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은 랭킹(순위) 정하기를 좋아한다. 기를 쓰고 각 분야의 최고를 가려낸다. 매년 하버드?예일?프린스턴이 선두를 각축하는 명문대학 랭킹, 빌 게이츠가 요지부동 톱인 미국(또는 세계) 갑부 랭킹도 있다. 베스트셀러와 인기팝송 랭킹은 당연하고, 비 많이 오는 도시, 책 많이 읽는 도시, 물가 비싼 도시, 교통체증 심한 도시, 범죄 많은 도시 랭킹도 정한다.
역대 대통령 43명의 랭킹도 대학풋볼 팀 랭킹처럼 수시로 정한다. 오늘은 ‘대통령의 날’(2월 셋째 월요일)이다. 이날의 주인공인 조지 워싱턴(초대)과 아브라함 링컨(16대)이 늘 1~2위를 다툰다. 유일한 4선 대통령이며 뉴딜 정책으로 대공황을 타개한 프랭클린 루즈벨트(32대)가 대개 3위로 꼽히지만 조사기관에 따라 앞의 두 위인 대통령을 제치고 1위로 선정되는 경우도 있다.
위의 세 ‘수퍼 대통령’과 함께 토마스 제퍼슨(3대)과 시오도어 루즈벨트(26대)가 ‘톱 5’로 꼽히고, 이들을 이어 해리 트루먼(33대), 우드로 윌슨(28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34대), 제임스 폴크(11대) 및 앤드류 잭슨(7대)이 ‘톱 10’을 이룬다. 트루먼과 아이젠하워는 6?25 동란 때 북한 침공군을 막아주고 전쟁피해 복구를 도와준 한국 국민의 은인이기도 하다.
반대로 앤드류 존슨(17대), 프랭클린 피어스(14대), 워렌 하딩(29대), 밀라드 필모어(13대), 제임스 부캐넌(15대), 허버트 후버(31대), 리처드 닉슨(37대), 재커리 테일러(12대) 및 존 타일러(10대)가 ‘바닥권 10’을 이룬다. 취임 30일만에 사망한 윌리엄 해리슨(9대)과 200일만에 암살당한 제임스 가필드(20대)는 재임기간이 너무 짧아 랭킹대상에서 제외된다.
링컨은 우등생 중의 우등생이지만 그의 직전 선임자인 제임스 부캐넌은 낙제생이다. 유일한 펜실베이니아 출신 대통령이며 평생 총각이었던 부캐넌은 노예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한 북부와 남부 사이에 어설픈 리더십으로 화해를 중재하다가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켜 남북전쟁의 빌미를 자초했다. 역사가들이 그를 역대 최악의 대통령 가운데 하나로 꼽는 이유다.
대통령 랭킹은 영화배우나 가수처럼 팬들의 인기투표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존 F. 케네디(35대), 로널드 레이건(40대), 빌 클린턴(42대) 등은 국민들에게 비교적 인기가 높은 편이지만 통상적으로 상위 랭킹에 들지 못한다. 사학자와 대통령 전문학자들은 인기도보다 개인의 성품, 리더십, 비전, 소통력, 위기관리 능력, 정책추진력 등을 근거로 랭킹을 정한다.
레이건이 깜짝 1위로 꼽힌 적이 있다. 2011년 성인 1,015명을 대상으로 한 갤럽 설문조사에서 레이건이 1위, 클린턴이 3위. 케네디가 4위, 버락 오바마가 7위, 조지 W. 부시가 10위, 지미 카터가 12위에 올랐다. 링컨(2위), 워싱턴(5위), 프랭클린 루즈벨트(6위), 시오도어 루즈벨트(8위), 트루먼(9위), 제퍼슨(11위) 등 전통적 위인 대통령들은 뒤로 밀렸다.
한국의 박정희처럼 미국에도 평가가 극과 극인 대통령이 있다. 닉슨이다. 미국의 월남전 개입 종식, 중국과의 국교수립, 구소련과 ‘데탕트’(해빙) 조성, 징병제 폐지, 아폴로 11호 달착륙 주도 등 혁혁한 공적으로 ‘톱 10’에 들만했지만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파렴치한이라는 낙인이 찍혀 탄핵위기에 몰렸고 결국 임기를 못 채우고 사임한 유일한 대통령이 됐다.
한국에선 꼭 그렇지도 않지만 세계최강국인 미국의 대통령은 “하늘이 낸다”고 할만하다. 피 말리는 예선과정에서 살아남는 것부터 하늘의 가호 없이는 어렵다. 요즘 돌풍을 일으키는 ‘뜨내기’ 버니 샌더스(민)와 ‘애물단지’ 도널드 트럼프(공)가 하늘이 내린 인물인지는 알 수 없다. 설사 그들이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해도 역대 랭킹 중 어디쯤 낄지 알 수도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대통령후보가 역대 최고랭킹에 오르긴 어려울지 몰라도 역대 최악을 면하긴 어렵지 않다. 가다피와 후세인 덕분이 아니다. 고모부를 비롯한 측근들을 토끼사냥 하듯 총살하고, 국민은 굶기면서 핵폭탄과 미사일 실험에 열 올려 국제깡패가 된 북한의 김정은을 능가할만한 최악 랭킹의 통치자는 더 이상 없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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