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요인터뷰] 차세대 리더를 만나다 - LA시 인간관계위 캔디스 조 커미셔너
▶ 하버드 거쳐 컬럼비아 로스쿨 엘리트 코스, 뉴욕 검찰서 맹활약하다 AAPI 정책디렉터로…‘아시아계 권익 신장·증오 대처 선도 중책’

AAPI 에퀴티 얼라이언스 정책디렉터로 최근 LA시 인간관계위원회 커미셔너로 발탁된 캔디스 조 변호사.
LA에 본부를 둔 대표적인 아시안 권익신장 단체인 AAPI 에퀴티 얼라이언스에서 핵심 직책인 정책디렉터를 맡고 있는 캔디스 조(40) 변호사는 한인 뿐 아니라 아시아계 커뮤니티 전체에서 주목하고 있는 차세대 리더 중 한 명이다. 아이비리그 명문대를 나와 리차드 더빈 연방상원의원 보좌관을 거쳐 뉴욕시 검찰에서 승승장구하던 조씨는 가족들이 있는 LA로 와 아시안 권익을 위해 일하는 분야에 투신, 민권 변호사로 활약 중이다. 최근에는 캐런 배스 LA 시장에게 발탁돼 LA시 커미셔너로도 활동을 시작했다. 정부 정책 전문가로 손꼽히는 그는 지식과 경험을 갖추고 LA 시정부는 물론, 한인 및 아시안 권익과 정치력 신장에 기여할 수 있는 인물로 주목받고 있다.
■아버지의 암 진단, 인생을 바꾸다
198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LA 카운티에서 초등학교부터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훌륭한 학생이었다. 로랜고교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 조지타운대 공공정책 석사, 컬럼비아대 로스쿨 법학박사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저희 부모님은 항상 저에게 삶에 대한 높은 기준을 갖길 원했어요. 다른 많은 1세대 한인 이민자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저희 부모님도 자신들보다 자녀들이 더 나은 교육을 받고 더 나은 삶을 살기 바라신 거죠. 그러기 위해 노력하셨고, 저 또한 그에 부응하길 원했죠.”
조씨는 아직 청소년 시기이던 17세 대 인생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아버지는 자영업자이며 보험도 없었어요. 당시 보험이 없으면 치료받기 정말 힘들었어요. 아버지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고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기 한 달 전쯤 세상을 떠나셨고 가족들은 힘든시간을 보냈죠.”
이후 대학에 들어가서 읽은 책이 그의 진로를 결정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클린턴 헬스케어 플랜에 대한 책이었다. 조씨는 “빌 클린턴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여사가 보편적인 건강보험을 제공하는 정책을 추진했지만 실패한 것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저에게는 바이블이 됐다”고 말했다.
“책을 통해 두 가지를 가장 크게 배웠어요. 당시 전국에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들이 5,000만명에 달했고 나의 아버지, 우리 가족이 겪은 일이 특이한 일이 아니라 이 나라에서도 흔하게 일어나는 비극이라는 것고, 두 번째는 이러한 상황이 만들어 진 이유는 우연이 아니라 수십년간 최고위 정책 입안자들이 내린 결정의 산물이며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었죠.” 그는 그렇게 자신이 가야할 방향을 찾았다.
■정책 전문가의 꿈을 품다
대학 4학년때부터 의회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지 고민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쉽지 않았다. 멘토나 인맥을 찾는 것은 물론, 관련 정보를 찾는 것도 지금처럼 쉽지 않았다. 그래서 고민해 찾은 방법이 국회가 있는 워싱턴DC에 위치한 조지타운 대학 석사과정에 관련 전공으로 진학하는 것이었다. 전액 장학금을 받고 들어간 조지타운 대학에서 생긴 인맥을 통해 결국 테드 케네디 당시 연방상원의원 사무실에 인턴십 직원으로 들어가게 됐다.
좋은 인연도 만났다. “거기서 만난 동료 중 한인 고위직(수석고문)이 있었는데 한인 정치력 신장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이었어요. 그는 내가 한인인 것을 알고 먼저 말을 걸어왔고 가까워진 후에는 제가 찾고 목표로 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에게 말했죠. 이후 그는 내가 다음 행선지를 정하는데 큰 도움을 줬어요.”
그렇게 석사학위를 받은 후 리차드 더빈 연방상원의원실에서 일하게 됐다. 유권자와 소통하는 일에서 시작했지만 얼마 안가 그 성실성과 능력을 인정받아 정책 담당자로 승진, 중용됐다.
이후 역시 명문 컬럼비아대 로스쿨에 진학했다. 조씨는 “의원 사무실에서 일하다 보니 정책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법적 지식과 경험, 전문성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며 “법조계 전문가들은 정책 문제를 일반인들이 생각지 못한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탁월했고 저는 그 능력이 꼭 필요했었다”고 말했다.
■뉴욕시 검찰서 촉망받는 인재로
로스쿨을 졸업후 뉴욕시 검찰에서 법조계 경력을 시작했다. 2012년부터 2020년까지 9년간 다양한 활약을 하며 고위직인 참모차장까지 올랐다. 담배 쿠폰 금지안, 가향 담배 규제안 등 시에 큰 영향을 끼친 법안들 작성에 참여했고, 시를 상대로 한 대형 담배 회사의 소송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는데도 기여했다. 또 트럼프 행정부 시절 다수의 이민자 보호 정책들을 마련하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이 외에도 로펌, 로스쿨, 사법기관과의 파트너십 개발, 뉴욕시 헌장 개정 등 다방면에서 활약을 펼쳤다.
■LA에서 다시 시작
조씨는 이후 가족들이 살고 있는 LA로 과감히 이주, 바로 아시안 권익신장 단체인 AAPI 에퀴티 얼라이언스에 합류했다. 조씨는 “많은 한인들이 이민을 온 미국은 백인 우월주의가 지배하는 나라였고, 심지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종적 위계가 존재하고 있다”며 “제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인 및 아시안의 권익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 부터 해왔는데 마침 AAPI 에퀴티 얼라이언스를 알게되고 그곳에서 일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겨 망설임없이 합류했다”고 말했다.
AAPI 에퀴티 얼라이언스는 ‘차이니즈 어퍼머티브액션(CAA)’,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등과 함께 아시안 증오 신고 센터를 운영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단체의 중책인 정책디렉터를 맡고 있는 조씨는 정책 조언 외에도, 데이터베이스 개발, 정부 개혁 관련 시민참여 활동 독려 등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는 지난 1월 캐런 배스 LA시장이 아시안 단체 대표들을 초청해 아시안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에 주요 초청자로 참석하기도 했으며, 지난 3월엔 배스 시장이 LA시 인간관계위원회 커미셔너로 임명하기도 하는 등 LA에서도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기대되는 차세대 리더
다수의 정계 및 비영리 단체 관계자들은 해당 분야에서 조씨 만큼의 경력과 통찰력을 가진 인물이 드물다며 지금보다 훨씬 더 중용되야 하는 인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앞으로 그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조씨는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삶에 더 많은 선택권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싶다”며 한인사회 정치력 신장에도 기여하고 싶다고 전했다.
그는 “전통적으로 정책 결정 분야는 백인들의 주도하고 있으며, 그동안 많은 모임에서 제가 유일한 유색인종, 유일한 아시안이었던 적이 많다”며 “앞으로 우리 공동체가 우리의 삶과 가족의 삶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강력한 힘, 정치적 힘을 갖는데 일조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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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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