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속의 시간 흐름은 평소와는 다른 느낌으로 흐르는 듯 하다. 특별히 바쁠 것이 없는 일상으로의 회귀라고나 할까. 현대 사회가 갑자기 원시사회로 되돌아간 느낌. 직장을 쉬어야 되는 사람들, 비지니스를 손 놓고 있는 사람들, 재택 근무자, 긴 방학을 맞은 학생들… 모두가 정상적인 리듬을 잃고 멍 때리는 시간만 늘어 가는 것 같다. 나의 경우에도 그 동안 하기 싫었던 일, 미루기만 하고 하지 못 했던 일들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주어진 기간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이렇다 할 흥분될 만한 성과를 이룬 것도 아닌, 그저 그런 하루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이럴 때 그동안 듣지 않았던 작품들을 들어 봐야지 하고 들었던 작품이 바로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이었다. 물론 전혀 듣지 않았다기 보다는 꽤 오랫동안 듣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는데, 사실 그렇게 듣기 힘든 곡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부담이 느껴지며 중압감이 들었던 곡, 이 곡이 바로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이기도 했다.
사실 이 곡은 희귀 곡이거나 어려운 곡도 아니며 유명하다면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곡이고 대중적인 곡이라고 할 수 있는 곡이기도 했다. 이 곡을 피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 이 곡이 길다거나(1시간) 지루하기 때문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불안한 절규가 느껴지는 아이러니. 그것은 이 곡이 아마 너무 어둡고 북극적인 야성이 여과없이 녹아있기 때문인데, 어딘가 지나치게 강직한 느낌의 개성 충돌이 불가피한 느낌 때문이었던 것 같다. 실내에서 바라보는 겨울 정경과 살을 애이는 겨울 바람 속의 겨울 정경은 분명히 다른 법이다. 이 때 다른 사람의 개성을 무리없이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긴 호흡이 필요한데 팬데믹 정서 속에서, 평소와는 다른 호흡으로 라흐마니노프의 겨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어느덧 나의 마음은 하나 하나 조각으로 흩어지며 서늘한 가을 바람, 초원의 단풍이 되어 흩날리는 듯했다.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을 듣고 있으면 괜히 센티해진다. 마치 20대로 되돌아 가는 느낌같다고나 할까. 10대에는 누구나 인생을 잘 모르지만 20대가 되면 센티해 지기 마련이다. 현실의 도전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삶의 상처가 하나씩 쌓여가던 시기, 그 때 나는 아마 고스트 타운처럼 쓸쓸한 바람의 SF 차이나타운의 한 가운데 서 있었던 것 같다. 왜 하필 어울리지 않게 차이나타운과 라흐마니노프의 선율이 겹쳐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바닷바람이 몰아치는 이방의 거리에서, 영혼 없는 육체처럼 하루를 버둥거리며 이민자의 고독을 곱씹곤 하던 때였기 때문인지 모른다. 아무튼 그 때 라흐마니노프의 곡들을 듣고 또 들었다. 그 때의 감성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자기 자신을 보는 듯한 그런 어둡고 쓸쓸한 느낌이 좋았던 것 같다. 그저 감상적인 분위기에 젖어 하루를 몸부림치던 그런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마치 요즘의, 긴 어둠의 방학을 몸부림치듯이.
라흐마니노프는 음악적으로 다소 불행한 세대를 살아간 작곡가였다. 뛰어난 피아니스트였지만 피아니스트보다는 작곡가로서 더 명성을 날렸고 그 자신도 연주자로서의 역할보다는 작곡가로서의 재능을 더 인정했던 것 같다. 얼마 전 한국인이 좋아하는 클래식 목록을 찾아봤더니 지난 수년간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대중이 좋아하는 클래식 베스트 100 중에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 3위, 그 외에도 ‘피아노 협주곡 3번’, ‘파가니니 주제 광시곡’ 등이 모두 100위 안에 들어 있었다. 브람스의 작품이 교향곡 (3번) 한 곡 밖에 없는 것을 보면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 대중에게 어필하는 호소력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베스트 작품들은 모두 피아노와 연관된 협주곡들이었지 교향곡의 인기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교향곡 분야에 있어서 라흐마니노프는 마치 차이코프스키가 휩쓸고 간 빈자리의, 한 마리의 외로운 이리와 같은 존재였다. 20세기의 작곡가였지만 19세기의 감성으로 음악활동을 했던 라흐마니노프는 선배 차이코프스키가 휩쓸고 간 황량한 빈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기만의 고독, 그리고 러시아적인 감성을 가감없이 자기의 작품 속에 쏟아 부었다. 그러나 그의 교향곡들은 이미 한물간 낭만파들에게도 당대의 (러시아) 국민 음악파 사이에서도 환영 받지 못했다. 특히 교향곡 2번은 라흐마니노프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초연 이후 아무도 그의 작품을 연주하러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흑역사는 교향곡사에서도 유명하다. 특히 1897년 교향곡 1번 발표 당시, 여기저기서 혹평이 쏟아졌다. 특히 러시아 5인조의 평론가 큐이는 ‘지옥의 음악’이라며 빈곤한 주제 의식, 병적인 화성법에 십자 포화를 퍼부었다. 공연 직후 욕설까지 난무했던 이날의 상처를 뒤로하고 라흐마니노프는 11년 만에 다시 교향곡 2번에 도전한다. 그러나 결과는 1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글린카 상이 주어지긴 했지만 발표 직후 얼마 안 가 곧바로 사장되고 만다. 곡이 너무 길고 어두웠기 때문이었다. 2번의 스케일은 분명 1번과는 달랐지만 장황하긴 역시 마찬가지였다. 러시아적인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선율들을 대거 가미했지만 2번 역시 1번의 분위기를 역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이 다시 대중 속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71년, 런던 심포니의 지휘자 앙드레 프레빈 때문이었는데 프레빈은 이 곡을 가지고 소련, 아시아 순회에 나서 레닌그라드, 도쿄, 오사카, 홍콩으로 이어지는 길에 서울에도 들러 당시 시민회관에서 성공적인 공연을 이끌어 냈다. 이 때문인지 80년도 중반, 정재동이 이끄는 서울 시향이 이 곡으로 샌프란시스코를 방문, 데이비스 심포니 홀에서 연주하여 극찬 받은 적이 있었다. 80년도 서울 시향의 수준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찬사 받을 정도의 연주력을 보여줬다면 아마도 프레빈의 영향력을 간과할 수 없겠는데 아무튼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은 서울 시향과도 인연이 깊었고 어딘가 한인들의 정서에도 맞아떨어지는 곡이었다.
총 4악장으로 되어 있는데 연주시간은 약 1시간. 다소 길기 때문에 초창기에는 거의 연주되지 않았지만 곡상만큼은 비할 바 없이 아름답다. 특히 1악장과 3악장은 러시아적인 가을 분위기를 그대로 전해주는 작품들로서 그중 3악장의 주제 선율은 팝송 가수 에릭 카먼이 ‘Never gonna fall in love’라는 제목으로 불러 히트하기도 했다. 4악장은 활기 있고 기쁨이 넘치는 알레그로 비바체 악장으로 쓸쓸한 가을, 기나긴 겨울을 지나 봄을 예감하듯, 빠르고 박진감 넘치는 행진곡 풍으로 우렁찬 함성의 막을 고한다. 이 곡을 세상에 다시 알린 앙드레 프레빈 지휘의 런던 심포니의 연주(1973)가 유튜브에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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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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