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어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는 주인공들...
(4) "모든 학교에 한국어 수업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모아날루아 고교 한국어/과학 김순영 교사
줄탁동시(啐啄同時).
어미 닭과 병아리가 안팎에서 알 껍질을 함께 쪼아야 병아리가 알에서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세상의 많은 일은 이렇듯 내부적 수요와 외부적 환경이 적절히 조화되는 순간에 이루어진다.
이 말을 행동으로 증명해낸 사람이 있으니, 모아날루아 고교 김순영 (사진)교사다. 본보 지면을 통해서는 김 씨를 두 번 소개한 적이 있는데, 모아날루아 학군에 한국어 수업 개설을 위한 정부지원금이 조달됐을 때(본보 2015년 5월 9일자)와, 같은 학군에 한국도서재단이 한국어 교재를 지원했을 때(본보 2015년 9월 4일자)다. 두 사례 모두 김순영 교사의 적극적인 홍보와 관련기관의 준비된 지원이 서로 알을 쪼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쯤 되면 김순영 교사의 담당과목은 언어나 사회 정도가 될 거라 짐작하게 된다. 그러나 김 씨는 명색이 29년 경력의 ‘과학’교사다. 13살 때 하와이로 이민 온 김 씨는 초·중·고교 모두 하와이에서 졸업, 하와이 주립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했다. 이후 과학이 특기과목이었던 것을 살려 화학 교사로 모아날루아 고등학교에 둥지를 틀었는데, 화학 물질이 몸에 안 맞아 이후에는 9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일반과학을 가르치고, 학생관리를 위주로 교무를 맡았다.
교직 27년차가 되던 2013년, 그녀에게 전환점이 오는데, 때는 겨울이었다. 어느 날 친구가 준 한국 가수 포스터를 학교에 가져갔더니, 어떤 현지학생이 그 포스터를 너무도 선망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방과 후, 학생 두 명이 김 씨를 찾아와 수줍게 부탁하더란다. ‘우리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줄 수 있겠냐’고. 김 씨는 바로 교장실로 뛰어가 자신이 한국어 수업을 개설해 맡으면 어떨지 물었다. 사실 다음 학기 등록기간이 끝난 상태라 학교 측이 골치 아플 수도 있는데, 고맙게도 교장 선생님이 김 씨 뜻을 존중해주었다. 그렇게 모아날루아 고등학교에 처음으로 한국어 수업이 생겼다.
처음엔 과학 수업 4개, 한국어 수업 1개를 맡았지만, 한국어 수업이 개설된 지 2년째가 되는 지금 김 씨가 맡은 수업은 ‘한국어1’ 2개, ‘한국어2’ 2개, 과학 수업 2개다. 처음에 비해 한국어 수업이 놀라운 속도로 확대된 것. 지금은 일정상 쉬고 있지만 가을, 봄 학기에는 맥킨리 성인학교 (McKinley Community School for Adults) 에서도 한국어 강좌를 지도했고, 앞으로도 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김 씨는 밤낮없이 연구하고 노력했다.
‘제가 원래 한 번 빠지면 못 헤어나와요.’ 웃으며 얘기했지만 새벽 5시까지 수업 교재를 개발하기를 아직까지 밥먹듯이 하고 있다. 하와이의 한글·한국어 강사들이 겪는 공통적인 어려움 중 하나가 ‘학생들에게 알맞은 교재 찾기’인 것으로 보인다. 김순영 교사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내 대학교나 하와이 주립대에서 출판한 한국어 교재를 두루 찾아봤지만, 한국 대학교 교재는 현지 학생에게 맞지 않고 하와이 주립대 교재는 고등학생에게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당시 호놀룰루 총영사관에도 교재 관련 도움을 얻었는데, 그래도 스스로 수정하고 개발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밤새 컴퓨터 앞에 붙어 있길 부지기수, 교재 만드는 손가락의 관절도 시원찮아졌다. 아무래도 과학교사가 한국어 지도를 시작하려니 초기 투자시간도 많았다고 김 씨는 토로한다.
그렇다면 과학교사인 김 씨가, 2년 전 학생 두 명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건 왜고, 이렇게 잠도 못 자가며 한국어 교육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은 ‘내가 한국어 공부를 할 수 있으니까’가 답이다. 참 교사다운 답이다. 학생과 교사가 같이 성장한다는 믿음이 있는 거다. 그러면서 ‘언어와 과학을 가르칠 때 흥미로운 차이점이 있다. 과학은 객관적인 섭리를 누가 먼저 발견하고 이해하느냐가 관건이지만, 언어는 학생 개개인마다 접근하는 방식도 속도도 다르기 때문에 ‘누가 먼저’가 아니라 스스로를 한 단계씩 발전시켜가는 것이 관건이다. 그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재미더라’라고 전했다.
김순영 교사의 목표는 작게는 학생들이 한국과 인연을 맺는 것이고, 크게는 일부 학교가 아니라 미국 모든 초•중•고교에 한국어 수업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학생들이 한국어를 능숙하게 하고, 한국과 교류기회를 가져서 한미간 경제적인 교류가 늘어났으면 한다. 한국 정부의 지원금을 요청한 것도 그런 의미에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 제자들이 한국어 교사가 되었으면 하는 욕심도 있다.’ 그리고 이 욕심이 결국 큰 목표로 이어진다. ‘지금 미국에는 한국어를 지도할 인력이 부족하다. 지금의 학생들이 자라 한국어 교사가 되면, 그 만큼 한국어교육이 활성화되고 미국 사회에서 한국어가 가지는 힘도 더 커질 것이다.’ 현재 하와이의 한 초등학교는 일반과목을 중국어로 가르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김 씨가 원하는 게 바로 그런 것이다. 일반과목을 한국어로 가르치는 것. 김순영 교사는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하와이 주 교육부와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다.
인터뷰를 하다 보니 김순영 교사는 병아리를 품어본 어미닭이기에, 또다시 병아리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한국어를 가르쳐달라’고 안에서 쪼아댄 학생들에게 그녀는 어미닭이 되어 알을 깨주었다. 그리고 다시 그녀가 병아리가 되어 정부 지원금이나 한국도서재단 도서 기증을 요청했을 때, 각 기관의 준비된 태도가 어미닭이 되어 지금의 모아날루아 학군 초•중•고교에 한국어 수업을 만들 수 있었다. 앞으로 김 씨의 목표가 이루어져 미 전역에 한국어 교육이 정착될 때까지, 이런 줄탁동시의 순간이 순조롭게 이어졌으면 한다.
<윤다경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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