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일어나면 확인하는 것 중 하나가 페이스북 ‘On this day’이다. 내가 과거의 오늘 날짜에 올린 포스트를 보여주는 창이다. 페이스북 초창기 때부터 꾸준히 활동해왔기 때문에 나의 페이스북 페이지는 제법 방대한 양의 내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과거의 오늘, 나는 전 회사 동료들과 서울 근교 계곡에 놀러가 평상 위에서 닭백숙을 먹으며 무더위를 피했다고 나온다. 잊고 지냈던 순간인데 미국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것이기에 그때가 퍽이나 그리워졌다. 얼음처럼 차가웠던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잠시 무더위를 잊었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닭다리를 뜯어먹으며 신나게 웃고 떠들던 기억이 난다. 더욱이 지금 코로나 19 사태로 집에만 처박혀 있자니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참 호시절이었다. 인터넷 창을 닫으며 다음에 한국에 가면 꼭 다시 그곳을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장면을 사진과 함께 SNS에 기록해두지 않았다면 영영 다시 기억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일각에서는 시간낭비라는 SNS 활동이 보람된 순간이다. 하루 온종일 SNS에 빠져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면 안 되겠지만 이렇게 삶 속의 순간순간의 장면과 감정을 기록해두는 일을 나는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권장할만하다고 말하고 싶다.
기록은 사전에 ‘주로 후일에 남길 목적으로 어떤 사실을 적은 글’이라고 나와 있다. 가끔 내가 썼던 글과 사진을 들여다보며 옛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그때의 내 감정을 상기하며 지금의 나라면 다른 감정을 가졌을까 다시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땐 그랬지’하며 감상에 빠져도 본다. 내 SNS는 일종의 공개된 내 일기장인 셈이다. 즉 나는 온라인 일기장에 글과 사진을 올리며 기록하는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어느 책에서 중년이 된 주인공은 나이 듦을 슬퍼하지 않지만 딱 한 가지 이유로 청춘을 부러워한다. 청년들은 살아온 날이 짧기에 과거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도 이제 20대를 지나 30대가 되었는데 나이 듦이 그다지 슬프지는 않지만 이 점은 조금 야속하다. 더 나이가 들면 내가 살아온 날들이 그만큼 더 많아져 다 속속들이 기억하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럼 어떤 순간들은 나도 모르게 희미해져 다시 곱씹을 수 없을 테니 조금 아쉽다.
생의 모든 날들이 다 황홀하진 않지만 그렇지 않은 순간까지 다 나름의 의미가 있고 그때의 쓰라림과 안타까움, 절망도 다 내 삶의 소중한 밑바탕이 되었다. 그 시간들이 그저 ‘좋았던 시절’, ‘나빴던 시절’로만 구분되어 기억되거나 아예 지워지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뜩이나 기억력 안 좋은 나는 나중에 내 과거를 뒤돌아보며 그 주인공처럼 무엇이 짐이었고 무엇이 축복이었는지 알 수가 없게 될까 두렵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고 또 쓰는가보다. 과거에 미처 참회하지 못했던 일을 상기하여 용서를 구하고, 철 지난 영광을 재생하여 오늘 살아갈 힘을 얻고, 뜨겁게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날들 속에서 애틋함을 찾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원하는 앞날을 꿈꿔보기도 한다. 그렇게 과거를 쓰며 현재를 살고 미래를 그린다.
오늘 글 쓸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그것이 SNS 상의 짧은 글이든 정성스레 꾹꾹 써내려간 장문의 글이든 게으름 피우지 말고 기록하는 삶을 살자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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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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