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 바울 사역지.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 등록
▶ 동굴교회, 박해시기에는 은밀한 예배처
카파도키아 괴레메 마을 전경. 화산으로 생긴 돌산이 들쯕날쯕 마을속에 보이고 멀리 우츠히사르 성이 보인다.
1) 요정의 굴뚝
1712년 어느 날 프랑스 루이 14세의 아나톨리아 원정대 폴 루카스(Paul Lukas)는 카파도키아의 크즐으르막(붉은 강) 근처에서 자기 눈을 의심해야 했다. “아니, 여기에 웬 피라미드?” 인근의 에르지에스산과 핫산산 사이 약 25,000 평방 킬로미터의 땅에 19차례의 대규모 화산폭발로 조성된 ‘요정의 굴뚝’이라 불리는 콘(cone) 형태의 독특한 카파도키아 지역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방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카파도키아. 그 지명은 페르시아 사트랍(총독) 지배 당시 아름다운 말(horse)들의 땅이란 뜻의 카트파투카(Katpatuka)에서 왔다고 전해진다. 아나톨리아 중앙에 위치하여 현재 유네스코의 문화재로 등록된 카파도키아는 앗시리아, 페르시아 및 헬레니즘 시대의 도시 왕국을 거쳐 왔고, 알렉산더 대왕 사후(BC 323) 로마제국의 속주가 되기 전까지는 독립왕국을 지켰다.
후에 카파도키아 왕국은 유대지역의 헤롯 왕가와 인연을 맺는데 이는 본도와 비두니아의 이웃 왕국처럼 로마제국의 동쪽, 유대-시리아의 안보 벨트 확보 차원의 결혼동맹인 셈이다.
2) 삼위일체론 정립
카파도키아는 신약성경에서 두 곳(행2:9, 벧전1:1)에서 언급된다. 기독교인들의 성령강림절인 오순절에 각 지역에서 예루살렘으로 온 유대인 그룹들 중에 이 지역 출신이 포함되어 있었고, 베드로서신의 수신자 그룹중 하나로 언급된 것으로 보아 이 지역이 사도 베드로의 사역지 중 하나였다고 볼 수 있다.
교회 역사에서 콘스탄티누스가 313년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후 교회는 “예수님이 하나님인가 아니면 인간인가?”하는 논쟁에 휩싸이게 된다. 이때 카파도키아 교부 3인(가이사리아의 바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 닛사의 그레고리)이 니케아 정통 신앙(325년 니케아 공의회, 현 터키의 이즈니크)의 맥을 이으며 기독교 사상사에 등장,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 오늘날 터키 이스탄불)에서 그레고리우스의 “성령도 하나님”이시며 “성부 성자와 함께 우리의 찬양과 영광을 받으실 분”이라는 대목이 확정됨으로 기독교의 ‘하나님’ 이해가 유대교나 이슬람과는 다른 ‘삼위일체론(성부 성자 성령의 3위가 하나의 본질)’으로 정립되었다.
삼위일체교리는 추상적 논쟁을 위해 만들어진 이론체계가 아니고, 기독교인들의 삶 속에서 그간 만나고 체험하고 고백되어진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의 상호 관계를 이해하도록 정립해 준 교부들의 선물이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한 본질”이시지만, 삼위 간의 내부적 관계는 물론 인간과의 관계방식도 우리가 기계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의 영역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동방교회의 삼위일체론은 서방교회의 그것과는 달리 “한 본질”을 지향하며 3위의 ‘다양성’에 강조를 두는 경향이 있어 다양한 사상과 전통 및 그 해석들이 섞여 복잡해진 포스트모던의 현 시대에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해 준다.
3) 바위산 속의 음성
카파도키아의 명물은 당연히 지하도시와 바위산 굴속에 있는 교회들이다. 1991년부터 2000년까지 이탈리아 지하연구센터 주도로 조사된 183개 중 몇 개의 지하도시는 여행자들에게는 공개 되어 있다. 괴레메(Göreme) 지역의 야외 박물관은 특히 필수 방문지이다.
화산으로 인한 수 많은 기암괴석 속 굴들이 한 때는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피난처로, 박해시기에는 기독교인들의 은밀한 예배처로, 또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세속화 시대에는 믿음의 순수성을 지키고 영성을 갈고 닦기 위한 수도원으로 이용되었다. 이 지역이 기독교의 수도원으로 약 1 천여년 동안 사용되어진 것은 4세기 이 부근에서 태어나 후에 동방교회 수도원의 아버지라 불리던 ‘바실’의 공헌 때문이다.
콘스탄티노플과 아테네에서 고전을 공부하고 이집트를 방문한 후 이 곳에 돌아온 바실은 이 곳에 기독교 공동체를 건설하고 바위산 언덕 굴 속 곳곳에 많은 교회를 세웠는데, 지금까지도 굴 속 교회 벽에는 수 많은 성화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카파도키아는 혼자 걸을 때 그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어도 된다. 앞에 들쭉날쭉 제멋대로 생긴 바위 산들 속에 지하도시가 있고 그 속에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박해를 피해 영성을 갈고 닦기 위해 땀과 피를 흘린 교회들이 있다. 혼자 걸으며 그 분들의 숨결과 신앙의 흔적을 더듬고 그 분들을 만나 주신 하나님과 영적인 교감을 나누면 그게 예배고 그게 기도가 된다.
이 곳을 산책하노라면 『모세의 생애』를 통해 기독교의 영성을 “빛과 구름, 어둠”으로 표현했던 ‘닛사의 그레고리’를 떠올리게 된다. 여기 저기 언덕 위에서 계곡 아래로 땅 속 지하를 더듬다가 다시 어둠 속에서 나와 세상 풍광 속 길을 걸을 때 맛보는 벅참과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 세계의 기쁨을 누려보는 거룩한 땅이다. 바람, 꽃, 새 들이 그리고 어둠 속 별빛이 남다르게 느껴지는 곳이다. 자기 안에 갇혀있던 내향적 사고가 자기의 내면을 뚫고 우주 은하 자연세계 인류사회를 향해 동시적으로 뛰쳐나오는 행운을 만날 수도 있다.
또 다시 언덕과 골짜기, 지하도시, 지상의 마을들. 길을 따라 가는 여정. 시선이 위에서 아래, 지하로, 다시 지상의 일상으로 옮기는 여정을 통해 우리의 인생길과 신앙여정을 생각해 본다. 특별히, 일부 바위 교회는 어딘가 부족하고 비뚤어진 얼굴처럼 보이지만 그냥 그 엉성함이 아름답고 그 모습에서 묘한 질서를 느낀다. 자연미라고 할까?
순간 우리 현대교회, 우리 크리스찬들이 회복할 것 중 하나는 우리 서로가 각자의 엉성함과 비뚤어진 모습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그 속에서 하나님이 부여해 주신 질서를 찾는 작업이 아닌가도 생각을 해 본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다 다르지만 나름대로 가진 믿음의 분량만큼 일상의 삶에서 믿고 살고 섬기고 살게 부르신다. 창조세계의 다양함과 아름다움을 보시고 “심히 좋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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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존 / 카파도키아 영성훈련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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