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로단축·여가 확대 필요하지만 중기 등 충격 완화 방안 마련해야
▶ 일자리 창출 부가 효과도 내려면 다양한 유연근로시간제 등 도입을
홍기석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일과 여가에 얼마씩 배분하는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근로자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지난 1980년 약 1,900시간에서 2017년 약 1,750시간으로 감소했다. 이는 당연히 그만큼 여가 시간이 증가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가 발생한 것은 무엇보다 사람들의 소득이 상승함에 따라 ‘여가’라는 재화에 대한 수요가 확대됐고 거기에 더해 여가 시간을 보다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기술이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프린스턴대·로체스터대·시카고대의 일군의 경제학자들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지난 15년 동안 미국의 20대 남성들 중 일하지 않는 사람의 비중이 크게 높아진 것도 컴퓨터 게임 같은 여가기술(leisure technology)의 발달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컴퓨터 게임의 비용은 낮아지고 퀄리티는 높아짐에 따라 컴퓨터 게임에서 얻는 만족도의 가치가 근로에서 발생하는 소득의 가치를 능가하게 됐고 그 결과 청년들이 생계는 부모에게 의존하면서 여가에 더 많은 시간을 할당하게 됐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52시간 근무제 도입과 더불어 일과 여가의 균형에 관한 논의가 확대되고 있다. 한국의 근로시간이 OECD 국가 가운데 멕시코 다음으로 많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자료의 한계상 국가 간의 횡단적 비교는 적절하지 않을 수 있으나 한국의 생활 수준에 비해 여가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은 아마 사실일 것이다.
따라서 52시간 근무제로 일과 여가의 상대적 비중을 조정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근로시간 단축으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증가하고 성장이 저해되며 중소기업들과 저소득층에 타격이 클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그러나 한국은 2004년 주 5일 근무제를 도입한 바 있으며 근로시간도 아직 많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2008년 약 2,200시간에서 2017년 약 2,000시간으로 상당히 빨리 축소돼왔다.
그럼에도 이러한 근로시간 축소 때문에 경기침체가 발생했으며 따라서 예전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경제정책의 목표는 소득이나 성장만이 아니며 여가와 삶에 대한 만족도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서로 다른 목표들이 충돌할 경우 절충과 양보가 불가피하다. 따라서 근로시간 단축의 기본 취지를 살리면서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의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근로시간 단축의 일차적 목적은 일과 여가의 균형이지만 일자리 창출이라는 부가 효과를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루 10시간씩 근무하던 근로자가 8시간만 일하게 되면 기업은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새로운 근로자를 고용할 것이라는 논리다.
한국 내외 연구들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의 일자리 창출 효과는 그다지 명확하지 않지만 대체로 우리나라의 경우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제한적인 일자리 창출 효과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한국에서 초과근무가 만연했던 것은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신규 채용 및 해고에 수반되는 각종 고정비용이 높아 두 명이 정상근무하는 것보다 한 명이 초과근무하는 것이 더 유리했기 때문이다.
이는 일종의 일자리 할당으로 고용에 당첨되는 근로자에게는 이익이지만 그렇지 않은 근로자에게는 공정하지 못한 차별이 발생하는 셈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고 실제로 근로시간 단축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각종 고정비용을 낮추는 방안이 필요하다.
저소득층의 경우 소득 확보를 위해 근로자 스스로 4대 보험 가입을 기피하기도 한다. 따라서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4대 보험 가입 대신 공적부조의 형태로 현물지원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그 외에 다양한 형태의 유연근로시간제를 도입하는 것도 필요하다.
근로시간 단축과 유연근로시간제의 도입은 장기적으로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를 유도함으로써 노동공급의 확대를 통해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도록 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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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석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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