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민 전 남가주한국학원 교육감
남가주한국학원이 큰 위기에 처해 있다. 이사진이 총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 이에 불응하는 한국학원에 대한 LA 총영사관의 압력은 거세고, 언론까지 가세하고 있다.
왜 한국학원 이사회는 사퇴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 것일까. 문제의 핵심은 한국학원 건물의 운영권에 있어 보인다. 이사회는 이 건물의 재산권을 포기 안할 것이고 포기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라고 본다. 한국학원 사태의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윌셔초등학교 폐교는 그 원인이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명 넘는 학생들이 등록하며 학교가 한창 잘 될 때 이사회가 중고등학교를 개교하고 폐교한 것이 실패의 씨가 되었다. 제한된 재력과 관리능력이 중고교 개교로 인해 분산되었고 그 와중에 이 학교의 유능한 초대교장이 사임했다. 이어 2008년 경제대란이 덮쳐서 많은 학생들이 빠져나갔다. 이런 실수와 불운이 결국 학교의 문을 닫게 했다.
다시 말해 현 이사회는 이런 학교를 이어받아서 살리려고 애썼지만 살리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폐교의 책임을 현 이사회에 전적으로 지우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때문에 현 이사진 전원 사퇴 요구 또한 이치에 맞지 않는다.
둘째, 한국학원의 현 이사회를 해체시키고 영사관 뜻에 따라 새 운영진을 구성한다면 건물의 운영권이 영사관 측으로 넘어갈 개연성이 높다. 이는 한국학원의 자주성과 자율성을 위협하는 일이 될 뿐 아니라 학원 운영체제를 뿌리째 흔들 수 있다. 초등학교가 없어졌어도 학교 건물은 여전히 남가주한국학원의 본부요, 총지휘 탑이자, 이 학원의 생존과 긍지의 상징이다.
더욱이 이 건물은 학교 건물로 남아서 후일에 다시 정규학교로 쓰일 가능성을 살려 두는 것이 역대 이사회의 뜻일 것이다. 그래서 이 건물의 운영권과 교육권은 한국학원 고유의 권리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한국학원의 11개 지역학교 망(網: Net)은 반드시 지켜야하는 한국학원의 우수한 학사행정 체제이다. 한국학원 본부에 주던 정부보조금을 지역학교 별로 지급한다면 중앙행정체제가 무너지게 되고 그 결과 개별 학교들이 구멍가게로 전락해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
최근 해결책으로 양자의 상호 양보론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학원은 이사회 전원이 사퇴하고 영사관은 한국학교 보조금을 다시 준다는 내용인데, 이는 공정하지 않다고 본다. 한국학원 측으로서는 팔 비틀기를 풀 테니 영사관 뜻을 받아들이라는 말이 된다.
한국학원 이사회를 강압하는 접근법은 내려놓을 때가 됐다. 선한 대화로 서로가 수용할 수 있는 길을 찾을 때다. 영사관이 추진하는 ‘한미 청소년교육센터(KAYEC)’ 아이디어도 살리고 한국학원도 사는 윈 윈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간의 한국학원의 발전은 희생적이고 열성적인 교사진 그리고 학사운영을 뒷받침한 이사회가 있기에 가능했다. 현재 남은 이사들은 한국어교육에 대한 경륜을 가진 소신의 파수꾼들이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이런 충직한 버팀목들이 남아서 일하게 해야 할 것이다.
이번 일로 한국학원은 깊은 상처를 받아 자성하고 있는 줄 안다. 실패가 현 이사회를 한층 강하게 만들 것이다. 현 이사회를 총사퇴하라기보다는 보강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이 건물은 우리 한인 2세의 뿌리교육에 활용 되어야 합니다.”
지난해 8월 한국학원 건물에 관한 첫 동포간담회에서 한 고명한 어른이 한 말이다. 이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고 필자도 박수를 보냈다.
그렇다. 남가주한국학원이 애당초 건물을 구입한 목적이 그것이었다. 이 건물은 기필코 우리 2세, 3세, 먼 후손에 이르기까지 백년대계의 한민족 뿌리교육을 위한 발판이자 도약대로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뿌리교육은, 근 반세기 동안 이 사업에 전념해 온 남가주한국학원의 뜻과 전문성을 존중하고 이 학원을 앞세워 추진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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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민 전 남가주한국학원 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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