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에서 식구들 혹은 친구들하고 고기를 구워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맥주도 곁들이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어갔던 기억들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특히 미국의 독립기념일은 그야말로 바비큐를 위한 기념일이라고 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야외에서 바비큐를 즐기는 것 같다.
그런데 바비큐를 하면서 늘 생각하는 한 가지는, 왜 밖에서는 왜 여자들이 아닌 남자들이 고기를 구울까 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일 때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주로 여자들인데 유독 밖에서 고기 굽는 일은 남자들 몫이다.
남자들끼리 불가에 모여 서서 술도 서로 권하면서 호쾌하게 농담하고 웃으며 고기를 뒤집고 굽는다. 적당히 잘 익은 고기를 한 점 집어서 집안의 눈치를 살짝 보며 먹는다. 도대체 왜 우리 남자들은 이렇게 밖에서 굽는 바비큐를 즐길까. 언제가 한 바비큐 요리책 서문에서도 본 적이 있는 내용이지만 그 답의 실마리를 찾으려면 수만년 전 혹은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오래전 우리 인류가 비로소 지금의 인류 같은 모습을 갖추기 시작할 무렵, 즉 농경사회가 정착되기 시작할 무렵 곡식과 채소는 모여 사는 부락 주변에서 키우며 조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류 진화에 결정적인 우리 뇌의 발달과 유지에는 양질의 단백질의 공급이 절실한 때였다.
당연히 동물들을 잡아서 단백질 섭취를 할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그 역할은 힘이 센 남자들의 몫이었다. 때로는 하루 종일, 때로는 며칠 혹은 더 오랫동안 사냥을 나가서 동물을 잡고 잡은 동물은 식구들이 있는 부락으로 가져와서 먹였으리라 짐작된다.
사냥은 공동작업이다. 혼자서는 힘들다. 힘이 약한 동물도 한군데로 몰아서 잡으려면 여러 명이 같이 하는 게 좋고, 맹수를 만나면 혼자일 경우 위험하다. 여러 명이 같이 며칠씩이고 다니며 사냥하면서 긴장감 속에 빠져 있다가, 어두워지면 불을 피워 다른 맹수의 공격을 차단하면서 사냥으로 잡은 동물을 구워먹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 남자 조상들은 몇만년, 몇십만년을 살았다. 그 선사시대의 기억이 지금 우리의 핏속에 남아있는 것이다.
우리 집에는 10년째 키우는 강아지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키워 와서 자라온 모습을 쭉 지켜볼 수 있었다. 키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개들이 좋아하는 뼈다귀 모양의 과자를 주었더니 그걸 소파로 가져가서 발로 흙을 파듯 막 긁더니 소파 쿠션 사이로 숨기는 것이 아닌가. 태어나서부터 집 안에서만 키워 흙은 밟아본 적도 없는 녀석인데 말이다.
그 행동은 본능적인 것이었다. 그것도 흔히 말하는 식욕, 성욕 같은 포괄적인 본능이 아니라 앞다리로 소파를 마치 흙처럼 긁고 좋아하는 물건을 감추는 아주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행동이었다. 개의 DNA에 이런 게 각인되어서 어린 강아지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행동을 했던 것이다. 유전이라는 것이 본 적도 없고 배운 적도 없는 행동을 자동적으로 하게 하는구나 라는 놀라운 경험을 한 순간이었다.
우리의 DNA에도 조상들이 오랫동안 해왔던 습관과 행위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는 것이다. 집을 떠나 들판을 다니며 사냥을 하고, 불을 피워 둘러앉아 고기를 구워 허기를 달래며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던 우리의 조상들. 신선한 야외의 공기, 달아오르는 불의 열기, 익어가는 고기의 냄새는 우리를 몇십만년 전의 그 야생의 들판으로 데려간다.
치열한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세계에서 살아남은 조상들. 맹수에 물려 죽지 아니하고 성공적으로 잡은 사냥감을 가지고 뿌듯함으로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던 우리의 조상들. 그렇게 살아남은 자만이 느끼는 강인한 충만감이 우리의 DNA에 각인되어 지금도 우리의 행동을 통해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바비큐 때는 옆에서 같이 굽고 있는 사람과 악수를 나누며 이렇게 인사를 나누면 어떨까. “정말 오랜만이네, 한 10만년 됐나?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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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고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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