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갓 지은 밥을 퍼와 내 앞에 놓는다. 밥공기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아직 잠이 덜 깬 내 얼굴에 와 닿는다. 맛있는 밥 냄새다. 한참 아침을 먹고 있는데 엄마가 오늘 일찍 들어오느냐고 묻는다. 나는 퉁명스럽게 “왜?”라고 물었다.

엄마는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스파게티가 먹고 싶어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대단한 일도 아닌 걸 가지고 무슨 큰일이라도 있는 듯 분위기를 잡은 엄마에게 짜증이 났다. 난 바쁘니 엄마가 알아서 해 드시라고 뾰족한 말을 하고 나왔다.

시집간 둘째 딸과 타주로 이직한 셋째 딸이 집을 떠나니 집안의 여자는 엄마와 나 둘만 남았다. 경상도 남자인 아빠와 남동생들은 워낙 살갑지 않고 자기들 놀기 바쁘니 엄마는 요즘 나에게 부쩍 의지한다.

영어 우편물 확인에서부터 기계치인 엄마를 대신한 간단한 서류 프린트, 온갖 자질구레한 심부름과 집안일까지 나의 몫이 많아졌다. 이전보다 많아진 엄마의 부탁에 나도 쌓인 게 많았는지 말이 밉게 나갔다.

엄마는 내가 해주는 음식을 좋아한다. 30년간 살림만 한 엄마의 요리솜씨를 따라가긴 역부족이지만 어깨너머로 배운 솜씨로 그럭저럭 맛을 낸다. 엄마보다 외식을 자주 하니 좋은 식당들에서 본대로 테이블 세팅도 그럴싸하게 따라 한다. 엄마도 스파게티를 만들 줄 알지만 엄마는 딸이 해주는 별식이 먹고 싶은 것일 터다.

엄마는 내게 지금껏 수도 없이 많은 밥상을 차려 주었는데 나는 고작 한 끼 해달라는 엄마 부탁에 짜증만 낸 것이 미안해졌다. 한편으로는 상황이 역전된 우리의 모습이 새삼 놀랍다.

어렸을 적 먹고 싶은 것도 많았던 나는 어느 날 엄마에게 돈가스가 먹고 싶다고 했는데 사주지 않자 방바닥에 대자로 누워 데굴데굴 구르며 울었다. 가끔 자장면을 시켜 먹을 때면 탕수육도 같이 시켰으면 했는데 엄마는 탕수육은 끝내 시켜주지 않아 엄마를 원망했던 기억도 난다. 그래서인지 내가 커서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 나는 사회인이 된 기쁨보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맘대로 사 먹을 수 있는 점이 더 기뻤다.

빠듯한 살림에 다섯 아이를 키우느라 고작 돈가스나 탕수육 하나 넉넉하게 사주지 못하는 엄마의 심정이 어땠을까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아리다.

텔레비전을 보니 요즘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한끼 줍쇼>에서도 유명인이긴 하지만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밥 한 끼를 척척 대접하던데 나는 엄마한테 수만 끼를 빚져 놓고 스파게티 하나를 야박하게 거절했다. 대단한 음식도 아니고 30분이면 뚝딱 만들 파스타였는데 말이다.

훗날 엄마가 더 나이 들어 되돌아보았을 때 고작 스파게티가 딸이 안 해준 음식으로 기억되면 내가 너무 창피할 것 같다. 오늘은 내가 수만 끼를 빚진 엄마에게 근사한 스파게티 한 접시를 대접해야겠다.

집에 전화를 걸어 장을 봐 갈 테니 기다리시라고 전했다. 마트에 들러 파스타 재료를 사고 곁들일 레드와인을 집어 들었다. 계산을 마친 나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었다.

<이보람 adCREASIANs 어카운트 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