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은퇴후 사재 220만달러 털어 재단 설립
▶ 팬데믹이후 정부지원 못받는 서류미비자에 현금지원
올핸 후원회원 모집해 예산 20% 증액 목표
21희망재단 변종덕(76·사진) 이사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피해를 입은 한인들 중에서도 끝이 보이지 않은 긴 터널 속을 헤매는 이들이 있다. 정부의 경기부양 지원금이나 실업수당 등의 지원을 일체 받지 못하는 한인 서류 미비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하지만 절망에 빠진 그들에게 손을 내밀며 희망과 용기를 북돋운 사람이 있다. 바로 21희망재단 변종덕(76?사진) 이사장의 이야기다.
■어려움에 처한 한인들 수없이 많이 만나
은퇴 후 편안한 노후를 보낼 일만 남았던 변 이사장은 돌연 자신의 사재 220만달러를 기부하고 2019년 12월 12일 21희망재단을 설립했다. 한인사회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은퇴하고 남은 재산을 정리해봤는데 350만달러가 남더군요. 자식 3명이 가진 대출금 50만 달러 갚아주고 나니 300만 달러가 남았는데 100만 달러면 평생 사는데 지장이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바로 200만달러를 기부하기로 마음먹었죠.”
21희망재단은 21세기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희망을 갖고 살아가길 바라는 그의 바람이 들어있다.
재단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인 서류미비 가정과 사고를 당한 한인 가정에게 현금을 지원하고 있다. 또 한인 비영리단체와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도 지원하고 있다.
변종덕 이사장은 뉴욕한인회 복지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할 당시 어려움에 처한 한인들을 많이 만나게 되면서 은퇴 후 재단을 설립해 불우한 한인들을 돕겠다는 마음을 가슴 속에 품었다고 밝혔다.
■불체자 가족 상봉행사 추진
“1987년 조병창 뉴욕한인회장 당시에 복지재단 이사장을 맡았는데 어려운 한인 분들을 너무 많이 만났어요. 특히 그때는 미국에 홀로 와서 일하면서 한국에 있는 가족에 돈을 보내는 한인 서류미비자들이 너무 많았죠.
하루는 한 신문기자가 연락 와서 야채가게에서 일하던 사람이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해 있으니 같이 가보자고 해서 가봤더니 암 말기라 3개월도 못산다는 거예요. 미국에 온지 10년 동안 매달 1,000달러정도를 벌어서 800달러는 한국에 있는 가족에 보내고 자기는 200달러로 쪽방에서 살았다고 하더군요.
그동안 서류미비자라서 아프더라도 병원에도 못가고 참고 일하다가 그렇게 병을 얻게 되고 사형선고를 받은 거죠. 그래서 마지막 소원이 무엇인지 물어봤더니 죽기 전에 가족들을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즉시 가족을 만날 수 있게 추진했죠.”
두 차례나 비자발급이 거절 돼 미국에 올 수 없었던 남성의 아내는 변 이사장의 도움으로 비자를 발급받고 뉴욕에 올 수 있었다. 변 이사장이 직접 주한 미국대사에 연락해 이 남성의 사연을 전하고 부인의 비자를 나올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여성이 JFK 공항에 내리자마자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서 남편을 보지도 못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비자 발급이 늦어져 부부가 만날 수 없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주한 미국대사는 변종덕 이사장의 주선으로 한국과 미국에서 떨어져 지내는 가족들을 상봉시켜주는 행사를 추진했다.
서류 미비자이지만 10년 이상 미국에 떨어져 가족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매년 10~15명을 선정해 한국의 가족을 미국으로 초청해 만나게 해주었다.“총 7차례나 가족상봉 행사를 했는데 한국에서 가족들이 와서 서로 만나면 완전 눈물 바다였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한인 서류미비자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늘 마음속에 있었죠.”
■재단활동 시작후 21만달러 추가 기부
지난해 21희망재단은 한인 서류미비 가정 550곳에 500달러씩을 현금으로 지원했다. 팬데믹 이후에도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한인 서류미비 가정이 가장 도움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또 갑자기 사고를 당해 어려움에 처한 한인가정에게도 현금 1,200달러씩을 지급했다.
변종덕 이사장은 재단 설립시 200만달러를 기부했지만 재단 활동을 하면서 15만달러와 6만달러를 추가로 기부했다.
“어느 날 한 여성분이 재단 사무실로 찾아와 아이들이 밥을 굶고 있다며 눈물로 호소하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더군요. 밤에 잠에 들기 위해 누웠는데 가슴이 아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바로 6만달러를 추가로 기부했죠. 그러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재단은 올해 예산의 20%를 증액해 총 24만달러를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특히 올해는 후원회원도 모집하고 있는데 1년에 100달러씩이면 재단 후원회에 가입할 수 있다. 변 이사장은 올해 모금되는 후원회비까지 합하면 2022년에는 30만달러를 지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변 이사장이 재단을 운영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수많은 한인들이 후원금을 보내 온 것이다. 한국에서 목사 7명이 15만달러를 후원하고 한양마트에서 2만달러를 기부하는 등 크고 작은 금액이 재단에 전달됐다.
“하루는 한 여성이 전화가 와서 기부를 하고싶다고 하길래 우편으로 보내라고 했더니 꼭 만나서 주고 싶다는 거예요. 그래서 몇 백 달러 정도 주려나 생각하고 약속장소를 나갔는데 어떤 여성이 현금 5,000달러를 전달하고 바로 나가는 거예요.
너무 놀라서 달려 나가 여성에게 말을 거니 자신은 심부름을 한 것뿐이고 돈을 준 사람은 따로 있다는 거예요.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아서 그렇게 기부를 한 것이죠. 너무 고마운 분들이 많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흑인 커뮤니티와의 화합에도 큰 역할
변종덕 이사장은 한·흑 커뮤니티 화합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15명의 장학생을 선발해 2,500달러씩을 전달했는데 그중 3명은 흑인 장학생이었다. 변 이사장이 타민족과의 화합에도 관심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뉴욕한인회장 시절 한·흑 갈등을 해결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1990년 한인회장 시절에 한인이 운영하는 청과물 가게에서 물건을 훔친 아이티 여성이 종업원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흑인들이 불매 운동과 항의 시위를 엄청나게 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 뉴욕한인회장이었던 제가 당시 데이비드 딘킨스 뉴욕시장을 설득해 흑인들의 시위를 진압하도록 한 적이 있었죠.”
이후 소수계 커뮤니티간 이해 부족으로 갈등이 생겼다고 생각한 변 이사장은 소수민족 지도자 12명을 추천해 함께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올해도 불우한 한인 가정을 돕기 위해 더욱 열심히 활동할 계획이라는 변 이사장은 “도와드릴 분은 많은데 한정된 예산으로 다 도와드리지 못해 항상 마음이 고통스럽다”며 “팬데믹으로 모두가 어려운 시기이지만 희망을 갖고 이겨나가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후원 문의: 347-732-0503
■ 변종덕 이사장은
1970년 도미 후 뉴욕시 일원에서 슈박스라는 신발 체인 매장을 운영했으며, 1991년부터 1992년까지 21대 뉴욕한인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사재 220만 달러를 기부해 21희망재단을 설립하고 불우한 한인들을 돕고 있다. 가족으로는 아내와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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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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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우신 분~!훌륭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