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舊·친할 친 오랠 구) 오래도록 친하게 사귀어 온 사람
여러 부류의 친구가 있고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다. 속속들이 다 아는 오랜 친구가 좋기는 하지만 그런 친구들은 대개 한국에 있고, 한국에선 그리 친하지도 않은데 몇살? 어디 살아? 몇 평? 남편은 뭐해? 애들은 결혼 했우? 한 다리 건너면 다 알아낼텐데도 캐묻는다. 그래서 미국 친구들이 좋을 때도 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기에 낯설고 조심스럽고, 예의를 지켜야하고, 함부로 험한말을 하거나, 스스로 말하지 않으면 시시콜콜 캐묻지 않는게 때로는 편안하고 적당한 거리를 둘 수 있는 그렇게 만난 미국에서 만난 친구도 소중하다.
또한 마음이 통하고 무엇인가 함께 하는 즐거움이 있다면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있다. 물론 젊었을때는 흥! 나보다 어린게 어따대고 반말이야! 내가 언니고 누나인데 했지만 60이 넘어 할머니가 되고 나니 아무리 언니라도 내 맘에는 귀여울 때도 있는 친구 같다.
젊은 아줌마들이 다니는 문화교실은 항상 결석생이 있다. 자식, 남편, 시댁, 친정, 지지고 볶을일이 얼마나 많은지 뭔가가 터지고 바쁘다. 어른들 배움터는 세상 조용하고 별일이 없고, 어느정도 정리가 되어선지 대개는 편안해보이고, 본인이나 남편이 아프지 않으면 거의 결석이 없다. 돈 벌어 온다며 자기만 위하라던 남편은 은퇴하여 이제는 한구석 쇼파에서 핸드폰과 TV만 만지다가 운동하러 조용히 나간다. 다행히 내 짝은 아직도 아침이면 런치박스 들고 마누라 인사를 받으며 일하다 힘들다고 투정하면 공무원 보험이 좋으니 70까지만 하라고 비위 맞추고 살살 달래며 살아간다. 모름지기 미국이나 한국이나 그저 남자는 해 뜨면 나가고 어둑해서 돌아와야 집안이 편안하다.
또한 부부나 가족이 오래도록 사이가 좋으려면 따로 따로 하는 취미생활이 필요하다. 한글학교를 그만둔 뒤에는 그동안 하고 싶었던 스마트폰, 동양화, 그림 아트반엘 다니고 있다. 아트반은 그림만 그리는줄 알았더니 매주 다른 작품을 만드니까 재미가 있다. 얌전히하는 뜨게질이나 나물 다듬기를 못하는 나는 내 맘대로 이리저리 꾸미고 만드는 아트반을 바쁘니까 참 좋다. 짭짤한 소금 뿌려 만든 은하수가 있는 파란 하늘, 낡은 집이 있는 풍경화, 그릇과 과일이 있는 정물화, 어지러운 환각 냄새에 취한 메니큐어 접시, 빵빵한 캠버스에 고흐처럼 아크릴 유화로 그린 커피 향기 가득한 풍경화, 알록달록한 부채, 티백 종이 그림, 양말 인형, 모든게 우리 손을 거쳐 나름대로의 작품이 된다. 찬찬히 살펴보면 그 주인의 성격과 생김새와 닮아간다. 나처럼 통통하고 자유롭거나, 얌전하고 맑고 투명하거나, 담백하기도 하고, 묵직하게 휘몰아치듯 거세고 나타난다.
우리에겐 성적표도 없고, 시험도 없고, 봄 가을로 아쉬운듯 할 때 학기가 마무리 되고 더 하고 싶으면 다른 곳에서 배울 수 있다. 또한 종강때마다 갈고 닦은 요리의 고수들이 해오는 맛있는 남이 해 준 음식으로 푸짐하게 즐긴다.
조근조근 몇번씩 여러번 설명도 잘 해주는 선생님과, 설명도 건성들으며 도란도란 얘기해도 혼내는 이 없고, 누구네 아저씨가 다쳤다고 하면 내식구 일같이 걱정하고, 어디가 아프다면 내가 먹는 특효약도 알려주고, 맘씨 고운 친구가 타오는 구수한 구기자 차, 작두콩차, 달콤한 과자와 사탕을 맘껏 먹어도 임플란트 이빨이니 썩을 일 없고 세상 편하고 오늘 배운거 내일 잊어도 다시 배우면 처음인듯하여 좋다. 셀폰반에서도 몇년째 만나는 친구는 또 만나서 배워도 언제 배웠냐며, 천연덕스럽게 “네, 정말 그런 방법이 있군요” 감탄하고, 집에 와 나도 알 수 없는 노트를 보면 지난 학기에 배운거지만 다 괜찮다.
오랜 친구는 아니어도 다정한 친구들과 그저 무탈하게 조금씩만 아프면서 다음 학기에 또 만나길 바라뿐이다.
나 또한 젊은 날 한껏 위로 올라가며 웃었던 눈꼬리와 입꼬리가 아래로 축 쳐졌지만 틈날때 마다 치켜 올리며 살아야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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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희 전 한국학교 교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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