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자이자 전략가였던 허먼 칸은 한국이 세계 최빈국의 하나이던 70년대 초 2000년이면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남들이 6.25의 폐허에서 허덕이는 아시아의 미개국을 보던 때 그는 한국민의 높은 교육열과 노동 경쟁력, 수출 주도형 성장 전략을 높이 산 것이다. 당시 1인당 279달러이던 한국민의 GDP는 이제 2만7,000달러를 넘어섰고 한국의 경제 규모는 1조 4,100억 달러로 세계 11위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유명하게 한 것은 핵 전쟁에 관한 생각을 담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한다’라는 책이다. 다른 사람들이 핵 전쟁을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로 여기던 시절 그는 이에 대비해 방공호를 설치하고 대피 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할 것을 주장했고 무엇보다 1차 핵공격을 받고 나서도 상대방을 궤멸시킬 수 있는 2차 보복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긴요하다고 봤다. 소련 지도부가 미국을 공격하면 소련은 망한다는 것을 확신하도록 만드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전쟁 방지책은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미국은 이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여러 차례 핵 실험을 통해 보여줬고 이것이 제3차 대전을 막는 기본 틀이 됐다.

지금 한반도의 긴장은 1950년 6.25 전쟁 이후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북한이 ICBM 개발과 핵 탄두를 이에 장착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국인들이 직접 북한의 위협에 놓이게 됐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화염과 분노”를 맛보게 될 것이라고 으름짱을 놓자 북한은 괌 주변에 미사일을 쏘겠다고 맞받아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강도 높은 발언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 그 이유는 미소가 제2차 대전 후 40여년간 으르렁 거렸지만 전쟁을 하지 않은 것과 비슷하다. 상대방을 공격했다 돌아올 피해가 공격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압도적으로 큰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미 연합군과 북한의 전면전이 일어날 경우 누가 이길 것인지는 거의 확실하다. 한국군의 재래식 장비와 미군의 핵무기는 북한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한국이 입을 피해는 천문학적 수준이다. 1994년 처음 북핵 위기가 터져 빌 클린턴이 북한 핵 시설 공습을 검토했을 때 당시 한미연합군 사령관인 게리 록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100만 명이 사망하고 1조 달러 이상의 재산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당시에 북한은 핵무기도 ICBM도 없었다. 지금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피해는 어마어마 하게 클 것이다.

미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을 탑재한 미사일을 쏠 경우 서울에 도착하는데 3분 걸리며 18만 명이 즉사하고 추가로 수 십만이 더 죽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핵 미사일이 샌프란시스코까지 오는데는 30분 걸린다.

핵을 사용하지 않고 휴전선 부근에 배치된 장사정포를 쏘더라도 서울에서만 16만명이 사망할 전망이다. 한미 연합군이 폭격으로 이들을 잠재우는데 3~4일 걸리기 때문에 이 정도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만약 북한이 핵을 쓴다면 주석궁을 비롯한 평양 일대는 핵 폐기물 처리장으로 변할 것이며 김씨 왕조도 종말을 맞게 될 것이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김정은도 자기가 곧 죽게 됐다고 확신하지 않는 한 핵 미사일을 발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꼭 예상한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우발적 사건이 큰 물줄기를 바꾸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미국을 겁주려고 괌 근처에 미사일을 쏜다는 것이 괌에 있는 미군 기지에 떨어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모든 예측은 무효다.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할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진 지금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기 위한 최선의 방책은 미사일 방어망을 강화하고 장기적으로는 북한 핵에 맞설 수 있는 독자적 핵 전력을 갖추는 일이다. 당분간이야 미국의 핵 우산 아래 숨는다 하지만 장차 북한 핵 탄두가 수백기로 늘어나 뉴욕과 워싱턴을 위협하게 될 때 미국이 자국민의 안전을 희생해 가며 한국을 지켜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남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대치하는 것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모습이지만 그것이 북한의 핵 공갈에 끌려다니는 것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을 한국민과 정치 지도자들은 하루 속히 깨닫기 바란다.

<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