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하는 것은 너의 장기는 아닌 것 같다” 지난 5년 간 같이 일한 팀장이 나에게 한때 자주, 요새는 종종 하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정리는 어떤 사업이 끝나고 사후 파일 정리 혹은 개인 사무공간 정돈을 의미한다.
부끄럽지만, 인정한다. 같이 사무실을 쓰던 친구가 내가 출장으로 부재중일 때 내 책상에 쌓인 물건들을 보고 본인이 더 정신이 없었는지 부탁도 안했는데 알아서 정리를 해준 걸 보면. (미안과 감사의 감정이 교차한다)
2011년 여름 석사를 위해 다시 미국 땅을 밟은 이후로 총 3번 이사를 했는데, 이사를 할 때조차 물건들을 정리하지 못하고, 쓰레기봉투에 쓸어 담아 옮겨 다녔다. 바쁘다는 이유로 이삿짐을 미리 챙길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그냥 정신없이 보낸 지난 10년의 삶이었다.
지난 5~6년은 특히 유목민 같이 업무와 개인 휴가로 전 세계를 돌아다녀 집에서 보내는 시간도 적었고, 워싱턴에 있어도 집 밖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기에 집은 창고로, 세면실로, 잠을 청하는 침실로만 사용했다.
하지만 2020년 전 인류의 삶을 급격히 변화시킨 코로나 바이러스가 정리를 잘 하지 않던 나의 습관도 바꿔놓았다. 집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고 언제 다시 출근할지 알 수 없어, 이제는 좁은 집이 업무공간이자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영역이 되어 그때그때 물건들을 정리하지 않으면 생활이 어려워졌다.
사람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고, 필요가 변화를 불러오는 것일까? 아시안으로 미국 대선에서 처음으로 전국적인 인지도를 쌓은 전 대통령 후보 앤드류 양은 코로나가 미국사회에 “10년에 걸쳐 이루어질 변화를 10주안에 이루었다”고 주장하는데, 이 말은 나의 개인 삶의 변화를 잘 대변하는 것 같다.
재택근무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것 이외에도, 9월에 한국에서 결혼 후 다른 집으로의 이사도 앞두고 있어 물건들을 조금씩 정리하면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과거의 나 또한 새롭게 발견하고 있다.
물리적인 것들 이외에도 결혼 소식도 알리고, 코로나 사태에 사람들에게 안부도 물을 겸 카톡을 여기저기 보내면서 카톡 친구도 정리하고 있다. 2011년 가을 스마트폰을 처음 쓰기 시작하면서 추가만 했던 카톡 친구들은 4월 중순 1,404명이었다. 뉴욕에서 대학원 학생회장을 하면서, 현 직장에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업무로 만난 한국인들이 많았다.
작년 6월 뉴저지에서 있었던 대학원 친구 결혼식 피로연에서 카톡 친구 숫자가 가장 많은 사람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었는데, 200여명 되는 하객 중에 카톡 친구가 1,000명 넘는 사람이 나밖에 없던 걸로 봐서 이게 일반적인 카톡 친구 숫자는 아닌 것 같다.
해피 아워에서 한번 만난 사람부터 회사 인턴 후보로 인터뷰한 사람, 업무로 한두 번 연락한 사람, 어떻게 연락이 닿아서 회사와 관련된 조언을 해주기 위해 한번 만난 사람, 그리고 어디서 언제 만났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데 카톡에 등록되어 있지만 대화는 한번도 나눠보지 않은 사람들까지, 많이 친구 목록에서 삭제했다.
나름의 기준으로 카톡 친구들을 추려서 지금은 800명 수준으로 숫자를 줄였다. 물리적인 물건들보다 카톡 친구들을 조금씩 정리하면서 과거에 사람들과 주고받은 대화들을 보면 내가 누구와 어떤 대화들을 했는지,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고, 이런저런 생각들이 든다.
몇 년간 만나지는 못하고 카톡으로만 연락하고 지내는 일종의 사이버 지인들도 꽤 많은데, 백신이 개발되어 전 세계에 보급되기 전까지는 한국같이 방역을 성공적으로 하지 않는 한 이렇게 비대면 생활을 이어갈 텐데, 이 시간에 과거를 돌아보면서 앞으로 10년을 또 그려본다. 다음 10년을 함께할 카톡 친구들은 정리하지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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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호성 국제기구 개발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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