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출근하자마자 담배부터 피워 물었다. 친구나 낯선 손님이 찾아와도 담배를 권하는 게 우선순위였다. 책상마다 전화기 옆에 재떨이가 놓여 있었다. 고관대작의 주머니에도 십중팔구 담배와 라이터가 들어 있었다. 버스와 택시는 물론 비행기 안에서도 담배를 피웠다. 기사 마감시간인 오후 5시 직전의 편집국은 담배연기가 전쟁터의 포연처럼 자욱했다.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담배 얘기다. 요즘 담배를 권했다간 야만인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사무실은 일체 금연구역이 됐다. 재떨이도 박물관에 소장돼야할 처지다.
나도 오래 전 담배를 끊었다. 지난 1997년 미국 성인들은 4명중 1명꼴(25%)로 담배를 피웠지만 지금은 그 비율이 14.9%로 떨어졌다. 특히 나 같은 시니어들의 흡연율은 100명중 8명에 불과하다. 65세 이하 ‘젊은이들’의 흡연율은 그 두 배다. 한국의 끽연가들도 꾸준히 줄었다.
1998년 35%를 웃돌았던 흡연율이 2013년엔 24%(남자 42%, 여자 6.2%)로 줄었다.
미국에서 연간 43만8,000여명이 폐암, 뇌졸중 등 흡연으로 인한 질병으로 죽는다. 남이 피는 담배연기를 맡고도 4만1,000여명이 죽는다. 합하면 미국의 역대 전사자 수보다 10배나 많다. 담뱃갑마다 강력한 경고문이 게재돼 있다. 한국에선 담뱃가게에 온 청년이 점원에게 “폐암 하나 주세요”라고 말하는 보건복지부의 금연광고가 사흘 전부터 방영되고 있다.
전 세계에서 끽연가들이 왕따를 당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멕시코에선 1575년 성당 내 흡연이 금지됐고, 오토만 제국에선 1633년 흡연자가 처형당했다. 뉴질랜드는 1876년 목조건물로는 세계에서 두 번째 큰 정부청사를 세계최초의 금연 건물로 지정했다. 히틀러는 1941년 나치 당사는 물론 독일의 모든 대학교, 우체국, 군병원 등에서 흡연을 금했다.
미국에선 1975년 미네소타주가 최초로 식당을 포함한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을 금지했다. 그 후 캘리포니아, 뉴욕 등 37개 주가 공공장소 금연법을 시행하고 있다. 도시 중에서는 캘리포니아의 산 루이스 오비스포가 1990년 세계최초로 공공시설 실내 금연조례를 제정했다. 시애틀은 식당과 술집은 물론 지난 6월부터는 시내 공원에서도 흡연을 금지하고 있다.
흡연자들의 설 땅이 더 줄어들 전망이다. 연방정부 지원금으로 지은 전국의 서민 아파트 94만여 동을 2017년부터 금연구역으로 설정한다고 연방 주택도시개발부(HUD)가 엊그제 발표했다. 줄리안 카스트로 HUD장관은 이 같은 조치로 76만여명의 어린이를 간접흡연 피해에서 보호하고, 입주자들의 의료비 등에서 1억5,300만달러를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찬성보다 반대 목소리가 더 크다. 서민 아파트 입주자들은 대다수가 흡연자다. 학력과 빈부에 따라 흡연율에 큰 격차가 있다. 인권운동가들은 HUD의 조치가 가난한 자에 대한 차별행위라며 금연조치를 일반 아파트에까지 확대하라고 요구한다.
나도 그 말에 공감한다. 오래전부터 아파트 아래층 입주자가 시도 때도 없이 베란다에 나와 담배를 피워댄다. 연기가 고스란히 내 방으로 올라와 창문을 닫기 바쁘다. 엎친 데 겹친 격으로 그보다 더 심한 골초 할머니가 최근 아래 층 옆방에 입주했다. 복도가 늘 담배냄새로 차 있다. 관리사무실에 항의했지만 시애틀엔 아파트 금연조례가 없어 어쩔 수 없단다.
담배를 이 아파트에선 못 피고, 저 아파트에선 필 수 있는 건 불공평하다. 더 아리송한 게 있다. 담배는 자꾸 규제하면서 담배보다 더 해악이 큰 마리화나는 규제를 자꾸 풀어준다. 연방정부는 마리화나를 마약으로 단속하는데 워싱턴·오리건·콜로라도 주에선 담배처럼 쉽게 살 수 있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지, 미국에서 사는 게 갈수록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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