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저명한 복음주의 역사학자인 마크 놀(Mark Noll)은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에서 다음과 같이 일갈하고 있다.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은 복음주의적 지성이라 할 만한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그는 북미의 복음주의적 개신교가 구제, 헌신, 봉사, 선교에 탁월한 업적을 내고 있지만 정작 사고하는 일에는 대단히 얄팍함을 비판한다. 미국의 대표적 영성 신학자인 유진 피터슨 역시 비슷한 논평을 한 바 있다. “현대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행위(doing)는 많으나 존재(being)는 없다는 점이다.” 끝으로 하나님의 모략의 저자 달라스 윌라드의 한탄을 들어보자. “우리가 이미 그분(예수)을 안다고 믿는 그런 가상의 친숙함이 생소함을 낳았고 생소함은 경멸을 낳았으며 경멸은 심각한 무지를 낳았다.”복음주의 지성인들의 코러스에 가까운 탄식을 듣노라면 교회가 처한 암담한 현실에 가슴이 옥죄어 온다. 현대 교회는 성공이라는 우상을 음란하게 섬기고 있다.
성공지상주의는 신학적 천박함과 목회적 잔기술과 도덕적 불감증을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정당화하며, 결과가 모든 것을 증명한다는 사고방식을 재생산한다. “성공하려면 프로페셔널 한 찬양팀에 기가 막힌 사운드 시스템, 아른한 조명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입니다. 젊은 사람들을 많이 끌어들이려면 2세 교육과 장년 선교 프로그램을 탄탄하게 구비해야지요.” 그래서 교회는 바쁘다. 입이 떡 벌어지는 성취와 업적이 쌓여만 간다. 그와 더불어 자부심과 자기의도 눈덩이처럼 불어 간다. 하지만 공허하다. 복음의 진수와 하나님의 말씀의 정치(精緻)함은 사라진 지 오래다.
교회가 싸구려 지성과 천박한 경영전략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가장 단적인 증거는 기독교 교리와 신학이 종적을 감췄다는 점이다. 쉽게 예를 들어보자. 멀쩡히 장로교회 간판을 달고 성업(?) 중이지만 정작 교단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개혁신학은 없어지고, 오순절교단의 성령론으로 무장하고 아르미니우스주의 구원론으로 진용을 갖춘 후 엔터테인먼트적 기법으로 양념을 한 교회들이 얼마나 많은가? 필자가 속한 미국 남침례교단은 아예 대놓고 “우리는 성경만 믿지 교리는 믿지 않는다”고 자랑(?)한다. 침례교회의 역사적 기원이 쯔빙글리와 캘빈의 신학을 물려받은 영국 청교도 가운데서도 개혁주의 신학이 가장 강하고 영국 국교에 대한 비판이 가장 예리했던 분리주의자들이었음을 생각해 본다면, 필자는 침례교회야말로 가장 교리적인 교회(doctrinal church)여야 한다고 믿는다.
교회는 지성과 신학의 파산으로 소멸해가고 있다. 많은 행위가 찬란한 이력서처럼 쌓여가고 뜨거운 성령운동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지만 정작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는 영적 학습장애에 걸려 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세상과 달라야 함을 지적하면서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엡4:20)”고 말한다. “어떤 사람을 배운다”는 이 말은 대단히 독특한 표현이다. 헬라어 성경이나 성경 이외의 헬라어 문헌 그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표현이다. 과연 사도는 이처럼 독창적인 표현으로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을까?
그리스도는 우리가 배우는 교과목이다. 우리는 그의 삶, 사역, 성품을 배운다. 한편 그리스도는 우리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그의 가르침이 사도와 교부들 그리고 오늘날 전문 교역자들에게까지 전승되었으니, 가르침의 궁극적인 주체는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또한 그리스도는 우리의 교육환경이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서 배우며, 그리스도의 신부인 형제 자매들에게서 배우고, 그리스도를 계시한 성경을 통해 배우며, 그리스도의 종인 설교자들에게서 배운다. 이처럼 심오한 뜻을 지닌 “그리스도를 배우는” 자리에 다시 가서 다소곳이 앉자. 그리스도로 날마다 우리를 가득 채우자. 그 가운데 흘러 넘치는 선한 행실로 하나님을(나와 내 교회가 아니라) 영화롭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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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석 목사 (예담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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