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철우 목사가 들려주는 ‘뉴욕지역 독립운동 발자취’ <11>
1944년 5월28일 워싱턴 DC에 있는 구미원부(Korean Commission)을 후원한 주미외교위원회 협찬부 임원들과 함께 사진촬영한 배민수(앞줄 왼쪽 세 번째) 목사. 두 번째 줄 오른쪽 세 번째부터 이승만 부부.
▶ OSS 특수부대 강도높은 훈련 받은 100여 젊은이들
▶작전대로 침투했다면 당당한 해방군 인정
▶뉴욕한인교회 배민수 6대목사 농촌계몽 애국운동 앞장
■뉴욕한인교회 6대 목사로 부임한 배민수 목사
3년 만에 떠난 김준성 목사에 이어 배민수 목사가 6대 뉴욕한인교회 목사로 부임했다. 1945년 3월이다.
배민수 목사는 1942년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에 입대해 한영교, 안수화와 함께 워싱턴DC 미육군성에 근무하고 있었다. 뉴욕시에 국무성의 전시검열국(The Office Censorship)이 생기면서 배목사는 워싱턴DC 육군성에서 뉴욕으로 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배 목사의 뒤를 이은 뉴욕한인교회 목사였던 윤응팔 목사 부인에 의하면 윤 목사도 뉴욕 검열국에서 배 목사와 같이 있었다고 회고한다. 배 목사는 검열국에 있으면서 뉴욕한인교회를 돌보고 있었다.
1945년 8월 15일 한국이 해방되어 한국에 미군정이 실시될 때 배 목사는 한국으로 발령을 받고 그해 9월에 한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윤 목사도 발령을 받았으나 자녀들의 교육문제로 거절하고 배 목사의 후임으로 뉴욕한인교회를 담임하게 되었다.
김준성,배민수,윤응팔은 같은 때 프린스턴 신학교를 졸업했기에 친숙한 사이였다.
한국으로 떠난 배 목사는 미군의 신분으로 미군정의 고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자세한 것은 알 수가 없다.
■친구인 주기철 목사의 희생으로 더 굳건해진 애국운동
배민수 목사는 1896년 충북 청주에서 의병대장인 청주감영 진위대 육군 부교 배창근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의 애국정신을 이어받아 평양 숭실전문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노백린,장일환,김형직(김일성의 아버지,숭실졸업)과 더불어 조선 국민회라는 애국단체를 조직했다. 이 조직이 일본 경찰에 탄로가 나, 세 사람은 평양감옥에서 1년간 옥살이를 하고 출감하자 곧 3.1.만세운동이 일어나 배 목사는 만세시위에 가담했다.
그는 함북 성진으로 가서 6,000여명의 시위군중 앞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다가 다시 체포되어 함흥감옥에서 1년 2개월 옥살이를 하고 1921년 4월 29일 출감했다. 출옥 후 다시 숭실학교로 가, 1928년 문과를 졸업하고 선교사의 도움으로 1932년 도미했다.
시카고 맥코믹 신학교에 입학, 졸업한 후 귀국해 장로교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농촌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농사가 주된 조국의 현실에서 농촌 부흥의 길이 애국운동을 위해 시급한 일이라고 깨달은 것이다.
그는 장로교 총회본부에 농촌부를 신설해 농촌을 순회하면서 계몽을 중심으로 한 민족각성운동의 애국강연을 주로 했다.
3년간 200여회를 강연했는데 미국 유학시 친구였던 그린리프라는 후원자로부터 연간 4,000달러가 지원돼 전국은 물론 만주지역까지 순회강연에 나섰다. 배 목사의 농촌운동이 애국운동이라는 사실을 일본 경찰이 모를 리 없었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배 목사는 친구인 주기철 목사를 찾아가 상의를 했다.
주기철 목사는 대뜸 감옥은 내가 갈 터이니 너는 빨리 미국으로가 더 큰 애국운동을 하라는 부탁을 했다는 것이다. 체포 직전, 1938년 미국으로 피신했다.
배 목사는 친구 주기철 목사가 붙들려 감옥에서 옥사하는 비보를 미국에서 듣고 친구가 못 다한 애국운동을 하게해달라는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미국에 온 즉시 미 전역을 순회하며 935회에 달하는 조국을 위한 애국강연을 했다. 3년간의 순회강연을 마치고 1941년 가을에 프린스턴신학교
에 입학해 졸업했다. 그 후 미육군성 근무와 뉴욕한인교회 6개월 담임 후 한국으로가 미군정 고문 3년 근무를 마치고 미군이 철수할 때 다시 온 가족이 미국으로 이주하게 된다.
1951년 미네소타주 매칼레스터 대학에서 명예신학박사를 받고 귀국해 대전에 기독교연합봉사회를 창설하고 1957년 기독교농민학원과 이어 삼애(하나님,나라,농촌 사랑)농업기술학원을 설립하고 많은 교회를 개척했다.
그의 애국운동과 농촌부흥을 위해 평생 몸 바친 사실을 인정받아 한국 정부로부터 1962년 농촌진흥유공자상과 1966년 3.1.운동선도자상을 받았다. 그는 1968년 8월 25일 별세했다.
후에 배 목사가 경영하던 삼애동산을 가족들이 연세대에 기증해 연세대에 농업개발원이 건립되면서 배민수 목사의 기념관으로 이름을 지었다. 이곳에는 그의 유품이 보관돼 있다.
중국에서 OSS훈련때의 정운수 대위(왼쪽부터). 버드 중령, 이범석 장군(1944년)
강한모
■독립운동 위해 한인유학생들 OSS특수부대 대거 지원
“미 특수부대 OSS(OFFICE OF STRATEGIC SERVIS·미 육군 전략정보국)배 목사가 근무했다는 미 육군성 전시검열국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미 특수부대인 OSS는 한인동포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약 3만5,000명의 특수군인들이 정보업무를 주로 담당했던 OSS는 중국과 일본에 교란작전을 위해 극동작전국을 설치했다. 이에 일어와 중국어에 능통한 젊은이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애국심에 불타던 한국 유학생들이 대거 지원했다. 한국독립운동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란 사실을 안 서재필, 이승만이 많이 독려하며 한때는 100여 명이 넘었다. 뉴욕한인회 1961년도 회장 강한모는 미 육군에 입대하면서 이 부대에 배속되었고 하버드 교수였던 함용준도 이 부대에서 9명으로 구성된 한국요원들을 이끌고 중국에서 활동한 바 있다.
그외 장석윤(전 내무장관),이순용(전 내무장관),정기영(전 체신부장관),김길준 등이 있고 그리고 유일한(유한양행창업자)은 침투훈련부대에 배속되어 비밀정보업무를 담당했었다고 한다.
보훈처에서 애국장에 추서된 OSS 특수부대에 근무한 한국 젊은이들을 살펴보면 변준호,변일서,이종실,이태모,이초,이근성,이창휘,차진주,정운수 등이다. 정운수는 뉴욕한인교회 교인으로 프린스턴신학교를 졸업하고 임병직,장기영과 같이 구미위원 주보 편집 발송을 담당하다가 애국의 보다 나은 활동을 위해 미 공군에 입대, 소위로 임관하고 1944년 버마전투구 항공대에 배속되어 일본군과의 전투에 참여했다.
1945년 1월 히말라야를 넘어 중국에 도착, 미 제14항공대대에 근무하던중 중국내 한국 광복군 등 독립운동의 잠재세력을 파악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고 임시정부요원들을 만났다. 이청천,최용덕 김약산, 김규식 등과 긴밀히 상의한 후 광복군 제1지대, 2지대를 방문하고 유격대 조직의 지시를 받았다. 정운수는 주로 통신 교육을 맡아 훈련했다.
강도 높은 훈련을 마친 유격군이 국내진입 대기중 몇일 앞두고 일본의 항복으로 취소됐다.
백범일지에 따르면 김구는 땅을 치며 낙심했다는 것이다. 당당히 독립군으로 국내입성할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미국내에서도 미 서부 카타리나 섬에서 100명에 가까운 한인 청년들이 특수훈련을 받고 한국침투 작전인 냅코 작전을 위해 대기중이었다.
이들이 모두 국내에 침투하여 실전에 참가 한 후 연합국이 승리했다면 한국도 당당히 해방군으로 인정되었을 것이다.
당시 미국에 있던 한국의 젊은이들이 조국 독립에 몸부림치듯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는 지 새삼 느끼게 된다. 한국 유학생들의 새로운 애국운동의 일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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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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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나오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는말을 많이 들었는데 요즘은 애국자는 못되드라도 조국을 욕하는건 안할일인데도 잘돌아가는 조국을 요리조리 말도안되는 모양으로 욕하고 저주/하는걸보면서 참 안타까운걸 슬픈걸 느끼는군요, 특히 트 는 대한민국은 자기 허락없인 한발자욱도 못움직인다는 극히 모욕적인 말 미군유지비 100%전부 내라고 욱박지르며 깡패같이 무시하고 협박하는데도 트를 신 모시듯 하는 믿는다는 종교인들이 잇다는게 영 알다가도 모르겠드군요, 어찌된일인지 ....ㅉㅉㅉ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