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점점 ‘부끄러움’이 사라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남에게 결례나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고도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다. 방송 매체를 보면 절도나 폭행을 하다가 잡히거나 심지어 사람을 죽이고도 부끄러워하거나 뉘우치는 기색이 없는 사람들, 정치인이나 공직자로 뇌물을 받거나 불법을 저지르고도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자신의 혐의를 부정하는 뻔뻔한 사람들의 모습을 자주 접한다. 부끄러움의 상실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부끄러움이 사라지고 후안무치와 뻔뻔함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양심에 거리낌이 있어 떳떳하지 못한 마음을 ‘부끄러움’(염치)이라 한다. 부끄러움은 개인적으로 양심과 도덕의 원천이요, 사회적으로는 정의로운 공동체를 이루게 하는 기본 가치이다. 그러므로 부끄러움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 사람이라면 반드시 지녀야 할 소중한 덕목이다.
‘부끄러움’의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을 깊이 통찰한 시인으로 윤동주 시인을 들 수 있다. 윤동주 시인처럼 ‘부끄러움’을 그렇게 깊고 진솔하게 노래한 시인도 드물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 많은 이들에게 애송되는 그의 ‘서시’의 핵심은 ‘부끄러움’이다. 그에게서 ‘부끄러움’은 개인의 차원과 시대적 차원을 넘어 우주로 이어진다. 그는 부끄러움으로 하늘을 보아야함을 알려주었다. 이 외에도 <별 헤는 밤> <참회록> <길> 등에서 ‘부끄러움’의 의미를 통하여 ‘내면의 순수성’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주었다.
윤동주 시인의 삶을 다룬 영화 <동주> 역시 ‘부끄러움의 미학’을 통하여 대중과 만난다. 영화 속 시인은 부끄러움의 다양한 면을 보여준다. 자신보다 앞서며, 자신이 갖지 못한 면을 지닌 친구이자 사촌을 보며 부끄러워한다. 물론 이는 질투나 시기와는 다르다.
그는 또한 일제의 식민지 하에서 친일이나 매국이 아닌 그저 살아 있음 그 자체를 부끄러워한다. 그는 창씨개명이나 징집명령 조선어를 쓰지 못하는 암울한 상황에서 드러내 저항하지 못하고 그저 시를 통하여 하늘과 바람과 별을 노래한다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시인의 삶에 비추어 보면 오늘 우리는 얼마나 뻔뻔한 세상을 살아가는가?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은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수치나 모멸의 공격적 언어로 사태를 무마한다.
사람들은 도덕과 양심에 대하여 성찰하지 않는다.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불편이나 피해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는다. 예의와 배려가 없으며 뻔뻔하며 기고만장하다.
부끄러움이 없는 사회는 삭막하다. 파렴치가 일상이 되고, 이른바 갑질이 끊이지 않는 세상이 된다. 속임과 불신, 각종 불의와 기회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될 것이다. 부끄러움이 없는 세상은 ‘차마 하지 못함’이 없는 세상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다시 ‘부끄러움’을 회복해야 한다. 『맹자』에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非人也)는 말이 나온다. ‘나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다른 사람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 이 사람됨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부끄러움’이 사람됨의 본질임을 의미한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경전인 구약성경에 나오는 이사야나 에제키엘같은 예언자 역시 ‘부끄러움’을 아는 사회가 될 것을 선포한다.
한국에서 윤동주 시인이라면, 독일에서는 브레히트(Bertolt Brecht)가 나치 치하에서 살아남은 것조차 부끄러워하며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썼다. 두 시인은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쳐준다.
부끄러움은 나를 지켜 양심과 옳음을 지켜가게 하며, 옳지 못함을 미워하고, 세상을 맑고 건강하게 한다. 부끄러움을 배워야 한다. 부끄러움 없음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사람의 길이며, 이 시대 사람이 지녀야 할 큰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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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석/ 성공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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