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초순, 한국 휴가 중에 남산 N서울 타워에 올라갔다. 뉴욕에 온 이후 한국 손님 관광 가이드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열 번 정도 올라갔는데 이번 기회에 태어나고 자란 고국의 서울 타워를 올라가 보고 싶었다. ‘별에서 온 그대’를 비롯한 한국 드라마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서울타워로 올라가는 장면을 볼 때 내려다보는 서울의 모습이 어떨지 궁금했었다.
남산에 오르니 도읍을 한양으로 정한 조선시대부터 갑오경장 다음해까지 약 500년간 사용된 봉화대가 있었다. 가장 놀랍고도 기이한 것은 서울타워 야외전망대 공원 철망, 산책로 난간, 계단 난간은 물론 커다란 나무 어디든지 줄줄 매달린 수십만, 수백만 개의 ‘사랑의 자물쇠’ 뭉치들이었다.
절대로 못 열도록 커다란 락 장치를 한 자물쇠, 휴대폰 케이스 구멍에 걸린 자물쇠 등 겹치고 겹쳐진 쇳덩어리 뭉치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보였다. ‘사랑, 그것이 인생’ 아니면 ‘사랑밖에 난 몰라’하고 고함을 지르는 듯 했다.
이 사랑의 자물쇠에 관한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다. 100여 년 전 1차 세계대전 당시 세르비아의 한 여성이 전쟁터에 나간 연인이 사망하자 그 사랑을 지키고자 다리 난간에 자물쇠를 매단 게 시초라는 설이 있는 가하면 이탈리아 피렌체의 폰테 베키오 다리 철조망에 자물쇠를 걸어놓고 열쇠를 강에 던지면 영원한 사랑을 이룰 수 있다는 전설도 있다.
2000년대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사랑의 자물쇠 열풍은 이탈리아 작가 페데리코 모치아의 작품 ‘하늘 위 3미터’와 ‘너를 원해’에서 연인이 영원한 사랑을 다짐하며 자물쇠를 채우는 장면이 시초라고 한다. 오늘날은 세계 각국의 대도시 가로등, 다리, 벤치, 조각물 어디나 크고 작은 자물쇠가 매달리고 있다.
뉴욕 브루클린 브리지도 그 몸살을 피해가지 못했다. 1883년 개통한 브루클린 브리지는 철 케이블이 양옆으로 날개를 펼쳐 아름답기 그지없다. 1층 차량 통행, 2층은 보행자용 통로로 브루클린에서 맨하탄 방향으로 40분 정도 걸어가면 맨하탄 스카이라인이 보이면서 철 와이어 가득 사랑의 자물쇠가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015년 사랑의 자물쇠 철거작업 뒤 뉴욕시 교통국(DOT) 트위터에 노 러브락스(NOLOVELOCKS)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제거한 자물쇠 사진이 게재되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관광객과 뉴욕시민들은 브루클린 브리지에 자물쇠를 매달고 열쇠를 이스트 리버에 버린다. 안전문제가 대두되면서 종종 자물쇠를 제거하여 쓰레기 매립지에 묻고 있다.
하여튼, 서울 타워 사랑의 자물쇠는 무지할 정도로 엄청나서 기가 질렸다. 이 중에 결혼하여 아들딸 낳고 잘 사는 커플이 몇 퍼센트나 될까 궁금했다. 많은 사람들이 가슴 아프게 헤어지거나 혹은 원망하며 이별하여 남보다 못한 이가 되어 살지는 않을까? 사랑이 설사 이루어졌다 한들 서로 향해 웃으며 자물쇠를 채우던 순간을 기억하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물론 지순지고한 사랑을 죽을 때까지 하는 이도 있겠지만 대부분 뜨거운 연애가 식어가고 사랑을 고백하던 열정적 언어는 평범한 일상용어로 변해갈 것이다. 사랑이란, 삶이란 그런 것이다.
“라면 먹고 갈래요?”라는 말을 유행시킨 영화 ‘봄날‘에서 유지태는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라며 울부짖는다. 하지만 ‘사랑은 변한다’는 말이 일반화된 지금이다. 요즘 세대는 잠그는 것보다 서로 쿨하게 열어놓은 시대가 아닌가. 내 사랑이 녹슨 흉물이 되어 남산의 좋은 전망을 가리고 쓰레기가 되는 것보다 자물쇠는 마음에 채우고 그저 사랑하는 그 순간 열심히 사랑하면 되는 것이다.
굳이 사랑이 이뤄져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가끔 지난날을 떠올리면 아련해지기도 하는, ‘이것도 인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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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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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찰나적'이라는 박흥진 위원의 명언이 생각납니다. '영원한 사랑'보다는 '영원한 선함'을 추구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