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 손에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하게 하는 힘을 부여받았던 프리지아(Phrygia)의 왕 미다스(Midas)의 이야기가 있다. 손을 대는 것마다 다 황금으로 변해 그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황금이 좋다지만 사람이 황금을 먹고 살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서양에서는 유대인들을 꺼리듯 한국에서는 개성사람들을 멀리해 온 것 같다. 그 이유는 이들이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에 등장하는 냉혹한 고리대금업자 샤일록(Shylock)이나,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A Christmas Carol)’에 나오는 수전노 스크루지(Scrooge) 같이 인색하기로 소문났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물론 선입견과 편견이 많이 작용했으리라.
좀 과장되긴 했겠지만 개성사람들이 얼마나 경제적이고 절약하는지를 말해주는 얘기들이 있다. 개성사람 집 밥상에는 밥 한 그릇뿐이고 소금에 절인 짠 조기 한 마리가 천정으로부터 밥상 위로 매달려 있어 밥 한술 입에 떠 넣고는 그 짠 조기를 한번 반찬으로 쳐다본단다. 또 어느 누가 개성사람 집 뜰 안으로 짠 조기 한 마리를 던졌더니 그 집 주인 어른이 이 웬 ‘밥도둑이냐’고 펄쩍 뛰면서 집안 식구들이 이 짠 조기 때문에 밥을 많이 먹게 될까 봐 이 조기를 얼른 집어 울타리 밖으로 되던져 버리더란다.
내가 아는 사람의 아버님께서는 옛날 개성에 사실 때 볼 일 보러 집 떠나 먼 길 가실 때면 주머니에 떡을 몇 개씩 넣고 가셨는데 아무리 배가 고파도 떡이 쉴 때까지 참고 기다리셨다고 한다. 쉰 떡을 잡숴야 소화가 안 돼 배고픈 줄 모르고 오래 버티실 수 있었던 까닭에서였단다. 그래서였는지 그분께서는 오래 못 사시고 일찍 돌아가셨다고.
남 말은 그만두고 내 얘기도 좀 해보리라. 내가 20년 살다 헤어진 첫 번째 아내 친정이 개성 출신이어서였는지 나도 모르게 그 전통에 물이 들어서였을까, 결혼 후 영국으로 이주해 직장 일로 매주 영국 각지로 출장을 다니면서 주말마다 집에 오면 아내가 싸주는, 하루 세끼 먹을 샌드위치 5~6일분을 한 박스 차 트렁크에 싣고 떠났었다.
호텔에선 보온병에 더운물만 얻어 차를 타 마시면서 회사에서 받는 출장비 중 식대는 한 푼도 쓰지 않고 다 모아 음악 공부하는 세 딸들 뒷바라지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차에 싣고 다니느라 겨울에는 꽁꽁 얼고 여름에는 곰팡냄새가 나는 샌드위치를 날이면 날마다 먹었던 기억이 아련하기만 하다.
우리말로는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는다’고 소탐대실(小貪大失)이란 뜻으로, 영어에도 ‘한 푼 아끼려다 천 냥 만 냥 잃는다’고 ‘penny-wise and pound-foolish’란 말이 있지만 이기적이고 인색한 것이 개성사람 만이랴.
흔히 친척이나 동족이 남만도 못하다고 한다. 모르는 남이 잘살면 부러워하고 못 살면 동정하는데 형제나 동족이 잘되면 속상해하고 잘못되면 깔보면서 멀리 한다고. 어떤 한인은 제 상점 앞에 한국 사람이 기웃거리기라도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단다. 바로 옆에 같은 업종의 상점을 차려 덤핑하듯 도매가격보다 싸게 물건을 팔아 제 손님 다 뺏아갈까 봐.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를 버리고 떠나시는 임은 심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느니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 하는 것이 우리 민족성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다른 사람과 신경질적으로 비교하는 데서 쓸데없이 그야말로 백해무익한 우월감 아니면 열등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해심(海心), 커다란 마음가짐으로 보면 나보다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나보다 잘사는 사람도 못사는 사람도 없고, 나보다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없으며, 모두가 다 나의 분신임을 깨닫게 되어, 더 이상 치졸무쌍한 우월감도 열등감도 느낄 필요가 없게 되리라. 그러면 그 누가 되었든 이웃의 기쁨이 내 기쁨이요, 이웃의 슬픔과 아픔이 내 슬픔과 아픔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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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상/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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