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웬디 그로스만(필립스 컬렉션 큐레이터)이 들려주는 뉴욕의 아티스트·갤러리스트 제니퍼 방
추상표현주의 회화에서부터 테크놀러지를 이용한 설치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세계를 보여준 제니퍼 방이 작가로서 맹활약하던 시절 모습.
뉴욕 맨하탄의 어퍼이스트사이드에 위치한 제니퍼 방 갤러리에 들어선 순간, 관람객은 편한 분위기에 환영받는 느낌을 받는다. 현재 전시되고 있는 자넷 테일러 피켓((Janet Taylor Pickett)의 화려하고 매혹적인 작품들로 채워진 공간은 관람객 모두 예술의 세계에 심취할 수 있도록 초대한다.
갤러리 건물은 매디슨 애비뉴에 위치한 건물의 양식을 취하고 있으며 -두 개의 독립된 갤러리 공간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긴 공간으로 구성- 일정한 계획하에 교체되는 전시와 그에 포함된 다양한 작가들의 멋진 작품들을 소개한다.
▲제니퍼 방 갤러리 웹사이트:
www.baahng.com
▶ 남성 위주 미술계서 소수계여성으로 갤러리 오픈 이례적
▶ 첼시·미드타운·어퍼이스트 등 화랑계 요지서 활동
▶ 20년간 근·현대 미술사 작가들 선정, 전시 다수 개최
▶ “갤러리 운영은 작가활동의 연장선” 예술가의 길 정진
▶ 작가·교육자·큐레이터 등 다양한 경험에 의해 시각 형성
▶ 팬데믹 거치며 미술계도 변화$온라인 플랫폼 활성화
아트뉴스 잡지의 편집장 겸 발행인 매리온 K. 매니커와 인터뷰하는 자넷 테일러 피켓(오른쪽). 현재 그녀의 개인전이 제니퍼 방 갤러리에서 11월20일까지 열리고 있다.
■제니퍼 방은 누구?
이 글에서 제니퍼 방 갤러리의 대표를 소개하고자 한다. 매력적이고 따스한 품성을 지닌 제니퍼 방은 한마디로 간단히 정의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녀는 자신의 갤러리에 소속된 다양한 작가군 만큼이나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녔기 때문이다.
뉴욕의 명문 컬럼비아 대학의 경제학 학사, 스튜디오 아트와 미술교육을 전공으로 석· 박사과정을 마친 그녀는 성공한 작가이자 큐레이터로 활동하였고, 현재는 그녀의 오랜 경력과 전문성을 보여주는 자신의 이름과 같은 갤러리 ‘JENNIFER BAAHNG GALLERY’의 설립자이자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그녀가 뉴욕 갤러리 현장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2003년은 남성 위주의 미술계에서 주류가 아닌 여성, 특히 한국계 미국인 여성이 갤러리를 오픈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녀는 3개의 갤러리, 존 첼시아트센터(ZONE: Chelsea, Center for the Arts, 2003~2007), 5애비뉴의 존 컨템퍼러리 아트(ZONE: Contemporary Art(2007-2011), 현 제니퍼방 갤러리(JENNIFER BAAHNG GALLERY, 790 Madison Ave, 5th Fl, New York, 2011~현재)를 운영해왔고, 미술계의 다양한 측면에서 새로운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첼시/미드타운/어퍼이스트 등 화랑계의 요지에서 활동한 갤러리 역사 또한 그 위상을 보여준다.
지난 20년간, 그녀는 근대미술사의 중요한 작가들을 선정하고 그들의 대표적인 작품을 전시해 왔다. 인상주의 미술의 대가 모네, 샤갈, 르노와르, 20세기 초반의 대표작가 마티스, 피카소, 2차대전 이후 미술의 대표작가, 잭슨 폴락, 윌렘 드쿠닝, 마크 로스코가 있다.
현대미술로는 앤디 워홀, 도날드 저드, 로버트 라이만, 데이비드 호크니, 알렉스 카츠, 데미안 허스트와 제프 쿤스가 있다.
재스퍼 존스와는 직접 만나 작품에 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고, 루이스 부르주아와는 타계 1년전까지 한국에서의 프로젝트 기획을 위해 함께 논의하기도 했다.
전시 외에 그녀는 솔 르윗의 벽화작업과 클래드 올덴버그의 조각 작품의 공공미술을 서울에 설치했다. 그녀의 기억에 남는 일화는 2006년 타계한 백남준의 마지막 생일기념이 된 20세기 아방가르드 아티스트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과의 만남을 주선한 일이다. 이처럼 다양한 작가를 전시·거래해온 경험은 그녀의 아티스트^갤러리스트로서의 경력과 능력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재키 마티스의 작품.
■마티스 가문과의 오랜 인연
마티스 가문은 제니퍼 방 갤러리와 오랜 인연이 있다. 그녀는 올해 타계한 재키 마티스(작가 앙리 마티스의 손녀, 작가 마르셀 뒤샹의 의붓 딸)를 오랫동안 소속하는 갤러리로 일해 왔으며, 다수의 개인전, 그룹전을 개최했다.
현재는 앙리 마티스의 증손녀 소피 마티스를 소속하는 갤러리로 다수의 그룹전을 개최했고, 2021년 봄에 그녀의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2007년, 그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추상표현주의 작가 에드 클락의 전시를 열었으며,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미술동맹인 Spiral의 창립 멤버이며 갤러리 전속 작가였던 리처드 메이휴를, 2009년 개인전을 시작으로, 2009~2010년 사이에 3개의 미술관 투어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다.
현재는 소속 작가 자넷 테일러 피켓의 전시가 진행중이며, 아프리카계 미국여성으로서의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들을 서정적인 그림과 콜라주 기법으로 표현한 작품을 선보인다.
이 전시 ‘필요한 기억들(Necessary Memories)’은 그녀의 첫 뉴욕개인전으로 11월20일까지 전시되고, 아트뉴스(ARTNEWS) 잡지의 리뷰 기사와 편집장이 작가와 직접 진행한 라이브 인터뷰 영상은 갤러리 웹사이트를 통해 볼 수 있다.
갤러리스트로서의 제니퍼 방은 아시아 혹은 아시아계 미국인 미술가들의 전시도 다수 개최했으며, 이 중 백남준, 노부오 세키네와 장 홍투 등은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선보이는 작가이다. 2006년 ‘케이지 남준’ 전시는 멀티미디어 한국작가 백남준과 미국 작곡가·음악이론가·퍼포먼스 아티스트인 존 케이지의 기념비적인 공동작업을 보여주었다.
장 홍투는 뉴욕을 근거로 활동하는 중국계 미국작가로 중국 팝아트, 미술운동의 선구적인 작가이며, 현재 제니퍼 방 갤러리에 소속되어 개인전은 물론, 다수의 그룹전에 소개되었다.
2017년 ‘거대한 바위들 (Two Rocks)’ 노부오 세키네와의 2인전이고, 이우환과 함께 1960년대 도쿄에서 시작된 미술그룹 모노하(Mono-ha) 공동설립자이다.
그밖에 단색화 계열의 김형대의 개인전을 비롯해, 레고조각을 작업의 주재료로 사용하는 문재원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제니퍼 방은 뉴욕 외에 국제전시를 기획·진행했는데 모스크바, 멕시코시티에서 박유아의 개인전과 2009년과 2019년에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특별전시도 기획·진행했다. 이외에도 뉴욕한국문화원에서 개최된 전시도 기획했고, 한국문화원에서 기획한 전시를 존 첼시 아트센터에서 진행하기도 했다.
■현재의 자리에 오기까지
2003년 그녀의 작업은 전통적인 회화 방식과 캔버스의 사용을 버리고, 개념미술로 변화한다. 결국, 넓은 규모의 작업실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그녀는 자기 스튜디오를 다른 작가들의 전시공간으로 운영하며 예술가로서의 길을 계속 정진했다. 즉, 갤러리 운영도 그녀의 작가활동의 연속이었다.
갤러리 운영자로서의 모든 시간은 자신의 갤러리에서 전시하는 작가들을 위해 사용되었다. 개념적인 작가로서의 그녀의 시각과 자신의 공간에서 전시하는 작가를 성장시키기 위한 그녀의 시각은 공생관계와도 같았다. “작가가 되는 것은 선언이다. 즉, 프라이빗(private)이 퍼블릭(public)이 된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나는 나를 겸허하게 만드는 작품을 추구한다.
인생은 복잡하지만 또한 아름답다. 물리학과 수학의 ‘우아한’ 이론에서 부터 가장 단순한 형태의 유기적 형태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준에서 삶은 생존을 위한 욕망과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피할 수 없는 두 욕망을 두고 고민한다.
위대한 예술은 모든 것을 포용한다. 겸허하다는 것은 내려놓는 것을 의미하고, 시작으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이는 종종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다. 따라서 위대한 작품은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제니퍼 방의 볏집단 작품.
■팬데믹 기간 미술계도 급격한 변화
지난 1년9개월간, 코로나19로 인해 미술계는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고, 제니퍼 방 갤러리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그녀가 말하듯 “우리는 팬데믹 기간 동안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보고, 재설정해야만 했으며, 온라인 부문을 강화해야만 했다.
이는 미술애호가들에게 작가와 작품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또한 컬렉터와 갤러리와의 관계 강화는 신뢰를 완성시키는데 더욱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온라인 플랫폼은 미술 작품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시켜 주었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게 되어 미술작품의 공공성이 더욱 확대되었다. 팬데믹 기간동안 외국 컬렉터들의 지속적인 접촉이 늘어나, 비즈니스 활동은 지속되었고, 예상과 달리 갤러리 문을 닫는 일은 없었다.
맨하탄 어퍼이스트 지역 컬렉터들과의 소속감도 더욱 돈독해 졌다. 현재 제니퍼 방 갤러리(
www.baahng.com )는 반드시 방문해야 할 데스티네이션 갤러리 (Destination Gallery) 로 평가 받는다.
비교적 오랜 시간(20년)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작가로서의 활동은 잠시 뒷전으로 밀려났지만 이것은 그녀가 창작 활동의 연속의 일부일 뿐이다. 실제로 짧지 않은 시간동안 갤러리를 운영하고,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관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현재도 자신을 작가로 여긴다.
“나는 예술가로 태어났고, 배움은 끝이 없다. 지금도 제작중인 작품들이 있다. 더욱이 갤러리스트로서의 경험은 작가로서의 나의 시각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이런 지적 활동은 나의 작가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작가, 교육자, 갤러리스트, 큐레이터로서의 제니퍼 방은 이러한 모든 경험을 잘 융합하고 지휘해왔다. 그녀는 자신의 다양한 경험에 의해 형성된 독특한 시각을 가지고 작업하고 있으며, 이는 결국 그녀의 부분 부분이 모인 총 합보다 더 큰 그녀를 형성하게 된다.
앞으로 전개될 포스트- 팬더믹 시대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그녀의 갤러리에서 개최되는 전시와 그녀의 예술적 활동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글: 웬디 그로스만(Wendy A. Grossman)
■웬디 그로스만
현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앤드류 멜론(Andrew Mellon) 선임 연구원이며 워싱턴 DC의 필립 컬렉션(Phillips Collection) 큐레이터. 또한 글로벌 모더니즘과 현대 미술을 전문으로 하는 예술 및 사진 역사가이다.
웬디 그로스만은 사진의 역사, 20세기 유럽과 미국 모더니즘, 비서구와 서양 예술의 교차점, 다다, 초현실주의, 현대 미술, 예술가 맨 레이의 주제에 대해 국제적으로 강의하고 책도 출판했다. 그녀의 에세이는 편집된 책, 전시회 카탈로그 및 수많은 국제 저널에 실렸다.
▶ “나의 미술에 대한 열정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 ◀
■예술적인 배경·성장 과정
서울에서 태어난 제니퍼 방은 어려서부터 예술에 대한 애정을 키워갔다. 그의 아버지(방석근)는 그녀의 미래의 직업, 작가·갤러리스트를 위한 롤모델이었다.
그는 유화, 템페라 등 새로운 미술재료를 활용하여, 전통적인 서양미술, 특히 풍경화작가로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했다. 1955년, 그는 ‘연합미술’이라는 갤러리를 설립, 활동했고, 그의 실험작 네온 작품은 그 당시 서울역 꼭대기에 설치되기도 했다.
연합미술은 서양화 위주의 전시를 진행하고, 작품을 거래했으며, 회사 및 상업공간에 작품을 대여해주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미술 대여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제니퍼 방의 미술에 대한 열정은 이러한 배경에서 어릴 적부터 키워져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나의 미술에 대한 열정은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인해 가능했다.” 그녀는 말한다. “내가 6살 무렵, 페인트 바이 넘버(paint by number) 그림도구 세트를 사주셨고, 어린 나에게 서양 미술의 대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반 고호, 세잔느를 소개해주고, 그들의 대표작품, 모나리자 등등을 보여주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는 나에게 미술작품을 분석적으로 보는 방식을 가르쳐 주었다. 이것은 후에 오일과 아크릴 혼합물을 복잡하고 변화무쌍하게 변형시키는 연금술 과정에 대한 나의 실험작인 1990년대의 크랙 페인팅 시리즈에 반영된다.
1977년 제니퍼 방은 교육을 위해 가족과 함께 뉴욕으로 이주했고, 그녀는 미술분야에서 늘 좋은 성적을 유지했다.
그러나 새로운 나라에서 전업작가가 되는 일은 힘든 일이었다. 따라서 그녀는 자신의 기하학/수학 재능을 경제학 학사학위 취득을 위한 연구에 활용했다. 물론 미술 창작활동도 단념하지 않고 계속 진행하고 있었다.
1983년 학사 학위 취득 후, 그녀는 미술을 향한 마음을 더 이상 단념할 수 없었고, 이후 10년간 미술/미술교육 전공의 두 개의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93년 그녀는 ‘한스 호프만과 조셉 알버스: 예술가-교사로서의 그들의 중요성과 업적 주는 의미’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니퍼 방 역시, 작가/교육자의 두 역할을 동시에 진행하는 경력을 쌓아왔다. 그녀는 말한다. “가르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 자체로 전체 경험이다. 알버스와 호프만은 작가로서, 교육자로서 자신들을 분리하지 않았다. 그들은 고뇌속의 작가인 동시에 희생적인 교육자였다. 그들의 가르침과 작가활동은 상호 영향을 주고 받았다.”
제니퍼 방의 작가로서의 경력 또한 이와 비슷한 경로를 따르고 있다. 그녀는 퀸즈 칼리지와 미육군사관학교에서 가르쳤고 뉴스쿨 유니버시티, 파슨스, 링컨센터 인스티튜트, 한국의 삼성디자인교육원과 한국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강의했다.
교수생활중에도 그녀의 작가활동은 활기를 띠었다. ‘제니퍼 조’ 라는 작가 이름으로 그녀는 국제적인 활동을 진행했다.
1993년 모스크바의 러시아 미술관에서 전시한 그녀는 ‘러시아에서 개인전 한 최초의 동양 여성’이 되었다.
그 전시 도록에 실린 작가의 글에서 제니퍼 방은 자신의 작품에 관한 기본적인 생각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예술에 관한 근원적인 과제들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해결되어야 한다. 작품을 제작하는 행위는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를 지속적으로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다. 배움은 끝이 없다.” 이는 작가, 교육자, 갤러리 운영자로서의 이력에 일관되게 적용되는 그녀의 예술에 대한 접근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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