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자녀를 둔 1세 한인부모들이 흔히 하는 얘기가 있다. 우리 아이는 우유와 치즈를 먹고 자라서 항상 백인학생 친구들과 어울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고 희망사항이다. 그 아이가 공부는 잘 할지 몰라도 캠퍼스에선 십중팔구 외톨이거나 한인(아시안) 학생들과만 어울린다. 인종 벽이 초중고 때와 비교할 수 없게 높아 뛰어 넘기가 어렵다.
거의 반세기 전에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주도한 인권운동 덕분에 겉으로는 인종분리 공립학교들이 사라졌지만 대부분의 대학교에선 여전히 인종통합이 미완의 숙제로 남아 있었다. 그 숙제를 풀려는 듯 요즘 일부 대학에서 흑인학생들이 내는 자존의식 목소리가 전국에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다. 천지개벽 같았던 1960년대의 인권운동이 재개되는 조짐이다.
불길은 이달 초 미주리대학(MU)에서 발단됐다. MU 본교가 있는 콜럼비아는 지난해 비무장 흑인청소년 마이클 브라운을 백인 경찰관이 사살해 논란을 일으켰던 퍼거슨에서 지척이다. 인종혐오를 배척하는 정서가 팽배해있다. MU 학생들은 브라운이 사살된 작년 8월과 그를 총격한 대런 윌슨 경관이 불기소 처분을 받은 작년 11월 강력한 항의시위를 벌였었다.
그런 MU의 흑인학생 기숙사에서 지난 4월 나치문장과‘(히틀러)만세’라는 먹칠 낙서가 층계 벽에 그려진데 이어 화장실 바닥에 인분으로 칠한 나치문장이 발견됐다. 9월엔 흑인인 학생회장이 백인들로부터 공개적으로‘껌둥이’로 불리는 모욕을 당했다. 10월엔 학교에서 연극연습을 하고 있던 흑인학생들에게 한 백인이 나타나 역시‘껌둥이’라고 소리 질렀다.
흑인학생들의 항의를 받은 학교당국은“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만 말할 뿐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한 대학원생은 팀 울프 총장이 사퇴할 때까지 캠퍼스에서 단식에 돌입했고, 학교 풋볼 팀도 울프의 사퇴를 요구하며 올 시즌 남은 경기를 보이콧했다. 정치인들도 그의 사임을 촉구했다. 울프는 결국 지난 16일 사임했다. 보웬 로프틴 학감도 동반 사퇴했다.
MU의‘승전보’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순식간에 전국 대학에 점화됐다. 뉴욕 이타카 대학 학생들도 평소 인종문제에 미온적인 총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LA의 명문사립 클레어몬트-맥키나대학 학장은 사퇴했다. 예일대 학생들도 시위행진을 벌였고, 프린스턴 대학생들은 인종차별 대통령이었던 우드로 윌슨(동문)의 이름을 캠퍼스 건물에서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지난 2주간 전국의 100여개 대학에서 시위바람이 일어났다. 하지만 맞바람도 강했다. MU의 흑인문화 센터 간판에서‘흑인’이 지워졌다. 하버드법대 벽의 교수들 사진 중 망자(亡子)를 뜻하는 검은 색 테이프가 흑인들 사진에 붙여졌다. 흑인 위주인 하워드대학(워싱턴DC)과 킨 대학(뉴저지)의 흑인학생을 모조리 죽이겠다는 협박문이 소셜미디어에 게재됐다.
웨스턴 워싱턴대학(WWU)도 비슷한 협박을 받고 나흘 전 수업을 전격 취소했다. 워싱턴주에서 공립대학이 협박문 때문에 수업을 중단한 건 처음이다.
캠퍼스 인종다양성에서 15년째 전국 1위인 럿거스대학(뉴저지 주립대)의 뉴와크 본교(백인 47%, 아시안 20%, 흑인 10%)에선 인종시비가 없다. 다행히(?) 미국의 초중고교 신입생 중 백인은 해마다 줄어들고 소수계는 늘어난다. 지난 2012년까지 과반(51%)이었던 백인학생은 2024년엔 소수(46%)로 전락할 전망이다. 그 전엔 캠퍼스의 인종벽이 요지부동일 터이다.
그 인종벽 해소에 한국유학생이 많이 올수록 도움이 되겠지만 최근엔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다. 솔직히 미국유학을 권하고 싶지도 않다. 등록금은 매년 턱없이 오르는데 대다수 학생들이 공부보다 음주파티에 더 열심이다. 캠퍼스에 강도가 횡행하고 툭하면 집단사살 참극까지 일어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한국교육의 우수성을 기회 있을 때마다 부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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