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14일 영국 BBC 방송과 부산대학교 로버트 캘리 정치학 교수와의 화상 인터뷰 장면이 세계적 화제거리가 되고있다. 인터뷰 도중 켈리 교수의 딸(5살) 이 문을 열고 몸을 좌우로 흔들며 신나게 춤을 추면서 아버지 옆으로 다가 온다. 조금 후에는 아들(6개월) 이 보행기를 타고 쳐 들어온다. 그러자 사태를 파악한 켈리 교수의 부인이 황급히 들어와 아이들을 초스피드로 데리고 나간다.
이 모든 장면이 고스란히 방송에 잡혔다. 대형 방송사고였다. 하지만 이 장면은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며 다양한 패러디를 낳을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켈리는 인터뷰 도중 발생한 돌발상황에 대해 수습할 길을 찾지 못해 몹시 난감해 한다. 아이들 때문에 인터뷰를 중단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방해받는 상태에서 계속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버겁다. 가수가 노래하는 중에 마이크가 꺼지는 상황이 연상된다.
목사가 설교 중에 원고지 한장이 빠진 것을 깨닫는 상황과 유사하다. 30여초 내외의 짧은 순간이지만 켈리는 인생 최고의 딜레마를 경험한 격이다. 그런데도 이 돌발상황이 오히려 세상의 갈채를 받고 있다. 어느 유명 시인처럼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진 격이다. 영국 BBC 방송은 왜 이 방송사고를 중단하지 않고 내 보냈을까? 방송 후에 있었던 온 가족 인터뷰를 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보인다.
가족 인터뷰에서도 어린 딸과 아들은 계속 장난감을 만지면서 귀엽고 천진난만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부인은 밝은 얼굴로 자신의 실수였다고 솔직히 말한다. 켈리 교수는 당시 “모든 것이 끝났다!” 라고 생각했다고 고백한다. 인터뷰 내내 아이들은 소리치고 엄마는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달래는 장면. 그래서 캘리교수가 말한다. “이것이 제 삶이예요 (This is my life)” BBC 방송은 연출되지 않은 귀여운 불청객이 만든 상황이 사고라기 보다는 오히려 인간적 매력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아주 오래 전 내가 섬기던 교회에서 전교인 합동 예배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무대 아래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해 설교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아이 (당시 2살) 가 “아빠!” 하며 내게로 달려나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이는 내 발을 꼭 잡고 떨어질 줄을 몰랐다. 난감했다.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몰랐다. 교인들은 내 반응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몰래 아이를 들어 품에 앉고 설교를 마쳤다. 그
런데 예배 후 교인들의 칭찬이 이어졌다. 설교는 못했지만 아이를 안고 설교한 모습이 좋았다는 이유였다. 잉?사람들은 인간미 속에 매력을 느낀다. 순진하고 솔직함에. 그리고 격이 없고 자연스러움에. 인간미는 완벽함에서는 찾기 힘들다. 오히려 연약함에서 잘 보인다. 난감한 처지에서 어찌 할바 모르는 무력함을 솔직하게 드러낼 때에 나타난다. 그렇다고 인간미가 권위를 손상시킬까?
아니다. 오히려 세운다. 물론 인간미만 넘치고 실력이 없으면 지루하다. 반면에 인간미는 없고 실력만 내세우면 불편하다. 실력과 인간미가 겸비되면 풍성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90도로 허리를 굽혀 어린 꼬마에게 자신의 머리를 만지게 하는 장면이 담긴 유명한 사진은 인간미를 느끼게 한다.
동시에 진정한 권위가 무엇인지도 잘 보여준다. 켈리 교수가 자고나니 세계적스타가 된 이유는 그의 인간미 때문이 아닐까? 딜레마를 통해 드러난 최고 정치학 실력자의 가장 무력한 모습. 하지만 그 정직하고 순수한 모습이 오히려 시청자의 폭발적 반응을 부른 것 아닐까. 물론 귀여운 불청객들이 지대한 공헌을 했지만!
사도바울은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후 12:10) 고 고백한다. 약함은 결코 약점이 아니라 강해짐의 근거라는 의미다. 진정 예수 안에 있다면, 솔직하고 겸손해 진다. 그런데 그 약하게 보이는 듯한 인간됨이 오히려 더 강한자(권위자) 로 만든다. 하나님이 주신 신비다. 귀여운 불청객과 켈리교수의 반응 속에서 그런 신비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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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철 목사/천성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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