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여지도가 뭔지 모르는 한인은 드물 것 같다. 이조말엽(1861년) 지리학자 김정호가 목판으로 찍어 만든 최초의 대규모 한국지도인데 인공위성 사진으로 만든 요즘 지도와 거의 똑같다. 몇 개 안 남은 그 대동여지도의 컬러판 원본 가운데 하나가 서울에서 경매에 붙여진다. 추정가격이 무려 22~25억원이란다. 경매과정에서 엄청나게 더 뛸 터이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훨씬 앞서 미국에선 ‘대서여지도(?)’가 만들어졌다. 미국이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 영토를 매입한 다음해인 1804년,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구성된 육군 탐험대가 St. 루이스부터 태평양까지 전인미답의 서부지역을 2년4개월에 걸쳐 답사하며 지도를 만들고 지형지물, 생태현황, 특히 인디언 부락들의 위치를 기입했다.
체력 좋고 모험심 강한 자원병 33명으로 이뤄진 탐험부대는 제퍼슨 대통령의 비서인 메리웨더 루이스 대위와 그의 친구 윌리엄 클라크 소위가 공동으로 지휘했다. 그래서 ‘루이스 & 클라크 탐험대’로 불린다. 길 없는 산을 넘고 통나무배로 강을 헤쳐 가며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긴 탐험대는 장장 4,000마일의 여정을 마치고 1806년9월 동부로 귀환했다.
이 탐험대를 크게 도와준 비 대원이 있다. 도중에 낀 인디언 여성 새커저위어이다. 그녀는 탐험대에 길을 안내했을 뿐 아니라 여정 중 맞닥뜨린 20여 원주민 부족의 적대행위를 무마시켰다. 미국정부는 그녀의 공로를 기려 지난 2000년 새커저위어 기념 1달러 주화를 발행했다. 곳곳에 그녀의 동상이 세워졌고 그녀의 이름을 딴 공원과 등산로도 수두룩하다.
탐험대의 최종 목적지였던 콜럼비아강 어귀의 워싱턴-오리건 접경지역이 지난 2004년 국립사적공원으로 지정됐다. 이곳엔 탐험대가 여정의 마지막 겨울을 넘긴 오리건의 ‘포트 클랫섭(Fort Clatsop)’과 ‘케이프 디스어포인트먼트(Cape Disappointment)’라는 이상한 이름의 워싱턴주 주립공원이 포함돼 있다. 포트 클랫섭은 이미 1958년 국립기념지가 됐다.
얼마 전 케이프 디스어포인트먼트 주립공원을 찾아갔다. 우리말로 ‘실망 곶’이다. 곶은 바다로 삐죽이 나온 육지를 뜻한다. 한자로는 갑(岬)이다. 몽금포타령에 나오는 ‘장산곶 마루’에서 북한이 2년 전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었다. 콜럼비아강 하류에 다가서면서 도로변에 루이스 & 클라크 사적지 표지판이 꼬리를 이었다.
맨 먼저 만난 사적지 이름도 괴상했다. 워싱턴주와 오리건주를 잇는 아스토리아 다리 직전 길 가의 ‘디스멀 니치(Dismal Nitch)’이다. 탐험대가 태평양에 다다르기 직전 엄청난 태풍을 만나 6일간 옴짝달싹 못하고 물에 빠진 생쥐가 돼 피신해 있었던 강변 벼랑의 ‘참담한 틈바귀’이다. 지금은 410번 하이웨이의 휴게소로 둔갑됐는데 특별한 사적 기념물은 없다.
‘실망 곶’ 이름은 1778년 영국 모피상인인 존 미어레스가 붙였다. 그는 스페인 탐험대의 신대륙 지도에 나타난 큰 강을 찾아왔다가 콜럼비아강 어구가 너무 넓어 바다로 착각하고 실망해 돌아가면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그 후 이곳은 ‘케이프 행콕,’ ‘포트 캔비’ 등으로 바뀌었다가 워싱턴주 정부가 외지인들의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실망 곶’으로 환원했다.
이름 덕분인지 그날도 방문객이 꽤 많았다. 공원엔 등대가 두 개 있다. 남쪽 등대는 워싱턴주 최서남단에 자리 잡고 있다. 인근의 루이스 & 클라크 박물관은 꼭 들러야 한다. 탐험대의 고난 여정을 보여주는 그림과 유물이 전시돼 있고 영화도 상영된다.
공원 캠핑장에서 삼림 등산로(1.2마일)를 따라 올라가면 그림 같은 북쪽 등대가 나온다. 태평양의 광활한 경관이 압권이다. 바람이 엄청 거세다. 비치도, 방파제도 볼만해서 ‘실망’하지 않는다. 루이스와 클라크의 족적이 귀하게 보존된 이 공원을 떠나면서 이들과 동시대를 살았지만 공적비도, 생애기록도 없는 평민 지리학자 김정호에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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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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