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올해 꿈이나 희망이 뭐야?(What’s everybody’s hopes and dreams this year?)”
작년 초, 친구처럼 지내는 동료 교수들과 새 학기를 시작하는 기념으로 같이 한 저녁식사 자리였다. 유명한 비소설 작가이자 문예창작과 교수로 일하는 동료의 물음에 나는 한쪽 어깨를 들썩이며 “그냥 일?(Just work?)”이라고 싱거운 대답을 건넸다. 친구는 겸연쩍은 듯 “아, 그래!(Oh, okay!)”라고 생긋 웃으며 그의 접시 앞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 채고 나도 별 말없이 내 접시만 바라보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그 대화를 곱씹었다. 친구가 무례한 질문을 한 것도, 내가 거짓을 말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리 찜찜한 기분이 들었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몇 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그토록 떨쳐버릴 수 없었던 무거운 마음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날의 그 대화가 내가 무심코 품어왔던 삶에 대한 자세를 송두리째 흔들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이상 이렇게는 안 되겠어”라고 생각한 어느 날이 있었다. 쏟아지는 메일에, 밀려있는 연구 계획들과 다운 받아놓고 읽지 못하고 있는 논문들, 지도학생들의 과제 체크에, 같이 일하는 대학원생들의 프로젝트 점검, 교수회의 등등 여느 때와 같이 책상에 앉아 끝이 보이지 않는 일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직업의 특성상 바쁘고 쉴 새 없이 일하는 것이 어느 정도 성공을 위한 덕목이라고 들으면서 대학원 생활을 보낸 나로서는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고, 이 또한 그저 일의 일부라고, 그러니 이것들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으며 보내온 날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나의 존재는 사라지고 나는 일을 수행하기 위해 남은 껍데기라는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나는 대체가능한 부속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말고도 많은 이들이 이런 경험을 하고, 삶에 의문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이들이 출퇴근길에, 혹은 하루 중 문득, 지친 마음을 달래며 다른 삶을 꿈꾸는 것도 비슷한 연유일 것이다. 특히 지금과 같은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한 사회의 일원으로 어떤 위치에서, 어떤 성과로 어떻게 사회에 기여할 것인지에 대한 대답을 종종 강요받는다.
하지만 이 질문들이 모든 이들이 건강하게 존재할 수 있는 공동체로서의 사회로 나아가게끔 도와줄 수 있을는지는 또 다른 의문이 든다. 이런 질문들은 결코 개인을 공평하게 바라보는 시각에서 출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민으로서의 그리고 사람으로서의 나의 가치는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우리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 라는 질문은 결국 우리는 사회가 만들어낸 각기 다른 자리를 메꾸는 이로서만 인정받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눈에 보이는 물질로, 성과로, 그리고 그것들이 존재하는 사회구조 안에서 증명해야하는 순간, 나는 우리가 과연 모두에게 지속 가능한 삶을 꿈꿀 수 있을까 생각한다.
그날 이후로 나는 종종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해 생각한다. 이를 위해 어떤 마음가짐이 중요한지, 어떤 관계들이 지속 가능한 것들인지, 나는 누구에게 그 관계의 문을 열고 닫아놓고 있는지, 나와 맞닿아 있는 공동체가 존속하려면 어떤 노력들을 해야 되는지 생각해본다. 나 아닌 다른 누구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누구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그 안에서 내 삶과 행동이 다른 이들과 어떻게 닿아있어야 할지 생각한다.
우리의 존재가 타인에게 물리적인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시간을 살고 있는 지금, 이것이 내가 팬데믹으로 지치고 힘든 모든 이에게 조심스레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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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 뉴욕시립대 퀸즈칼리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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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모든 이들이 자기가 할 일이나 충실하게 했으면 한다고 무수히 말한다, 제가할 일도 제대로 안하면서 못하면서 계으르게 하면서 남탓으로 돌리면서 변명을하면서 잘 살겠다 잘 살았다 나도 사회의 일원으로 살고있다고 할건가, 별생각없이 머리굴리지말고 묵묵히 내가 할 일 을 한다면 성공도 즐거움도 행복도 자유도 누리며 여유로운 매일을 지낼수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