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변호사 시험인 ‘바(bar) 시험’을 통과하게 되면 흔히들 선배 변호사들이 ‘바의 일원’(member of the bar)이 됐다고 하며 후배 새내기들을 반겨준다. 이런 변호사들의 결사체가 바로 변호사협회(bar association, 변협)이다.
캘리포니아나 텍사스, 조지아 등 미국 대부분 주에서는 바 시험에 합격했더라도 변협에 따로 가입하지 않으면 변호사 활동을 할 수 없다. 즉 이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무사항이고, 변호사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선 꼼짝없이 연회비도 납부해야하는데 캘리포니아의 경우 $510, 텍사스는 경력에 따라 $68~$235 정도 된다.
이런 주의 변호사협회는 변호사 자격증 관리, 클라이언트와 변호사 간 수임료 다툼 중재, 변호사의 위법행위에 대한 징계권 등을 갖기 때문에 변협의 힘이 거의 관청에 버금갈 정도로 막강하다.
이에 반해 뉴욕과 뉴저지, 매사추세츠 등의 주에서는 법원에서 변호사 등록업무를 관장하므로 꼭 변협에 가입하지 않아도 된다. 뉴욕의 경우 법원을 통해 2년마다 법률교육 이수증과 함께 회비 $375을 내기만 하면 변호사 자격증이 갱신된다. 이런 주에선 변협이 있더라도 의무 가입 주에 비해 조직의 일체감이나 결속력이 느슨할 수밖에 없다.
뉴욕주를 예로 들면 우선 약 200~250개의 변협이 난립해 있다. 크게 인종적 배경으로 우리 한인 변협이나 푸에르토리칸 변협 등으로, 생활터전을 배경으로 퀸즈카운티나 브롱스카운티 변협 등으로 나눠진다. 또 전문분야에 따라 재판 변협이나 이민 변협 같은 곳도 있다.
그중 가장 독보적 변협은 ‘뉴욕주 변호사협회’로 7만4,000여 명의 회원이 가입돼있고, 연회비는 $95~$275선이다. 이에 비하면 아시안 변협은 1,800명 정도의 회원 수에 연회비도 로스쿨 학생 $15에서부터 중견 변호사 $125까지로, 여러 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
뉴욕처럼 이런 자발적 가입 변협의 역할은 커뮤니티에 대한 법률서비스를 비롯 입법과정에서 법적 조언, 판사 후보자의 배경조사와 면접, 회원 보수교육, 친목회 주선과 같은 서비스 차원의 일을 주로 한다.
다시 말해 자발적 변협도 현대 민주국가에서의 변호사 기본 역할인 국민의 인권옹호와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결사체라는 점에서는 의무적 변협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사회 공동체의 문제를 변협 차원에서 풀려고할 때 그 해법은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최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여성의 낙태권 문제를 두고 변협의 방향이 자신의 신념과 다를 경우, 뉴욕주 회원은 협회 행동에 참여하지 않든가 정 안되면 협회를 탈퇴하면 된다. 그렇지만 텍사스주 회원은 자신의 자격증 문제가 걸려있어 쉽게 탈퇴할 수 없기 때문에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것이 1990년에 결정된 ‘켈러 대 캘리포니아주 변협’(Keller v. State Bar of California)사건이다. 당시 캘리포니아주 변협은 총기규제, 저소득층 주택 확충, 핵무기 확산금지 등 다방면에서 정치활동을 전개했다.
이때 협회의 정책에 동조하지 않는 21명의 변호사들이 협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 사건에서 연방대법원은 “변호사들을 의무적으로 변협에 가입시킬 순 있지만, 회비는 법률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만 사용될 수 있다”고 판시함으로써 최소한의 변협 운영지침을 제시해주었다.
마지막 특이사항으로, 미국에서는 판사들을 변호사와 구분짓기 위해 ‘벤치’(bench)라 부르고, ‘바의 일원’으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에 보통의 경우 판사들은 자발적 변협에는 가입할 수 있어도 의무적 변협에는 가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소위 변호사들의 천국이라고 일컫는, 또 연방국가인 미국에서 볼 수 있는 이채로운 풍경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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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락/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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