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을 떠나 외국의 공항에 도착할 때 제일 먼저 갖는 느낌은 아마도 언어나 인종이나 문화의 다름에서 오는 ‘낯선 느낌’일 것이다. 이는 단순 관광 목적이 아니라 유학이나 이민을 목적으로 공항에 내린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낯선 이국에서 새로운 개척을 시작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공통적인 인생 경험이 있다. 소외감이나 거부감 혹은 수치심을 느끼는 주변인(周邊人)이나 경계인(境界人) 경험이 그것이다.
주변인 경험이란 자신이 중심부가 아니라 주변화 된 존재임을 느끼는 것이다.
밑바닥 경험, 변두리 인생 경험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런 경험을 사회과학적 용어로 주변성(周邊性, marginality) 혹은 주변인 (marginal person)이라 부른다.
한국에서 꽤 괜찮게 살다가 미국이라는 낯선 곳에 와서 살고 있는 한인들은대개 다 불편함, 차별, 무시, 억압, 거부감, 수치심, 소외감, 고독감 등 주변부 경험이있다. 이 경험을 순탄하게 경험한 사람도있고,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슬프고도 애절한 사연으로 경험한 이도 있고, 무용담처럼 통쾌한 마음으로 들어야 제격인 주변성 경험담도 있다.
한인은 백인을 만나면 피부색에서 인종적 주변성을 경험한다.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미국인을 만나면 언어적 주변성을 경험한다. 한국에서 각종 모임을 주도하며 중심부에 있었던 사람도 미국에서 학부모 회의나 각종 사교모임에서 완전히 스며들지 못하고 겉도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문화적 주변성을 경험한다.
주변성 경험의 결정적 모습은 자신이 미국식에 완전히 동화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국의 문화 속으로 완전히 되돌아가지도 못함을 느낄 때 확연히 느끼게된다. 두 사회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면서, 동시에 두 세계의 일부가 되어 살아간다. 고국에서는 미국인 취급 받고, 미국에서는 한인이나 아시아인으로 여겨지며 사는 주변적 존재가 된다.
주변성 경험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미국에 와서 겪은 쓰리고 아픈 혹은 의연하고 능동적인 주변화 경험들이 개인의 상처나 한으로 남거나 혹은 입지전적 무용담이나 개인의 신앙적 간증으로만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주변성 경험으로부터 삶을 배워야 한다. 두 세계를 겪으면서 경험한 주변성 경험은 내가 누구인지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하고, 삶의 지평을 확장 시킨다. 한국에서 잘 나가던 중심부의 사람으로 살 때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주변부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 소외 계층의 불편과 어려움과 아픔을 보게 한다.
주변부 경험은 세상이나 권력의 중심이 아니라, 주변이나 밑바닥으로부터 생각하게 한다. 관점의 창조적 확장이다.
6.25 전쟁 직후 미국에 건너 온 이정용교수(1935-1996)는 자신이 겪은 주변성경험을 창조적으로 전환하여 ‘마지널리티(Marginality)’라는 새로운 신학을 발전시켰다.
젊은 한인들은 주변부 의식을 가지고 미국의 중심부를 바라보아야 한다. 주변성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주변부는 창조성이 있다. 자유, 민주, 평화, 인권, 복지 등등 역사의 시대 의식은 모두 주변성에 대한 자각에서 만들어졌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자유 민권운동 역시 흑인의 비참한 주변성에 대한 자각에서 시작하였다.
두 세계 사이(between)에서 동시에 두 세계 모두(both)를 경험하는 주변성 경험은 열등하거나 수치의 자리가 아니다. 주변성 경험은 양자 긍정과 포용의 특별한 은총이다. 주변성에서 창조적 비전을 발견하고, 이를 발전시켜 한국 사회와 미국사회의 새로운 창조적 중심을 제안해야 한다. 미국에 살면서 낯설고 힘들었지만주변성 경험은 우리에게 한국과 미국 두 세계를 긍정함으로 두 세계를 넘어서는(In-Beyond) 창조적 주변인으로 살아가게 한다.
밑바닥 혹은 주변부는 나의 인생을 부요하게 만들고, 주변인들의 아픔을 이해하게 만든,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랑스럽고 소중한 ‘삶의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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