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줄리 앤드류스와 크리스토퍼 플러머를 비롯한 오리지널 캐스트 9명이 노인이 돼 거의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재 상봉한 TV쇼를 몇 년전 재미있게 봤다. 영화(1965년) 출연 이후 뿔뿔이 흩어져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오면서 알아볼 수 없게 달라진 이들을 모두 찾아내 한자리에 불러 모은 ‘오프라 윈프리 쇼’의 능력에 새삼 감탄했었다.
그전부터도 오프라는 내게 경이의 대상이었다. 오프라 쇼는 그저 그랬지만 그 쇼의 한 프로그램인 ‘오프라 북클럽’은 미국인들의 독서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윈프리가 시청자들에게 책(주로 소설)을 선정해준 후 저자를 초청해 독후감 토론을 벌이는 쇼이다. 그녀가 15년간 선정한 70권의 책은 도합 5,500만여 권이 팔려나가는 ‘오프라 효과’를 과시했다.
별 볼 일없는 소설을 일약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려놓는 위력을 자랑했던 오프라 북클럽은 ‘사운드 오브 뮤직’ 캐스트의 재상봉 프로가 방영된 다음해인 2011년 오프라 쇼 자체가 종식되면서 함께 사라졌다. 윈프리는 다음해 새 북클럽을 ‘OWN’(오프라 윈프리 네트워크)과 ‘O’(오프라 윈프리 매거진)를 통해 재개했는데 위력이 종전의 TV쇼보다 못 한것 같다.
오프라 북클럽 이미지를 거의 잊어버리고 있었던 금년 초 뉴욕타임스에서 놀랄만한 기사를 읽었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공동 창업자이자 세계 최고 갑부인 빌 게이츠가 개인적으로 윈프리와는 다른 형태의 독서클럽을 운영한다는 얘기였다. 게이츠가 원래 책벌레라는 말은 들었지만 그가 수백만 명의 독서광에게 크게 영향력을 미치는 서평가인 줄은 전혀 몰랐다.
게이츠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연간 50여권의 책을 읽는다고 했다. 비즈니스로 바쁠 때는 한 주간에 한두 권, 가족여행 등 한가한 주간에는 4~5권을 독파한단다. 항상 책을 끼고 산다는 말이다. 컴퓨터의 달인이지만 디지털 책이 아닌 종이책을 선호한다고 했다. 책의 주제도 소설부터 전기, 논픽션, 과학, 공중보건, 자선사업 등 윈프리 것보다 다양하다.
그는 책을 읽으며 틈틈이 여백에 메모를 해두었다가 완독 후 정리해 친지들에게 이메일로 보내면서 일독을 권했다. 그러다가 몇 년전 기왕이면 일반 대중과도 독후감을 공유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신의 블로그(gatesnotes.com)에 별도 섹션을 만들고 그동안 친지들에게 보낸 서평과 함께 자신이 대중에게 일독을 권하는 책의 목록을 게시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게이츠 효과’가 곧 나타났다. 이미 워싱턴포스트, 뉴요커 등 권위 있는 신문잡지의 서평란에 소개됐던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새 전기 ‘닉슨의 됨됨이: 양분된 인간’이 작년말 갑자기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의아해한 저자 에반 토마스는 이 책이 작년 말 게이츠 추천도서 명단에 올랐다는 말을 뒤늦게 듣고 게이츠의 파워에 놀랐다고 말했다.
게이츠는 ‘배우기 위해’ 책을 읽는다고 했다. 그의 서평도 정보전달 위주이며 자연히 호의적이다. 독자들이 읽지도 않을 책의 서평을 쓰는 건 시간낭비란다. 당연히 출판사마다 게이츠에게 줄을 대려고 안달이다. 하지만 그의 비서들은 산더미같이 배달돼오는 기증도서들을 게이츠의 책상에 쌓아만 놓을 뿐 “선택되는 건 순전히 그분의 입맛대로”라고 귀띔했다.
알고 보면 억만장자 책벌레는 게이츠만이 아니다. ‘족집게 투자가’로 불리는 워렌 버핏은 하루의 80%를 뭔가 읽는데 쓴다고 했다. 월스트리트의 대선배인 벤자민 그래엄의 ‘총명한 투자가’를 19세 때 읽은 것이 평생의 최대 행운 중 하나라고 했다. 게이츠도 버핏의 권유로 존 브룩스의 ‘비즈니스 모험’을 읽고 경영의 요체가 바로 사람임을 깨달았다고 술회했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CEO는 전쟁과 사랑을 다룬 대하소설 ‘그날의 나머지들’을, 페이스북 CEO인 마크 저커버그는 그리스 신화가 바탕인 버질의 서사시 ‘이니이드(Aeneid)’를 각각 가장 감동받은 책으로 꼽았다. 기내 승무원에게 기합을 주고, 자가용 운전기사를 폭행하고, 해외여행 다니면서 사생아를 낳는 등 ‘갑질’이나 일삼는 한국 부자들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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