첼의 고향
마가렛 미첼이 묻혀있는 오클랜드 묘지
애틀란타 전경
150년 역사의 묘지에 묻힌 미첼 찾아 독백 읇기도
1929년 건축된 이슬람 양식의 폭스극장도 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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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지수화풍(地水火風) – 우리 몸은 결국 바람으로 돌아간다는 동양 불교철학이 동서를 막론하고 세상사에 맞는 말인가 보다. 내쉬빌(Nashville)에서 남쪽으로 4시간 내려오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무대 애틀란타(Atlanta)의 화려한 도심 건물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가까워질수록 이번 여행의 즐거움과 설레임 중의 옥에 티랄까 착잡한 감정이 내 가슴을 짓누른다.
교민 언론계에서 20년 넘게 방송생활을 하며, 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는 애틀란타에서 열심히 활동해왔던 친구, 1년에 두 세 번씩은 서울 KBS, YTN등에서 연수도 함께하고 한국의 여러 도시에 대한 여행을 포함해 세계 각국 언론인 모임에 함께했던 마음이 통했던 동갑내기- KBS와 맞서 투쟁할 때 앞장서 소리쳤던 그 당당했던 친구가 몇 년 전 뇌졸증으로 쓰러져 몸은 회복되었으나 치매로 발전하며 2-3살 애기 수준이 되었다.
TV 채널을 몇 개나 소유하며 사업적으로 성공한 친구, 그는 초점을 잃은 눈망울로 그래도 나만은 알아보고 내 이름을 부르며 웃는다.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인생사 성주괴공(成住壞空) – 모든 게 허허롭다. 그러나 다행히 현명한 아내의 활동으로 방송국은 자녀와 함께 건재하고 있다. 이틀을 그와 함께하고 떠나는 나는 그를 안고 뜨거운 눈물이 차오름을 애써 숨기려 해도 끝내 어쩔 수가 없었다.
허망한 가슴으로 애틀란타 다운타운 근교 오클랜드 묘지를 찾았다. 애틀란타 출신의 저명인사들이 잠들어 있는 150년 역사의 장중한 묘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고루한 명언을 새삼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곳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작가 마가렛 미첼(Margaret Mitchell)도 그녀의 남편과 함께 잠들어 있다.
단 한편의 소설로 역사상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리며 아직도 세상 사람들 가슴에 영원히 자리한 마가렛 미첼은 1900년 애틀란타에서 태어났고 그녀의 아버지는 법률학자이자 역사학자였다.
따라서 미첼은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남북전쟁에 관한 여러 일화를 들으며 성장하게 되었고 대학을 중퇴하고 애틀란타 저널의 기자로 일하던 미첼은 결혼한 뒤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1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집필했다.
어릴 때부터 들어온 전쟁 일화와 장시간에 걸쳐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쓴 이 대작은 처음에는 너무 길다는 이유로 여러 출판사로부터 거절을 당했다고 한다. 그러자 미첼은 거의 포기한 상태에서 한 출판사 직원에게 떠맡기듯 원고를 맡겼고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출간되었다. 그러니까 이 불후의 명작은 하마터면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할 뻔했다.
이 책은 1936년에 출간되자마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6개월 만에 100만부가 팔리는 대 기록을 세웠다. 이는 당시로는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는데 이때부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출간되자 프로듀서 데이빗 셀즈닉(David 0. Selznic)은 즉시 영화 제작권을 얻어 1939년 상영시간 3시간 40분의 대작을 발표했다. 스칼렛 오하라 역에는 신인배우인 비비안 리(Vivien Leigh)가 깜짝 캐스팅 되었고 레트 버틀러 역에는 당대 최고의 배우였던 클라크 게이블(Clark Gable)이 출연했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상 11개 부문을 휩쓸었고, 엄청난 흥행 결과로 1965년에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 나올 때까지 30년간 세계 영화 흥행 1위의 자리를 고수했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의 남부여인 스칼렛 오하라(Scarlett O’Hara)와 야성적인 밀수 무역상인 레트 버틀러(Rhett Buttler)를 중심으로 한 애욕에 찬 로맨스와 세밀한 시대 묘사, 인간관계 등을 능숙하게 그려서 호평을 받았다.
아름다운 청춘, 뜨거웠던 사랑, 남녀 간의 사랑과 질투, 전쟁의 소용돌이, 역사의 이데올로기, 전쟁과 평화, 가난과 배고픔, 꿈과 희망, 가족을 잃은 슬픔, 갈등과 화해 등은 한 편의 철학이다. 이 모든 것은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진다 - 뜨거웠던 태양이 저물 듯 - 하지만 언젠가 다시 떠오른다.
이 책은 그녀에게 1937년 퓰리처상(Pulitzer’s Prize)을 안겨주었으나 미첼은 이후 더 이상 작품을 쓰지 않았으며 1949년에 49세의 젊은 나이에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애틀란타 미드타운에는 마가렛 미첼의 집이 있는데 본래 그녀가 살았던 집은 화재로 많이 손상이 되었고 뒤에 옛 모습을 그대로 살려 다시 지었다. 미첼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대부분을 이 집에서 집필했고 현재는 그녀의 기념관으로 지정되어 있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전형적인 남부의 저택이며 내부에는 그녀의 손때가 묻어있는 타자기와 세계의 각국 언어로 발간된 책, 사진, 영화 포스터, 신문기사 등이 전시되어 있다.
또 다운타운에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초연된 폭스(Fox) 극장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 폭스 극장은 1929년에 건축된 이슬람 양식의 대극장인데 얼핏 보면 궁전과도 같은 독특한 외관이 특징이다.
이곳을 돌아보며 소설 속 스칼렛 오하라의 당찬 독백이 떠오른다.
“결국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테니까 –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폐허가 된 타라의 평원에서 스칼렛 오하라는 내일을 향한 재기의 강한 집념을 보이며 소설은 끝이 나는데 그녀의 독백처럼 내일의 태양은 매일 떠올라 1세기가 지난 뒤 애틀란타는 미국에서 가장 발전하는 도시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세월따라 언젠가는 모든 것이 바람처럼 사라지겠지…
<글•사진 성기왕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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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의 만남
-장금자–
별 헤이던 밤
달빛 휘감기는 하늘가 한 모롱이에서
우연히 만났다
약속도 없이 만났던 것처럼
기척도 없이 가버린 너
너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똑 같은 몸짓으로 흘러가고
풀잎 하나 울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나 역시 이대로 있네
저문 밤 길가에서
처음 만났을 때처럼
네가 한 줄기 바람이었나
내가 바람이었나
잠시 떠돌다 만난 우리는
또, 그렇게 떠나가는 바람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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