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얼마 전 어떤 정당의 창당준비위원장인 사회학자가 국립 4.19민주묘지 참배에서 행한 발언으로 때 아닌 국부(國父)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진보, 보수 진영은 물론 일반 시민들로부터 다양한 반응들이 나왔다.
‘국부’는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나라의 아버지’ 곧 ‘임금’을 뜻하는 말로 ‘국모(國母)’와 함께 군주국가 시대에 사용하던 전근대적 용어이다. 그 이후 점차 의미가 확장되어 사전에는 국부를 ‘나라를 세우는 데에 공로가 많아서 국민으로부터 아버지처럼 존경을 받는 사람을 이르는 말’로 풀이 되어 있다.
국부의 조건은 둘인 셈이다. 하나는 나라를 세우는데 공로가 커야 하고, 다른 하나는 국가의 기초와 나아갈 비전을 세우고 국가를 위하여 헌신하며, 애국(愛國) 애민(愛民)하여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충족해야 국부라 할 수 있다.
미국도 건국과 관련하여 국부에 해당하는 영예로운 칭호가 있다.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 of the United States) 이라는 칭호이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비롯하여 독립전쟁을 이끌고 독립선언문과 제헌헌법을 마련한 미국 역사 초기에 미국의 기초와 정신을 마련한 정치인들을 일컫는 표현이다. 미국은 ‘건국의 아버지’ 칭호를 어느 한 사람에게 주지 않았다.
요즘 앞의 사회학자의 발언처럼 ‘이승만 국부론’에 대한 주장이 많아지고 있다. 그는 정말 한국의 국부가 될 수 있는가? 적어도 두 가지 이유에서 설득력이 없다.
그 하나는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이나 공과에 대한 역사적 평가 때문이다. 그는 일찍이 배재학당에서 수학하여 신학문을 익힌 후 개화운동에 투신하였고, 독립협회 사건으로 투옥 되었음에도 수감자들에게 글을 가르쳤다는 남다른 애민(愛民)의 미담도 있고, 독립운동사에 국제 외교의 중요성을 인식시켰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3.1운동과 1919년 상해 임시정부의 전통 위에 있음을 헌법 전문에 밝히는 등 독립운동과 해방 전후 역사적 공간에서 지대한 공로가 있다. 이 점에 대하여는 분명 긍정 평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과오 또한 적지 않다. 독립운동 과정에 그가 보여 준 많은 갈등과 충돌과 분열들, 임정으로부터 받은 대통령직 탄핵, 정부수립 후 친일파 처리 실패, 6.25 발발 후 서울 철수과정의 국민 기만, 보도연맹 사건과 국민방위군 사건들, 불법적인 발췌개헌이나 사사오입 개헌, 3.15 부정선거 등등이 있는 공마저 희미하게 만들 정도다. 국부의 조건인 ‘국민으로부터 아버지 같은 존경심’을 받을만한 지 실로 의문이 든다.
다른 하나는 국부의 조건인 ‘나라를 세운데 공로가 많아서’에 관한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분명 독립운동과 건국 과정에 큰 역할을 했지만, 혼자 군계일학의 거대한 족적을 남기지 않았다. 오늘날 의회민주주의나 선거제도 역시 그 혼자 역설하여 실현시킨 것이 아니다. 미국의 독립과 건국에 ‘건국의 아버지들’이 있는 것처럼, 한국의 독립과 건국의 과정 또한 많은 훌륭한 애국지사들이 순국의 각오로 함께 하였다. 국부의 칭호를 어느 한 사람에게 돌릴 수 없다.
이승만 국부론은 동양의 명분론이나 정명사상에도 맞지 않는다. 공자는 제자가 정치에 대하여 묻자, ‘정명’(正名) 곧 명분을 바로 잡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주었다.(논어, 자로편) 그는 당대의 사회적 혼란을 명(名)과 실(實)의 불일치에서 일어난다고 보았다. 임금은 임금의 명분에 해당하는 실(實) 곧 업적과 덕을 실현해야 좋은 임금이라는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4.19혁명이 일어날 만큼 과(過)가 많은 대통령이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국부의 정의에 맞고, 정명사상에 부합하는 단 한 사람의 국부를 찾아내기는 어려울 지 싶다. 그 보다는 함께 진지하게 노력하여 자랑스러운 ‘건국의 아버지들’을 찾는 것이 갈라진 국민의 마음을 한데로 모으며 사회적 통합을 이루는 길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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