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일본군의 성노예였다”
▶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피 토하는 애절함
나눔의 집 앞에 세워진 고인이 된 피해 할머니들의 흉상.
"일본정부와 싸우는 것은 진정한 사죄 받고 싶어서”역사교육 위한 인권박물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도 있어 소녀상 옆에는 대학생들 1년간 천막 농성 펼치며 철거 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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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가주 한인들은 지난해 매우 의미 있는 일을 해냈다. 한국인 특유의 저력을 그대로 보여줬다.
세계 최초로 한인커뮤니티와 중국커뮤니티가 힘을 합쳐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위안부 기림비' 제작비 마련 관련 얘기다. 한인 커뮤니티에 할당된 10만 달러를 단지 1개월도 되지 않은 사이에 모금을 끝냈다. 이는 한인들의 힘이 하나로 모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인들의 이 같은 정성에 힘입어 지난해 12월 7일에 이르러 SF지역 위안부 기림비 제막을 위한 공모전 1위 작품이 발표되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였으며 드디어 올해 초순에 공사를 시작, 오는 9월경에는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 제막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이에 본보는 SF다운타운의 세인트 메리 스퀘어에 세워질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 제막에 앞서 본국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위치한 세계 최초의 '성노예 테마 인권박물관'과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이 함께 거주하는 나눔의 집,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하는 학생들을 직접 만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조명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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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6일 또 한분의 일본군에 의한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가 별세했다.
경남 남해에 거주하고 있던 박숙이(93) 할머니가 그 장본인이다. 이에 앞서 지난 7월 10일에도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 거주하던 유희남 할머니가 향년 88세로 별세했다.
이로써 스스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임을 밝히고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39명(국내 37명, 국외 2명)만이 존재한다. 일본 제국주의 군부로부터 직접 피해를 당했던 성노예 피해자들이 일본정부의 바램처럼 이렇게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럼 본국정부에서 공식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란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 먼저 살펴보자.
일본군 위안부란 일본 제국주의 군부가 만주사변(1931.9.18)을 일으킨 이후 전쟁이 계속되면서 자국 군인들이 제기하는 성적 불만을 해소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위안소'(자신들 입장에서 정해놓은 명칭)를 설치한 가운데 일본군에 의해 강제동원 혹은 납치되어 일본군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여성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특히 일본이 주장하는 '종군위안부'는 종군기자나 혹은 종군간호사처럼 마치 자발적으로 군을 따랐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이것은 앞에서 밝혔듯이 일본이 자신들의 범죄를 은폐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1996년 UN인권위원회에서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전시하 군대성노예제도(military sexual slavery in wartime)로 규정해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피해 할머니들의 경우는 '성노예'가 주는 어감 때문에 이 명칭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우리나라 관계 법령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호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경기도 광주시에 위치한 나눔의 집에서 만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우리는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라며 "성노예였지 위안부가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
특히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성노예 피해자(피해 할머니들은 자신들을 그렇게 얘기하고 있다)들 중 여성인권신장을 위한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각종 인권상을 수상했던 이옥선 할머니(91세)는 연세에 걸맞지 않은 당당한 어조로 이같이 밝히며 일본군에 의해 저질러졌던 피해 당시의 상황에 대해 차분하게 전해줬다.
이옥선 할머니는 "여러 말 할 것 없다. 사죄만 하면 문제는 해결된다"면서 "우리가 일본정부와 싸우는 것은 돈 문제 때문이 아니다. 진정한 사죄를 받고 싶은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물론 그 사죄에는 보상이 아니라 일본군부의 잘못에 대한 법적 배상이 뒤따라야 함은 당연한 이치이기도 하다.
이처럼 일본정부의 공식사과와 법적배상을 요구하는 많은 할머니들이 나눔의 집에 거처하고 있다. 많을 때는 15명 정도가 거주하셨고 적을 때는 7명이 거주했다고 한다. 현재에는 10명의 성노예 피해 할머니들이 거주하고 있다. 나눔의 집을 거쳐 간 피해 할머니들의 숫자는 60명 정도라고 한다. 일부 피해 할머니들은 별세하기도 했으며 공동생활을 적응하지 못하고 독립해 나가서 사는 분들도 있다고 한다.
나눔의 집은 지난 1992년 6월에 '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자는 취지로 사회 각계 모금운동을 펼쳐 10월 서교동에서부터 시작됐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한분인 김학순 할머니로부터 시작된 생존자들의 공개 증언이 시발점이 된 것이다.
이후 곳곳을 배회하다 1995년 12월 현재의 장소에 약 2,200평방미터의 대지에 180여 평의 노인 주거복지시설로 신축하게 됐다. 나눔의 집에는 1998년 개관한 세계 최초의 성노예를 주제로 다룬 인권박물관인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도 소재하고 있다.
나눔의 집 관계자는 "박물관은 일본의 전쟁 범죄행위를 고발하고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또한 후손들의 역사교육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세운 것"이라고 전했다.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피해 할머니들의 마음을 담아 옛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을 지키고자 하는 모습은 소녀상 옆에 비닐천막으로 겨울 추위를 막으며 소녀상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노숙농성 1년을 맞은 '대학생 소녀상 지킴이'들은 "피해 할머니들이 맘 놓고 편안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우리가 소녀상을 지키고 있다"면서 신생정당인 환수복지당(가칭) 학생당원들과 '희망나비'라는 대학교 연합동아리 소속 대학생들이 매일 2-4명이 돌아가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때 100여명을 넘어서면서 북적거렸던 농성장에 지금은 10여명만이 남아있는 상태이며 비가 오고 눈이 와도 이들을 지탱케 해주는 것이라고는 플라스틱 깔개와 스티로폼 매트, 전기장판이 고작이다. 이들 학생들은 고생스럽지만 이 같은 비닐천막 농성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일본군 '위안부'는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일이기 때문"이라면서 "만약 우리가 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우리도 피해 할머니들처럼 피해자의 모습이 되었을 것"이라며 소녀상을 지키는 이유에 대해 밝혔다.
하혜원(배화여대 2학년)씨는 한일정부간의 위안부 합의와 관련 "한일정부간의 합의는 밀실야합에 불과한 것"이라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본정부와 군 등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불법행위인데 박근혜 정부가 이를 합의한 것이기에 폐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편 지난 1992년 1월부터 시작되어 지난달 28일자로 1263차례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쉼 없이 매주 수요일마다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일본군 '위안부'의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수요 집회에는 최근 들어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가 보통 참석하지만 날씨가 쌀쌀해 질 때에는 학생들과 일반인들만으로도 집회를 계속 이어간다고 전했다. 특히 지난해 마지막 수요 집회였던 28일 집회는 지난해 별세한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추모집회로 개최됐다. 마침 이날은 1년 전 한일정부간 위안부 협상 합의를 발표한 날이었기에 위안부 협상에 대해 무효선언을 하기도 했다.
■ [인터뷰]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
"가해자 일본의 진정한 사과 원한다"
정부는 푼돈으로 피해 할머니 입 막으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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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침략으로 시작된 한반도 침탈은 꽃망울을 피우기도 전인 조선의 어린 소녀들을 강제 동원 혹은 납치 및 거짓말 등을 통해 결국 자국 군인들을 위한 성노예로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이같은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진정한 반성은 커녕 거짓과 변명으로만 일관하고 있는 일본정부에 맞서 싸우는 피해 할머니들을 돌보는 단체가 있다. 바로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노인주거복지시설로 등록되어 있는 '나눔의 집'이다. 이에 나눔의 집을 책임지고 있는 안신권 소장을 만나 한일정부간 펼쳐졌던 위안부 피해 합의안에 대한 할머니들의 입장과 나눔의 집 운영에 대해 들어봤다.
▲한일정부간 체결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합의안에 대해 얘기해 달라
△ 피해 당사자를 배제한 합의가 무슨 합의인가? 절차상에도 문제가 있고 내용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합의다. 정부가 돈으로 피해자들의 입을 막으려 하고 있다. 지난 2015년 12월에 발표된 한·일간의 위안부 합의는 비상식적이고 독재국가에서나 있을법한 사항이다.
▲ 피해 당사자를 배제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지난 2015년 12월28일에 한일 정부가 자신들 맘대로 위안부 합의안을 타결했다는데 피해 할머니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합의란 상대가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 상대라는 것은 결국 가해자와 피해자일 텐데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이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최소한 한일정부간 위안부 피해 관련 합의를 하려면 피해할머니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그 의견을 충분히 담아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
▲정부에서 사용하는 공식 명칭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데 이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
△ 위안부라는 것은 가해자 중심의 용어이다. 이건 잘못 사용하고 있는 단어다. 피해자 중심의 용어인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가 맞는 표현이다.
▲ 나눔의 집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
△ 많은 분들이 나눔의 집을 정부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데 나눔의 집은 사회복지 시설로 운영되고 있다. 지금도 피해자들을 위한 시설지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피해 할머니들에게 인간답고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설립한 나눔의 집에 대한 취지를 알고 계시는 분들의 후원을 통해 꾸려나가고 있다.
▲ 피해 할머니들의 건강상태는 어떤가?
△ 할머니들이 모두 연세가 많으시다보니 건강에 대한 염려가 많다. 특히 처음부터 나눔의 집에 들어와 거주하신 분들의 경우에는 건강 체크를 꾸준히 받아와서 그나마 괜찮은데 많은 분들이 가족과 함께 계시다가 쓰러지시면 이곳으로 들어오신다. 치매나 중풍에 걸려 들어오시는 분들도 계신다. 많이 안타깝다.
▲ 미국에 계시는 한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나
△ 한인동포들로 인해 미 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도 통과됐으며 각 지역 기림비도 제막된 것으로 알고 있다. 너무나 감사하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도 위안부 기림비가 제막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국일보 지면을 통해 한인동포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또한 앞으로도 피해 할머니들을 잊지 말고 기억해주고 이분들을 위한 도움에 함께 나서줄 것을 당부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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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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