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 6개월여 호놀룰루 미술관에는 한국인 큐레이터가 함께 했다.
그동안 그는 호놀룰루 미술관에서 잠자고 있던 1,000점이 넘는 한국문화재들을 흔들어 깨웠다. 이 사실이 생소하다면, 지난 8개월간 본보에 연재됐던 ‘호놀룰루 미술관(Honolulu Museum of Art)’ 관련 칼럼을 읽어보길 권한다. 미술관 내 한국문화재들이 긴 잠에서 깨어나 그렇게 깊고도 다채롭게 단장되어 일반인들에게 소개된 것은 아마 전무후무 할 것이다. ‘한국미술 담당 큐레이터가 있어서 이런 게 좋구나’, 칼럼을 통해 조금씩 미술관을 알아가려고 하는데 기어이 아쉬운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한국인 큐레이터 오가영 씨가 파견기간을 마치고 4월 귀국한다. 서둘러 귀국 전 인터뷰 자리를 마련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호놀룰루 미술관과 함께하며 차곡차곡 많은 경험을 챙겼을 그에게 한국인 큐레이터로서의‘생각’을 많이 물어봤다.
<윤다경 리포터>
매번 본인 소개하느라 애먹었을 것 같다. 호놀룰루 미술관에 한국인으로는 혼자, 대체 어떻게 오게 된 것인가.
호놀룰루 미술관은 이미 한국미술과 관련해 선구적인 입지를 가지고 있다. 양과 질 모두 갖추고 있고 역사적으로는 1927년 미국 내 최초로 한국전시실을 열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런 호놀룰루 미술관이 한국문화재와 관련해 사업을 펼치길 원했는데, 마침 한국문화재를 소장한 해외미술관 지원사업을 하고 있는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과 뜻이 맞아 한국인 객원큐레이터를 1년간 파견하게 됐다. 그게 하필 내가 된 이유는 내가 도자전공자였고 미술관 한국문화재의 50% 이상이 도자기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파견 목적은 달성했나.
계획했던 굵직한 사업은 완수가 됐다. 작년 8월부터 11월까지 한국도자 특별전을 열었고 미술관에 소장중인 한국문화재의 도록을 발간했다. 나의 파견이 의미를 더한 부분이 있다면, 특별전 기획 때 재발견된 문화재가 있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청자 소장품의 가치가 높은 건 이들도 알고 있었는데, 수장고를 들여다 보니 분청이나 백자 소장품도 가치가 높았다. 덕분에 계획했던 것보다 더 많은 작품을 아우르는 특별전이 될 수 있었다.
파견기간을 마치면서 생긴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외국에서 한국미술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건 단순히 작품설명을 외국어로 번역한다고 끝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해당 문화권 사람들의 관점을 알아야 하는 일일 거다. 이번에 기르기 시작한 그런 관점을, 외국에서 한국미술을 알리는 데 쓰면 어떨까, 안 그래도 최근 많이 하게 된 생각이다.
파견기간동안 본 한인들의 한국문화재에 대한 관심도는 어땠나.
이제와 말하지만 미술관 측은 내가 한인 커뮤니티와 미술관이 더 긴밀히 연결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주길 바랐다. ‘단기파견’된 내가 이를 주도하긴 사실 조심스러운 입장인데, 주어진 신분으로 최대한 노력했다. 한국일보 칼럼연재도 그 일환이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한인들의 수요가 꽤 높다는 걸 알게 됐다. ‘칼럼읽고 왔다’며 한국실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보는 이가 있는가 하면, (부끄럽지만) 그 동안의 미술관 칼럼을 모아뒀다는 애독자도 만났다. 이들이 느꼈던 갈증이 얼마나 컸는지 느껴지더라. 칼럼연재기간이 예정보다 길어진 건 그 탓이다. 지금도 미술관 한국문화재의 현황과 각각의 이야기를 한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려주는 통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럼 연재글에 대해 묻겠다. 총 33편, 긴 여정이었는데 가장 만족스러운 원고와 가장 쓰기 힘들었던 원고를 꼽는다면.
말도 마라, 모든 원고가 힘들었다(웃음). 일 주일에 한 편, 쉬운 일 아니더라. 일단 소재선정부터 그 소재의 수많은 면 중 어떤 면을 부각시킬 것인지, 이게 결정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수위조절이 어려웠다. 내 입장에서 유익한 칼럼을 쓰려면 쉽고 재미있는 내용만 다룰 게 아니라 전문적인 내용도 다뤄야 했다. 그래서 전문용어를 어떻게 풀어 쓸지 고민했고, 특히 전공분야가 아닌 영역을 다룰 때는 자료조사에 며칠을 쓰기도 했다. 아무쪼록 칼럼이 어렵지 않게 다가갔길 바라고 있다. 그리고 가장 만족스러운 원고는 첫 원고(2015년 7월 14일자)다. 미술관의 한국에 대한 애정을 다룬 내용인데, 아마 이 원고가 꽤나 만족스럽게 써지길래 연재를 좀 만만히 봤던 것 같다(웃음).
마지막 원고(2016년 2월 23일자)의 마지막 문장이 ‘한국에 특별한 애정을 보인 호놀룰루 미술관이 그 뜻을 지켜갈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을 바라는 마음이다’였다. 어떤 심정으로 쓴 한 줄이었나.
내가 사라져도 호놀룰루 미술관에는 한국 문화재가 숨쉬고 한국사랑이 이어져갈 것이다. 실제로 호놀룰루 미술관 관계자들도 한국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이유다. 물론 ‘미술’이라는 영역이, 생계와 먼 영역일 수는 있다. 하지만 수장고에 있는 문화재들을 생각하면 진심으로 관심을 호소하고 싶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그 관심은 한국미술에 대한 ‘경제적 후원’인가.
글쎄, 경제적 후원을 논하긴 조심스럽다. 그건 좀 건방진 것 같다. 어디까지나 나는 단기파견된, ‘곧 갈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사립미술관(호놀룰루 미술관은 사립미술관에 속한다)에 그런 입김이 작용하는 건 맞다. 작품의 연구·보존·전시에 후원이 클수록 해당 카테고리 작품의 입지가 커지는 건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일단은 말 그대로 한인들의 ‘관심’이 필요할 것 같다. 이를 테면 미술관 뉴스레터를 이메일로 받아본다거나, 연간회원권(연 25달러)으로 자유롭게 미술관을 다닌다거나 하는 관심. 뉴스레터를 받다 보면 한국문화재 관련 행사정보나 미술관 극장의 한국영화 상영소식에 노출될 테니까.
<사진설명: 인터뷰 중인 오가영 큐레이터(위), 큐레이터가 추천한 미술관내 공간: 지중해식 정원(아래)>
솔직히 미술관은 아직 문턱이 높은 곳이다. 일반인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미술도 역사처럼, 과거를 통해 배우고 미래를 그려가는 것이다. 전공자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영감을 준다는 뜻이다. 호놀룰루 미술관은 특히나 과거작품과 현재 작품이 쌓여가고 있는 공간. 관람객도 미술관을 볼 때 ‘과거’가 아니라 ‘흘러가고 있는 현재’라는 걸 알았으면 한다. 그렇게 보면, 꼭 어려운 공간만은 아니지 않겠나. 무엇이든 한번에 흥미를 찾는 건 어렵겠지만, 좋은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레 친근해지지 않을지? 그 경험은 꼭 ‘작품’에서 찾지 않아도 된다. 호놀룰루 미술관에는 예쁜 정원이 많은 편인데, 그런 정원에서 분위기를 즐길 수도 있다. 큐레이터로서 이런 말 가볍지만, 더 쉽게 얘기하자면 ‘쇼핑’처럼 즐기는 건 어떨지. 어떤 날은 눈으로만 보는 날, 어떤 날은 특정 아이템만 집중해서 보는 날… 그렇게.
한 달에 한 번 있는 무료관람일(뱅크오브하와이 패밀리데이 Bank of Hawaii Family Day)에 방문하면 부담도 없을 거다.
그럼 미술관 한국문화재에 대해 자랑 좀 해달라.
한국문화재 1,000점 중 반 이상이 ‘도자기’다. 사실 전세계 미술관 어느 나라 섹션이든 가장 많은 게 ‘도자기’다. 그건 종이나 나무에 비해 보존이 좋은 탓이다.
그런데 도자기의 좋은 점이 또 하나 있다. 그 지역 사람들의 문화가 그대로 담긴다는 점이다.
도자기는 애초에 사용을 목적으로 만들어지기에, 생활문화를 엿볼 수 있다. 특히 한국은 도자기가 곧 식기였기에 문헌기록을 넘어선, 사람들의 ‘먹고 사는’ 모습이 배어있다. 재료를 보면 그 지역의 흙이 어땠는지가 보이고, 크기를 보면 당시 식문화가 짐작되며, 장식을 보면 한국인의 보편적인 미감(美感)까지 느껴진다. 일본과 중국의 도자기와는 또 다른, 한국인의 정체성이 가장 잘 보이는 게 도자기인 것 같다.
게다가 한국도자기는 세계적으로 손꼽힐 만큼 ‘아름답고, 좋고, 실용적’이다. 심지어는 과거의 도자기가 ‘최근에 만든 것 같다’는 평을 들을 정도다. 시공을 초월해서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할 만한 가치가, 바로 한국도자기와 한국문화에 담겨있다는 뜻이다.
독자들이 미술관에 와서 한국도자기를 볼 때 이런 사실도 염두에 둔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그렇게 한국작품을 맡겨 놓고가는 어미의 심정으로, 그는 관심과 사랑을 당부하며 사무실로 발길을 돌렸다. 오 씨는 이달 말까지 호놀룰루 미술관에서 근무한다.
<약력>
오가영
호놀룰루미술관 한국국제교류재단 파견 객원 큐레이터 (2014. 10 ~ 2016. 3)
서울예술고등학교 졸업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및 동 대학원 미술사학과 졸업
경기도자박물관 학예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및 숙명여자대학교 강사 역임
주요 경력
2009 제5회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특별전 <분원백자전-조선후기 청화백자>, <분원백자학술세미나> 코디네이터
2007 제4회 세계도자비엔날레 특별전 <동서유물의 보고: 터키> 어시스트 큐레이터
2005 제3회 세계도자비엔날레 특별전 <청자의 색과 형; 한국과 중국의 청자 비교전>, <청자 국제학술 세미나> 코디네이터
2004 특별전 <한국 차문화와 다기전>
2003 제2회 세계도자비엔날레 특별전 <조선도자 500년전>, <한국도자특별전> 어시스트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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