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 전 미국에 이민 와 고등학교를 다닐 때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처음 했던 일은 이민 첫 해였는데 병원 청소였다. 그 때 여러 청소기계 사용방법을 배웠다. 응급실 바닥의 피도 닦으면서 환자들의 위급함과 치료를 위해 뛰어다니는 의사들의 모습도 보았다. 한적한 시체실 옆 복도 청소는 노래를 부르지 않고는 어려웠다.

두 번째 일은 12학년 때 제법 큰 규모의 잡화가게에서의 캐시어 일이었다. 친구 한 명과 함께 졸업 후 한국 방문을 위한 비용을 벌기 위해 일했다. 체격이 훨씬 더 건장했던 친구는 가게 앞 쪽의 큰 카운터, 나는 상대적으로 손님이 적었던 약국 카운터를 맡았다.
내가 해야 하는 일 중 머니오더 판매도 있었다. 손님으로부터 현금을 받고 그 액수에 상응하는 머니오더를 만들어 주는 일이었다.

어느 날 머니오더에 액수를 잘못 적어 다시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액수가 틀린 머니오더의 후속 처리에 실수가 있었다. 그대로 보관했어야 하는데 찢어 쓰레기통에 버린 것이다. 퇴근 무렵 매니저가 와서 판매장부와 남아 있는 머니오더 숫자를 검사했다. 물론 한장이 비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매니저는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으며 찢어버린 것을 찾아보라고 했다. 그 사이에 쓰레기는 이미 수거되어 쓰레기통은 비어 있었다. 내가 난감해 하자 쓰레기 백을 모아 둔 창고에 가서 뒤져 보라고 했다.

창고에는 수거된 큰 백이 20개 정도 있었다. 그 백들을 하나 씩 뒤졌다. 그러나 모두 뒤져도 찾을 수 없었다. 나의 이런 모습을 본 매니저는 그만하면 되었으니 퇴근하라고 했다. 미안하다고 인사하고 나왔다. 그런데 다음 출근 때 내가 일하는 위치가 약국 카운터에서 가게의 맨 앞으로 바뀌었다. ‘좌천’된 것이다. 그래도 해고당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이 에피소드는 내가 운영하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누가 혹시 실수를 범해도 이해해 줄 수 있는 교훈이 되기도 했다.

내 바로 아래 여동생은 고등학교 때 도넛 가게에서 주말 밤샘 일을 했었다. 밤새워 일해도 세금을 제하면 20달러 정도 밖에 못 받았다. 그래도 초창기 이민 생활로 고생하는 부모님에게 손 내밀지 않고 직접 벌어 필요한 것도 사고 저축도 했다. 내가 먼저 대학으로 떠나자 동생은 가끔 용돈으로 보태 쓰라고 20달러를 카드와 함께 보내 주기도 했다. 그 돈이 동생의 고생 결과인 것을 아는 내가 함부로 쓸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내가 고등학생들에게 꼭 권하는 것 중 하나가 아르바이트이다. 힘든 일을 직접 해보아야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좀 더 이해하고 돈 버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도 배울 수 있다. 물론 바쁘기에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러 특별활동들 중 하나를 포기하고 대신 파트타임 일을 해본다면 그 나름대로 귀중한 경험이 될 수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젊을 때 고생은 돈 주고도 못 산다는 격언도 있지 않은가. 학생 때 힘든 일을 해본 것은 이 다음에 무슨 일을 하든지 든든한 버팀목 같은 경험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돈을 귀하게 사용하는 지혜도 함께 터득할 수 있다.

우리 집 애들 둘 모두 10학년을 마치고 난 여름방학에 풀타임으로 일했었다. 맏이는 종합병원의 벽에 걸려 있는 모든 액자나 기념패들을 기록하는 일, 둘째는 수퍼마켓 내 식당의 캐시어 일이었다. 번듯하게 큰 연구소 일은 나중에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신 맏이는 단순노동의 지루함으로부터 인내를, 최저임금 정도를 받았던 둘째는 5분 정도면 먹을 점심 값을 벌기 위해 1시간 반이나 일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것이 힘들었겠지만, 다시 해 볼 수 없는 귀한 경험이었다고 믿는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있다면 졸업 전에 힘든 일 한번 해보도록 권유해 보기 바란다.

<문일룡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