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험보다 ‘안전’ 택한 프로그램, 난도 떨어져 메달 실패
손연재(22·연세대)가 올림픽 프로그램을 짜면서 간과한 것이 한 가지 있다.
다른 선수들도 자신과 비슷한 전략을 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손연재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맞아 새 프로그램을 짜면서 영리하게 전략을 폈다.
우선 손연재는 모험을 피했다. 자신에게 맞는 난도를 정확하게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기술인 포에테 피봇의 난도를 높이고, 댄스 스텝을 프로그램 사이에 빼곡하게 집어넣은 것이 대표적이다.
어려운 동작에 도전했다가 실수를 해서 점수가 깎이느니 차라리 쉬운 동작이라도 정확한 수행으로 챙길 수 있는 점수를 모두 챙기는 방식을 택했다.
4년 전의 경험 때문이다. 손연재는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곤봉에서 실수가 나와 아쉽게 메달을 놓쳤다.
여기에 올림픽만의 엄격한 채점 성향을 파악한 손연재는 고득점을 노리기보다는 감점 요인을 없애고, 실수의 위험성을 줄이는데 치중했다.
지난 1월 국가개표 선발전에서 처음으로 새 프로그램을 가동한 손연재는 다시 자신의 능력치에 맞게 프로그램을 수정하고 다듬었다.
특히 손연재는 겨우내 체력 훈련을 열심히 한 결과 동작이 빨라지고 정확해지면서 감점 요인이 사라졌다.
지난해만 해도 손연재는 턴하다가 중심을 잡지 못해 비틀거리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그러나 복근과 허리 등 속 근육을 강화한 올 시즌에는 턴이 훨씬 더 정확해지고 동작 자체가 깔끔해졌다.
손연재는 올 시즌 가파른 상승세를 그렸다.
프로그램의 완성도가 높아지면서도 점수도 상승 일로였다.
손연재는 올 시즌 첫 국제대회인 모스크바 그랑프리 개인종합에서 72.964점으로 개인 최고점을 갈아치우며 첫 은메달을 따내다.
손연재가 2011년부터 출전한 이 대회에서 개인종합 메달을 따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는 첫 월드컵 대회인 에스포(73.550점)를 시작으로 리스본(72.300점), 페사로(73.900점), 소피아(74.200점), 과달라하라(74.650점)에 이어 마지막 카잔(74.900점) 월드컵까지 거의 매 대회 개인 최고점을 새로 썼다.
지난 시즌 18.5점대를 한 번도 넘어서지 못했던 손연재는 올 시즌에는 최대 18.900점까지 받는 선수가 됐다.
그러나 다른 선수들도 손연재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게 함정이었다.
손연재의 동메달 경쟁자로 거론되는 간나 리자트디노바(우크라이나), 멜리티나 스타뉴타(벨라루스)와 같은 동유럽 선수들은 실수하더라도 높은 난도에 도전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것이 스포츠인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이는 두 선수가 지난 시즌 손연재보다 월등하게 높은 점수를 받은 배경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실수의 위험성도 컸다.
손연재가 상대적으로 안전한 프로그램을 선택한 것도 이들 동유럽 선수들의 허점을 파고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두 선수는 올림픽 시즌인 올해 예상과는 달리 평범한 프로그램을 들고 나왔다. 손연재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두 선수 역시 손연재와 마찬가지로 4년 전 런던 올림픽을 경험했고, 올림픽에서 살아남으려면 모험적인 요소를 최대한 없애는 것이 상책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손연재는 난관에 봉착했다.
리자트디노바는 올 시즌 손연재를 상대로 월드컵에서 4승 1패를 거뒀다. 올 시즌 첫 월드컵에서만 자리를 내줬을 뿐 이후 대회에서는 격차가 계속 벌어졌다.
손연재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구 난도와 신체 난도를 보유한 리자트디노바가 실수의 가능성까지 지워버리면서 손연재의 전략은 결국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20일 리우 올림픽 경기장에서 열린 리우 올림픽 리듬체조 개인종합 결선은 결국 리자트디노바가 3위, 손연재가 4위로 끝이 났다.
리자트디노바는 4종목에서 러시아의 세계적인 '투톱'을 위협할만한 점수는 얻지 못했다. 하지만 손연재를 따돌리기에는 충분했다.
리자트디노바가 궁극적으로 노렸던 것은 금메달이 아니라 동메달이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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