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곡예와 같은 한 해가 지났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아까운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렇치 않은 사람들도 각종 재정적 피해와 심리적인 불안감에 시달렸다. 2020년은 특히 예술가들에게 가장 잔인한 해였다. 공연장과 전시 공간을 빼앗긴 이들은 실업자처럼 방황해야했고, 앞으로 이 상황을 얼마나 더 기다려야될지 모르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2021 신축년은 하루빨리 이같은 악몽에서 깨어나길 바라는 마음… 한결같지만 아직은 모든 것이 불확실할 뿐이다. 백신 개발 소식이 속속 들려오고 있지만 새벽이 가까이 왔다는 추측일 뿐, 정상적인 회복까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는 아직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다.
인류는 늘 역경과 함께 해 온, 도전과 응전의 역사였다. 아니 오히려 이 역경으로 인하여 인류는 더 슬기로운 방향으로 발전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 역경으로 인해 채워져야 할 빈자리를 원망하며 살 수도 있었겠지만 그 빈자리가 있었기 때문에 인류는 예술을 추구해 왔고 또 그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노력해 왔는지도 모른다. 베토벤은 ‘역경은 사람에게 인내를 선물한다’고 말한 바 있다. 2021년은 그 무엇보다도 도전과 극복의 한 해가 되길 소망하는 마음에서 그에 어울리는 음악들을 들으면서 신년의 아침을 열어젖히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다. 베토벤의 교향곡 5번’운명’, 9번’환희의 송가’, 말러의 교향곡 1번 ‘거인’ 그리고 8번 ‘천인 교향곡’ 등도 영혼을 격앙시키는 환희의 악상으로 가득찬 작품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일촉즉발, 생사의 위기에서 목숨을 담보로 감동을 선사한 작품은 뭐니뭐니해도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이 아닐까 한다.
꽤 오래 전, 이 난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되어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에 대해 쓴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이 작품의 감동을 표현할 길이 없어서 뜬금없이 광장의 하늘을 날아오르는 비둘기를 거론하며 찬양을 쏟아부은 적이 있었는데 전혀 앞 뒤가 안맞는 표현이었지만 지금이라해서 딱히 표현할 다른 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작품은 내가 자랄 때만 해도 들을 수 없었던 곡이었다. 80년도 중반까지 이 곡은 한국에서 금지곡이었다. 쇼스타코비치가 공산 치하에서 작곡활동을 한 음악가였기 때문에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산주의 사상이 묻어나는 작품을 함부로 공연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유럽을 비롯 서구에서는 이미 쇼스타코비치를 받아들인지 오래였지만 교향곡 5번 만큼은 지금도 독재자 스탈린에 의해 교화된 작품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소련이 붕괴되기 이전까지 체제 선전용으로 일등공신 역할을 한 작품이기도 한데 지금도 이 작품은 쇼스타코비치의 순수 예술성이 묻어나는 작품이라기보다는 가장 공산주의적 사상이 강하다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음악가들은 늘 빗나간 화살, 자칫 숙청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었다. 특히 스탈린의 독재 하에 수많은 예술가들이 숙청되거나 검열의 단두대에서 사라져갔다. 쇼스타코비치도 예외는 아니어서 공산주의 체제에 어울리는, 아니 모든 인간에게 감동을 주는 그런 예술을 창조하지 못할 경우 죽음이라는 댓가를 치루어야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뜨겁기 보다는 냉철해야했고 아름답기 보다는 정의로워야했던… 그랬기 때문에 또 감동의 느낌이 색다른 그런 음악… 그것은 절망의 순간에 새벽을 노래해야하는 아이러니이자 비자율적이고 구속된, 거짓 희망을 마치 자유를 먹이로 성장한 포식자의 예술로 승화해야했던 이율배반의 극치에서 탄생했던, 그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여명의 음악이기도 했다. 1937년 11월 레닌그라드에서 이 작품이 발표됐을 때 청중은 이 작품의 연주 시간에 버금가는, 1시간에 가까운 시간동안 기립박수를 멈추지 않았다고한다. 어떤 기적이 일어났기에 이같은 광란의 시간이 가능했을까?
이 곡은 쇼스타코비치가 살아있는 동안 소련 체제를 대표하는 음악으로 선전되었으나, 사실 작곡 동기는 정반대의 환경에서 탄생한 아이러니한 작품이었다. 1936년 소련 공산당 기관지로부터 사상 비판을 받은 후 1937년 4월부터 7월까지 넉 달이 안되는 짧은 시간에 작곡되어 그 해 11월에 초연되었다. 그간 전위적인 실험성을 많이 추구해오던 쇼스타코비치 음악은 이 곡을 기점으로 사실상 사회주의 노선으로 급선회하게 된다. 1930년대 초반 당으로부터 '국민작곡가'의 칭호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쇼스타코비치는 1936년 1월,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드 부인'을 관람하던 스탈린에 의해 노골적으로 ‘인민의 적’으로 낙인 찍히게 된다. 공연 도중 불쾌감을 표시하며 스탈린이 자리를 뜬 다음날 소련의 기관지 '프라우다'는 ‘맥베드 부인'에 대해 지극히 부르주아적이고 천박하기 이를 데 없다는 혹평을 실었고, 이후 쇼스타코비치는 하루아침에 반동 작곡가로 찍혀 비밀경찰에 끌려가 취조를 받게 되었다. ‘인민의 적’에서 ‘인민의 영웅’으로… 과연 쇼스타코비치는 어떤 음악으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을까? 그 내용을 담은 해설과 연주 실황이 담긴 다큐멘타리가 SF 심포니에 의해 제작된 ‘Keeping Score’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나와 있다.
흑도 백도 아닌 것을 흔히 회색주의라고 한다. 그러나 희망의 모습이야말로 어쩌면 흑도 백도 아닌 사실은 여명의 아침, 회색의 모습은 아닐까. 아직 밝지도, 그렇다고 어둡지도 않은 새벽을 일깨우는 음악… 그것은 어쩌면 가장 어려운 순간에 사람의 뇌리를 강타해야 했던, 영감으로서만이 가능한 진정한 승리를 노래하지 않고는 불가능했기에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이야말로 이 어렵고 힘든 회색의 시기를 맞이하여 가장 걸맞는… 환희의 찬가가 아닐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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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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