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깃배는 범선인데 속도가 느리다. 소수업도 대수업도를 지나 강화도에 도착하였는데 이미 공산군에 점령되어 상륙이 불가능하다. 인천도 안 돼, 서울도 점령되었다고 해, 결국 한달 항해 끝에 군산에 상륙할 수 있었다. 전라북도 전주까지 겨우 갔는데 배가 고파 더 갈 수가 없다.
남문시장에 갔더니 어떤 사람이 “젊은이, 장작 장사를 해보면 어때?”하고 말하였다. 약 십리 시외로 나가면 장작 도매를 하는 곳이 있다는 것이다. 장작 장사를 하려면 당장 손달구지가 있어야 한다. 나는 덮어놓고 전주 YMCA(기독교청년회관)를 찾아가 내 사정을 설명하고 고려대학교 법대 재학증을 보였다. 청년회관 사람은 성큼 달구지를 빌려주었다. 정말 고마웠다.
전주에서 열흘 동안 장작 장사를 하니까 밥은 먹겠는데 내가 장작 장사를 하며 눌러 앉을 수는 없다. 빨리 내 가족을 찾아야 하고 학교에도 복교하여야 한다.
이때 갑자기 머리에 떠오른 것이 나의 매부벌인 김 혁 아저씨였다. 일제(日帝) 말기 내 집에서 일하던 친척 누님의 남편인데 전라도에서 경찰관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덮어놓고 전라북도 경찰국에 가서 알아보았더니 그런 경찰관이 전북에는 없고 전라남도에 가서 찾아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돈이 한 푼도 없어 남쪽으로 간다는 화물열차에 몰래 잠입하여 광주까지 갈 수 있었다. 전라남도 경찰국에서 문의 하였더니 “김 혁 경찰관은 구례 지서에 있소”하는 반가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지리산 공비와 싸우러 가는 전투경찰 트럭을 타고 구례에 가서 나의 매부 가족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일요일, 구례읍 교회에 출석하고 목사에게 고려대학교 학생증을 보였더니 목사는 대단히 반가워하면서 “최군 잘 왔네, 하나님이 자네를 이곳에 보내셨군. 마침 설교자가 비어있는 농촌교회가 있어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자네가 이번 주일부터 가서 설교를 하게.”
이거야 말로 뚱단지 같은 말이다. 나는 즉시에 거절하였다. “목사님, 저는 중학교 4학년 때부터 주일학교에 아이들을 가르친 일은 있지만 설교가 무언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성인들에게 제가 설교를 합니까?” 그러나 목사는 밀어 붙였다. “어린이 설교라고 생각하고 하면 돼. 여자들만 모이는 작은 교횐데 못할 것 없네.”
이 엉뚱한 명령을 왜 내가 거부하지 못했는지 나 자신을 알 수 없지만 박봉생활의 매형댁에서 영영 얻어 먹을 수는 없고 해서 억지로 설교 명령을 수락하고 마산면 냉천리 교회에 가서 평신도 설교자로 그 후 11개월을 지내게 된 것이다. 아마도 엉터리 설교였겠지만 여자들뿐인 교인들은 나를 좋아하였다. 문제는 할머니들이 헌금을 현금으로 하지 않고 곡식이나 채소 과일 등을 바치는 것이었다.
그것들을 몽땅 매부댁에 갖다 주어 잘 먹었지만 현금이 있어야 부산으로 가서 나의 가족을 찾아볼 수 있겠는데 그것이 문제였다. 그런데 구례경찰소가 사람을 모집하였다. 산에 들어가 있는 공비(共匪)들에게 귀순공작을 하는 방송 요원을 모집한다는 것이었다. 현금이 생길 절호의 기회이다. 나는 얼른 응모하여 합격하였으며 전투경찰 트럭을 타고 산 밑까지 가서 확성기를 대고 귀순 연설을 하게 되었다. 이로서 오랜만에 현금을 만져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뜻밖에 성인을 상대로 하는 설교를 11개월 하게 되었으며 이 경험이 뒤에 내가 신학교로 전학하는 결정적인 동기가 된 것이다.
부산에 가서 나의 어머니와 형을 만나게 되었으며 나의 모교인 고려대학교가 부산이 아니라 대구에서 개교한 것과 내가 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입장에 놓인 것과 나의 고학과 식생활을 위한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대구에서는 불가능하고 북산에 있으면 소개받은 성진산업주식회사에서 방 문제, 학비문제 등이 모두 해결될 ‘직장 전도사’의 직을 맡게 되었던 것이다. 나의 간증은 일단 여기까지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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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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