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5일은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 한국의 ‘어린이날’이었다. 소파 방정환이 1923년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제정할 무렵은 국가적으로 우리가 가난한 일제 식민지였던 데다 사회적으로는 유교적 가부장제가 여전히 뿌리 깊던 시대였다.
이 시절 어린이들은 인격적 대우를 받기보다 가장을 돕기 위해 농촌이나 공장 등에서 힘든 육체노동에 동원되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신체적, 성적 학대 등 웬만한 아동학대는 묵인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이를 안타깝게 여긴 방정환 선생이 미래의 주인공인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색동회’를 조직하고 어렵사리 ‘어린이날’을 만들었던 이유다.
그로부터 10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한국이나 미국 할 것 없이 아직도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는 아동학대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아동학대라 함은 부모나 보호자 등의 성인에 의해 아동을 상대로 자행되는 신체적 학대를 비롯, 성적 학대, 정서적 학대, 유기와 방임 등의 네 가지 유형의 행위를 일컫는다.
한국 보건복지부의 통계에 따르면 2020년 한 해에만 3만 905건의 아동학대가 있었고, 이로 인해 사망한 아동은 2017년~2021년간 연평균 38명에 이른다. 미국도 별반 다르지 않아 어린이의 7명 중 1명은 아동학대나 방임의 피해자며, 이로 인해 2020년 한 해에만 1,750명의 아이들이 사망한 것으로 질병예방센터 자료에 나타났다.
피해자가 아이들이기 때문에 신고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현장에서의 아동학대는 더욱 심각할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아동학대란 게 은밀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피해 사례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동학대를 알게 되면 누구나 신고할 수 있지만 직접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로선 번거롭기만 할 뿐 별 득 되는 게 없어 대부분 신고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책의 일환으로 한국뿐 아니라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도 직무를 수행하면서 아동학대를 비교적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직업군의 사람들에게는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경우 당국에 의무적으로 신고토록 법으로 정해놓았다. 이들을 ‘의무신고자’(mandatory reporter)라 부르며 통상적으로 교사, 의료서비스 제공자, 사회복지사, 경찰관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의무신고자는 본인의 경험이나 직업적 전문성을 바탕으로 아이들이 학대나 방임에 연루되었다고 의심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으면 즉시 신고해야 하며, 이를 어기면 처벌을 받는다. 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뉴욕주의 경우 최고 1년 이하의 징역과 신고 불이행으로 인해 생긴 민사상 손해에 대해서도 책임을 질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기계적 신고 시스템이 효율적이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예컨대 뉴욕 로체스터 대학교의 ‘미칼 라즈’(Mical Raz) 교수 겸 의사가 미국 소아과 학회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의무신고자들이 인종적 차별이나 편견으로 저소득층이나 소수인종 부모들을 아동 학대자로 신고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의무신고자들이 처벌을 면하기 위해 신고를 남발하는 경향이 있고, 이로 인해 조사기관의 업무량이 많아져 오히려 학대나 방임에 대해 신속, 정확한 대처가 어렵다는 것이다.
라즈 교수의 반론을 개선하려면 해당 조직을 늘리고 전문인력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러려면 예산이 필수적으로 따라주어야 한다. 그럼에도 호쿨 뉴욕주지사는 이번 회기에 아동학대 조사담당 주정부 부서(Office of Children and Family Services)의 예산을 45억 달러에서 8억 달러를 삭감토록 요구하였다는 우울한 소식이 전해진다.
우리 사회의 미래는, 미래의 주인공인 어린이들을 어떻게 잘 길러내고 지켜내느냐에 달려있다고 볼 때 응달에서 이루어지는 아동학대 문제는 우리 모두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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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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