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아 장 룩 하와이 부지사올해는 하와이 한인 이민 12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국인의 성공적인 정착을 축하하는 중요한 때입니다.
그리고, 하와이 한인사회가 차세대 번영을 도모할 수 있도록 힘써 온 개척자들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Donald Chang Won Kim은 하와이 한인사회의 발전을 이끌어 온 영향력 있는 지도자입니다.
Donald Chang Won Kim 선친은 1903년에 하와이에 도착한 최초 이민선조 중 한 분이었습니다.
Donald Chang Won Kim은 일생 동안 한인들의 하와이 이민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에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대한민국 서울에서 태어난 Donald Chang Won Kim은, 1958년 하와이로 이주하여 주립대에서 토목 공학을 전공, 학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졸업 직후에는 하와이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토목 공학 회사 중 하나인 RM Towill에 입사 했습니다.
Donald Chang Won Kim은 하와이 최초이자 유일한 한국계 미국인 은행인 오하나 퍼시픽 은행의 창립을 도왔습니다.
아울러, 비숍 박물관이나 환태평양 소사이어티, 미 해군 연맹, 동지회, 호놀룰루 로터리 클럽, 미육군 협회, YMCA, 호놀룰루 심포니 등 여러 단체에 참여하며 평생 지역사회 봉사에 헌신했습니다.
한미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한 Donald Chang Won Kim은 1993년 하와이 한인이민 90주년과 2003년 한인이민 100주년 기념행사를 주도했습니다.
이후 차세대 한인 지도자들에게 맡기고 일선에서 물러났습니다.
하와이 한인사회 일 뿐만 아니라, 하와이의 문화와 역사를 보호하는 일에도 몸을 바쳐 섬겨 온 Donald Chang Won Kim의 발자취를, 작고 5주기를 맞아 추모합니다.
문화를 기념하고 공동체를 육성하며, 한인 역사를 보존한 Donald Chang Won Kim의 유산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박재원 민주평통 하와이협의회장 / 미주한인재단 하와이 이사생전 김창원 회장과의 만남은 유난히 식사를 겸한 자리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들뻘 되는 사람과의 대화였지만 격의 없이 대해주셨고 그분의 생각은 늘 긍정적이었고 말씀에는 에너지가 넘쳤습니다.
나는 김창원 회장을 누구보다 우리 한인 커뮤니티를 사랑했던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굳이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커뮤니티를 위해 자기 희생을 할 줄 알고 또 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진정한 지도자였습니다.
생전에 미주한인이민 100주년 기념사업을 성공적으로 주도하며 미국 내 한인의 위상을 높인 것을 비롯하여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만큼 수없이 많은 나눔의 삶을 몸소 실천했던 그의 인격과 헌신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지도자의 덕목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의 헌신과 리더십을 통해 우리 동포사회가 많은 은혜를 입었다는 데는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며 우리 기억 속에 그분이 점점 잊혀지고 있다는 것 또한 아쉽지만 현실입니다.
특별히 올해 이민 120주년을 맞아 우리는 그분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가를 다시한번 실감하며 아무쪼록 고 김창원 회장께서 생전에 실천해 보인 리더십과 봉사의 씨앗들이 우리 한인사회 곳곳에서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어갈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또한 고인의 5주기를 맞아 조금 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이제라도 우리 동포사회가 동포와 조국을 사랑했던 그분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한 “김창원 기념사업”을 시작할 것을 제안해 봅니다.
그리고 그 기념사업을 통해 우리는 물론 후세대에 이르기까지 고 김창원 회장을 기억하고 우리 한인사회가 제2, 제3의 김창원을 많이 배출할 수 있도록 차세대 지도자 육성을 위해 기회를 만들어 주고 전통을 만들어주는 마중물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김동균 건국대통령 이승만 재단 회장내가 김창원 회장을 처음 만난것은 1973년경에 이승만 대통령이 1918년에 세운 한인기독교회에서 였다고 기억합니다.
그 후 오랜 기간 김창원 회장님과 친분을 유지하였으며, 특별히 건국대통령이승만 재단의 회장과 부회장으로서 10여년을 함께 봉사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기회가 있었습니다.
내가 기억하는 김창원 회장님은,
1. 활력이 넘치고 정열적이었으며 추진력이 넘치는 분이었습니다.
2. 나눔을 실천하는 분이었습니다.
3.기독교인으로서 가치관이 확실한 분이었습니다.
4. 우리의 조국과 한민족을 사랑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도 똑같이 사랑하는 분이었습니다.
5. 조국에 대한 바른 역사관을 갖고 한민족의 문화를 사랑하는 분이었습니다.
6. 하와이 한인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였으며, 특별히 한인 미주 100주년 기념사업회, 총회장으로서 각종 100주년 기념사업을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하고 “ 미주한인재단”을 설립하여 하와이 이민역사의 보존과 한국문화를 후세들과 로컬사회에 알리고 한인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크게 공헌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신 분이었습니다.
우리는 김창원 회장님을 롤 모델로 그의 정신과 실천력을 본 받아서 우리 모두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한인들의 위상을 높이고 후세들과 로컬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한인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해 갔으면 좋겠습니다.
김명희 한국도서재단 이사장제 기억 속의 김창원 회장님은 참 기독인의 모습 그 자체입니다.
2009년 한국에서 박종율 이라는 분 이 제 셀폰으로 연락을 해와 하와이에 계시는 김창원 회장님과 꼭 연락을 하고 싶은데 도움을 요청해와 한국일보에 연락해 김 회장님과 연결을 해 준 기억이 새롭습니다.
한국에서 연락 온 분의 사연은 1997년 유학생으로 하와이에 건너와 갖은 고생으로 UC샌디에고 대학원까지 진학하게 되었지만 마지막 학기 등록금을 마련할 길이 막막해 고민하던 중 문득 김창원 회장님이 떠올라 무작정 하와이로 건너와 회장님을 찾아가 도움을 호소했다고 합니다.
회장님과 박씨의 인연은 하와이에서 공부할 당시 영사관에서 열린 행사에서 대금을 연주했고 당시 회장님이 박씨의 연주를 칭찬하며 감사했다고 인사를 나눈 것이 전부였다는 것이었습니다.
회장님은 박씨의 요청에 아무런 조건 없이 등록금을 학교로 보내 주었고 무사히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가 박정 어학원 전주캠퍼스를 운영하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한국도서재단 이사장으로서 저는 천국에서 보내 온 김창원 회장의 기부금 소식을 이 자리를 빌어 전하게 되어 고맙게 생각합니다.
한국도서재단은 문숙기/유진 부부의 기부금으로 조직된 비영리단체로 미국 최초로 주정부 도서관 시스템으로 대출이 되고 있고 20여년간 100만달러 상당의 한국서적과 DVD, 전자도서 등을 하와이 주민들에게 대출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역사는 하와이 동포들의 기부와 자원봉사자들 의 노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 입니다.
김 회장님도 생전에 한국도서재단의 후원자의 한 분이셨습니다.
2019 년 어느 날 하와이 비영리 단체인 커뮤니티 화운데이션에서 연락이 와 도서재단의 정보를 보내주고 얼마 후 기부금이 도서관으로 전달되었습니다.
2018년 돌아가신 회장님이 보내주신 기부금 이었습니다.
천국에서도 하와이 동포를 사랑하고 조용히 기부를 실천하신 회장님을 생각하며 진정한 기독인의 모범을 보이신 분으로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회장님을 닮아 가기를 노력합니다.
아만다 장 하와이 한인문화회관 회장미주한인 이민 120주년, 코리안 아메리칸인 우리의 과업은 근대 이민자들을, 자랑스러운 미국 속의 한국인을 우리 후손과 타민족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특히, 하와이 출신의 자랑스러운 한국인, 고 김창원 어르신의 발자취를 후손들에게 알리는 것이 오늘 우리들에게 주어 진 의무이자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고 김창원 어르신은 생전에 하와이 동포사회 뿐만 아니라, 하와이 주류사회에서도 잘 알려진 인물이었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사업가로, 엔지니어로, 자선사업가로, 그리고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모두에게 잘 알려진 분이었습니다.
고 김창원 어르신의 업적은 일일이 다 적을 수 없을 만큼 많고 인터넷을 검색하면 대부분 알 수 있지만, 저의 특별한 기억을 이 자리를 빌어 돌아봅니다.
어르신께서는 모 한국대학에 20만달러 기부를 작정하셨고 저는 변호사로서 그 대학의 미국 재단 설립을 하는 일과 재단의 재무이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12월이 가기 전에 저의 사무실로 20만달러 수표 한 장을 우편으로 보내주셨는데 분실했습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평소보다 더 많은 우편물을 받게 되는 12월, 저는 그 수표가 담긴 봉투를 보았지만 그 우편물이 온데간데 없어진 걸 발견했습니다.
연말까지 기부가 이루어져야 하는 상황이라, 그 다음날 어르신께 전화를 하여, 제가 보내주신 우편물을 분실하였다고 고백하고 사과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김창원 어르신은 중요한 우편물을 분실한 것에 대한 책망이 아니라 크리스마스 전후를 감안하여 보내주신 우편물을 받지 못했다고 해도 믿을 수 있는 상황인데,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한 저를 칭찬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바로 저는 고 김창원 어르신의 사무실인 알엠 토윌 엔지니어링 회사에 직접 가서 새로 발행 한 수표를 가지고 옴으로 일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고인의 덕망과 인격을 보여주는 일예 라고 하겠습니다.
어르신이 작고하신지 5년이 지난 이 세상은 여전히 그 분의 빈자리가 메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분의 존재가, 그분의 삶이 하와이 한인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기에 어르신이 계시지 않은 그 빈자리는 너무나 크고, 감히 누군가 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윤삼실 전 한인양로원장어떤 사람은 만나서 많은 얘기를 나누었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별로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 진심 이 전해져서 오랫동안 기억 에 남는 사람이 있습니다.
김창원 회장님은 후자에 속하시는 분입니다.
한인양로원 행사에 오셔서 몇 번 뵌 것이 전부이고 100주년 행사를 주관하셨을 때 같이 일하시던 분들로부터 전해 들은 몇 가지가 회장님에 대한 기억의 전부입니다
그러나 김창원 회장님을 생각하면 나 ! 나! 나! 를 외치기가 쉬운 이 세상에서 남을 위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하는 것이라는 것을 일찍이 깨달으시고 실천하신 분으로 기억합니다.
하와이 한인 이민 백주년 행사를 계획 하시고 실행에 옮기시면서 모든 작은 일 하나까지 세심하고 치밀하게 행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하나에서 열까지 정성을 들이셨던 일은 같이 행사를 주관하신 분들뿐만 아니라 행사에 참석했던 사람들도 모두 보고 느꼈을 줄 믿습니다.
'누구나가 다 큰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작은 일을 큰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라고 하신 성녀 데레사의 말처럼 회장님은 작은 일까지도 큰 사랑 과 정성으로 최선을 다하시는 모범을 보이셨다고 생각합니다.
김창원 회장님은 어떤 사람의 지위나 혹은 그가 이룬 업적보다도 더 훌륭한 것은 그가 어떻게 사람을 대하였고 어떻게 영형력을 끼쳤나를 생각하게 하는 분이며 길이길이 추모하며 감사 드리고 싶은 분 입니다
회장님의 5 주기를 맞아 회장님 을 추억하며 사람은 한번 나서 모두 한 곳으로 가지만 그 분의 남기신 선한 영향력은 우리가 기억하고 추모 하는 한 영원한 것이 아닐까 생각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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