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어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는 주인공들...
▶ (1) UH 동아시아어문학과 손호민 은퇴교수
언어학 박사로 ‘한국어 세계화’를 위해 헌신한 하와이대학교 동아시아 어문학과 손호민(82) 은퇴 교수와 인터뷰는 569돌 한글날의 의미를 특별하게 한다. 44년간을 하와이주립대에서 봉직하다 지난 7월말로 은퇴한 손호민 교수는 지금까지 집필한 저서들과 출판논문의 목록만 해도 A4용지 20장을 가득 채우고도 넘친다.
단지 한국어를 지도하는 교육자로서가 아니라 해외 한국어 교육전파의 초석을 다진 손호민 교수는 언어학자로서의 연구활동 외에도 하와이주립대 내에 설립된 한국학연구소장으로 활동했던 당시를 회고하며 특별한 의미를 전한다.
“종전에는 열심히 연구하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일에만 전념해 오다가 한국학연구소장을 맡고 나니 세계 곳곳에서 찾아오는 수많은 인사들을 만나 상담하는 것이 일과가 되어 버렸다. 당시 학생들의 장학금을 마련하고 한국학 관련 석좌교수 채용을 위한 200만 달러 모금운동에 가장 역점을 두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와이 한인사회와 한국에서의 모금활동으로 100만 달러의 약 90% 이상을 모금했고 나머지는 후임으로 온 김영희 소장이 완성했다. 이후 100만 달러를 국제교류재단에서 지원을 받아 한국의 정치학교수를 하와이대학으로 영입해 올 수 있었다”고 전했다.
지난 9월 11일 하와이주립대 총장관저에서 학교측이 마련한 은퇴기념식을 가진 손 교수는 특히 세계유일의 한국전문가 양성기관인 한국어 플래그십 프로그램에 특별한 애착을 갖고 있다고 밝히고 2002년 처음 미 연방정부의 지원으로 시범운영 하다 2007년 정부지정 공식센터로 출범, 당시 한국학연구소장으로 있던 자신을 플래그십센터장으로 겸임 발령했던 사실을 회고했다. 손 교수는 “당장 2007년부터 ‘전문한국어’ 석사과정을 신설, 2008년에는 학부생으로 그 대상을 넓혀 현재 워싱턴 D.C.에서만 30명이 넘는 우리 졸업생들이 각종 정부기관과 민간업체에 한국전문가로 활동 중”이라며 해외 한국어교육의 새로운 모델로 우뚝 선 플래그십센터의 위상을 전했다.
손 교수는 언어학자로서 하와이대학 박사과정을 이수하던 1968년 당시 한국어뿐만 아니라 사라져가는 태평양 인근지역의 원주민 언어들을 연구했던 경험을 소개한다.
자료수집을 위해 미국의 신탁통치령이었던 캐롤라인 군도 중 유리티(Ulithi)라는 작은 환초에서 6개월간 원주민들과 생활하며 언어의 음성구조와 문법구조를 연구했던 당시의 경험담은 버러이어티 쇼 프로그램을 연상케 한다.
당시 밤낮으로 달려드는 모기와 주식으로는 바나나와 빵나무 열매, 야자열매, 토란 등 매일 같은 음식만 지겹도록 먹으며 하루하루가 고통이었지만 이따금 원주민 친구들이 가져오는 생선이나 거북이 고기, 바닷가재, 야자열매로 빚은 술이 그나마 작은 행복을 전해주었다고 회고한다. 1970년에는 뉴질랜드 오클랜드대학에 연구원으로 가 있는 동안 솔로몬 군도에 있는 말라이타(Malaita)섬의 북부산중에서 2개월간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Kwara’ae라는 원주민언어의 음성구조를 연구했다고 한다. 여기서도 자료를 수집하고 원주민들의 생활문화를 직접 관찰한다는 작은 만족감 외에는 낮에는 찌는 듯한 더위와 밤에는 얼어붙을 정도의 추위, 말라리아 모기에 시달리는 등 힘든 날들의 연속이었다고 밝혔다. 원래 식인종이었던 말라이타 산중마을 주민들은 손 교수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이미 기독교로 개종한 상태라서 안심했는데 “별들이 손에 잡힐 듯한 어느 날 밤, 그 마을 추장이 젊었을 적의 식인경험담을 이야기 하던 중 제 등을 만지면서 이런 살이 맛있었다고 했을 때는 오싹했다”고 전하며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새로운 경험이자 학문을 갈고 닦으려 했던 젊은 날의 수련이라 생각하면 좋은 추억이 아닐 수 없다”고 회고했다.
한편 일생을 바친 한국어와 관련한 교육철학에 대해 손 교수는 “한국어는 한국인의 모국어이고 한국사회와 한국문화를 반영하는 거울이자 표현수단”이라며 “한국어를 해외에 널리 보급한다는 것은 무수한 외국인에게 한국인과의 의사소통의 수단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한국, 한국인, 한국문화, 그리고 한국사회와 가까워지고 친해지게 하는 매개체이다. 앞으로 한국어 교육은 단순한 일상생활에 필요한 회화수준을 넘어 학생들의 전문분야에 이르기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전했다. 더불어 원거리 교육법을 개발해 한국어 프로그램이 없는 지역의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생들에 이르기까지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은퇴 교수로 한가한 시간을 보낼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손 교수는 지금까지 못 끝낸 일부터 마무리 지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우선 11명의 한국어 박사과정 학생들의 논문을 지도할 것이고 곳곳에서 요청해 온 학술논문들도 완성해야 한다”고 전하며 또한 아직 미완성인 ‘한국어 문법용례사전’을 완성해야 하는 등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고 밝혔다. 더불어 “아직 기억력이 남아있을 때 틈틈이 회고록도 써 보려고 한다”며 은퇴 이후에도 후학들을 위한 교육기반을 마련하는데 분주한 나날들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 은퇴 후 생활을 전한다.
손호민 교수는 1956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에서 언어학과 문학사를 전공하고 1965년 동대학원에서 언어학으로 문학석사를 취득했다.
1965년 미국정부 동서문화센터의 장학생으로 유학, 하와이주립대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57년에는 한국 문교부차관 비서로 근무하다 1960년부터 5년간은 UN 특별기금의 한국개간 간척사업소장의 보좌로 발탁됐고 1969년에 동국대학에 영어와 언어학 조교수로 학계로 돌아왔다.
1971년에는 하와이태평양아시아 언어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72년에 하와이주립대 동아시아어문학과의 조교수로 임명, 76년에는 부교수, 81년 정교수로 임명되는 등 가파른 속도로 승진을 거듭, 1993년에는 동아시아 어문학과장을 역임하고 2004년부터 2010년까지는 UH 한국학 연구소장을, 그리고 2007년부터 은퇴할 때까지 미 연방정부 지원기관인 UH 한국어 플래그십센터의 소장직을 역임했다.
1979년에는 국제한국어학회 3대회장을, 94년에는 전미 한국어교육자협회 초대회장, 그리고 94년부터 현재까지 하와이주 등록 사단법인인 한국어 교육연구센터의 이사장으로 재직했다. 주요 포상으로는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한국어 해외보급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1997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2001년에는 동숭학술공로상, 2005년에는 하와이대학교 이사회가 수여하는 우수연구교수 훈장을, 그리고 2011년에는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문화포장을 수여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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