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보면 모두 기적 같은 일들이었습니다”
▶ 유니버시아드*올림픽서 태권도 채택 감격스러워
미 대학 태권도의 아버지, 태권도 세계화의 일등공신으로 불리는 민경호(80, 영어이름 켄 민) UC버클리 명예종신교수가 오는 7월 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를 끝으로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 태권도 기술총감독에서 은퇴할 예정이다. 2006년 UC버클리 무도 프로그램(UCMAP) 디렉터에서 물러났지만 전세계 대학스포츠를 총괄하는 FISU 기술감독으로 세계 태권도를 이끌어왔다. 지난 1일 만난 민 교수는 ‘할 일을 모두 끝낸’ 이의 담담함과 최선다한 인생여정에 감사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태권도를 떠난 그의 삶을 떠올릴 수 없는 것은 태권도를 위해 달려온 그의 인생이 바로 세계 태권도의 산 역사이기 때문이다.
■태권도는 인생 변화시키는 행동철학
일본유학생 출신으로 유도실력을 갖춘 부친의 영향으로 유도를 접한 민 교수는 씨름(지역과 전국 씨름대회서 우승, 쌀가마니를 탈 정도였다), 축구, 육상에도 재능을 보였다. 이후 부평 미군부대 군인들의 무도훈련을 맡다가 1963년 조지아주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몬태나에서 체육행정 공부를 하다가 UC버클리 교수로 채용됐다. 그가 46년간 길러낸 제자들만 15만명을 헤아린다. 변호사, 교수, 경찰 등등 세계 각국각처에서 활약하는 제자들 덕분에 어디서든 남다른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이들 중 블랙벨트 획득자는 2%밖에 안될 정도로 엄격한 승단심사체계를 구축했다.
그는 태권도는 무도, 바로 행동철학임을 강조해왔다. 삶과 수련의 하나임을 가르쳐왔다. 태권도가 마음을 채우고 습관을 변화시키는 인성교육임을 실천해왔다. 민 교수는 “태권도를 하면 인내심, 자신감, 자기인정, 자기존경심을 갖게 된다”면서 “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관을 정립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무도는 자신을 이기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라면서 “태권정신이 한번 깃들면 어느분야에서든 성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석좌교수제 도입, 가장 힘들고 가장 보람돼
1969년 UC버클리 체육학과 실기교수가 된 직후부터 UCMAP 전신인 마샬아츠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를 맡아 37년동안 이끌어오다 2006년 안창섭 교수에게 물려주기까지 민 교수는 UC버클리 태권도팀을 31차례 미 대학선수권대회 중 27차례나 챔피언에 올려놓는 등 부동의 최강사단으로 단련시키면서 태권도를 미 전역 대학가로 전파시켰다. 민 교수는 “마샬아츠 디렉터 시절 고달프고 스트레스가 많았다”면서 “UC버클리가 미 대학 태권도의 중심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밤샘작업이 비일비재했다”고 젊은날을 떠올렸다.
특히 92-93년 주정부 예산 삭감으로 체육학과 학위 프로그램이 없어지고 교양체육과목으로 전환될 때 석좌교수제를 만든 것도 그의 공로 중 하나로 일컬어진다. 그는 “체육과가 없어져 심리적 타격이 컸다”면서 “마샬아츠 프로그램을 살리기 위해 학교관계자, 학생, 미디어, 한국정부 등에 도움을 요청하러 바삐 뛰었다”고 털어놨다. 민 교수는 “솔직히 걱정에 휩싸였으나 내게 태권도를 배운 제자들이 인연이 돼 성사됐다”고 뿌듯해했다. 민 교수는 “석좌교수제 도입은 UC버클리가 태권도를 영구 교과목으로서 교육적 가치를 인정해준 것”이라면서 “가장 힘든 일이었지만 가장 보람된 성과”라고 말했다.
민 교수는 “당시 강우정 한국일보 사장 등이 후원회를 조직해 모금운동을 벌인 결과 한국정부로부터 매칭펀드를 받게 됐다”면서 “늘 한국일보에 감사의 마음이 있다”고 고마워했다.
■태권도 정식종목 채택에 기여
2009년 육상, 수영에 이어 태권도가 세번째로 큰 종목으로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채택된 것도 민 교수의 공로이다. 그는 “축구가 태권도를 이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는데 모두가 놀랄 기적을 이뤘다”면서 “유도 메달이 16개인 반면 태권도는 금메달 23개, 은 23개, 동 46개로 결정됐다”고 당시 감격을 회고했다. 안창섭 UC버클리 교수이자 마샬아츠프로그램 디렉터는 “86년부터 민 교수님이 FISU 집행위원과 커미셔너로 활동하면서 많은 영향을 주었기에 태권도가 정식종목으로 승격된 것”이라면서 “소중한 업적”이라고 강조했다.
또 94년 북한과 일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IOC가 태권도를 정식종목으로 채택한 것에 대해 민 교수는 “김운용 부총재와 사마란치 위원장의 관계가 긴밀했기 때문”이라면서 “당시 파리에서 승인소식을 듣고 밤새 감격에 겨워했던 것이 엊그제 같다”고 웃음지었다.
그의 주요업적으로는 1970년 미대학태권도협회 창설, 1973년 세계태권도연맹 창설시 미대표로 참가, 1974년 전미태권도협회 창설후 미 체육회에 가입, 1대 2대 회장 역임, 1981-2008년 세계태권도연맹 대학분과위원장, 1986-2015년 FISU 태권도 기술총감독 등으로 활약한 것이다. 유니버시아드대회가 열리지 않는 해에 펼쳐지는 2년 주기 세계대학태권도선수권대회 역시 그의 주도로 창설됐다. 민 교수는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200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문화훈장국민장 3등급에 해당하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기도 했다.
민 교수는 “물의 특성을 따르는 수성여시(水性如是)의 철학을 고집해왔다”면서 “태권도 세계화의 사명을 품고 한우물만 팠다"고 말했다.
■역지사지 심정으로 지도하라
그는 미 전역에서 태권도를 지도하는 후배들에게 들려줄 한마디를 부탁하자 “무도인은 무엇보다도 돈을 좇기보다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남을 가르칠 때는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좋은 선생”이라면서 “비즈니스 마인드보다는 제자를 길러내는 스승과 부모의 심정이 돼야 한다”고 충고했다.
민 교수는 “한인커뮤니티의 지원이 없었다면 UC버클리 태권도팀이 전국대회서 우승할 수도 없었고 마샬아츠 프로그램이 지속될 수 없었다”면서 “떠나는 마당에 한인커뮤니티에 감사의 인사를 꼭 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한편 FISU측은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7월7일 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성대한 은퇴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또 내년초에는 그의 회고록도 세상에 나올 것으로 알려졌다.
<신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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