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라는 태두리 안에서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생활하면서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사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야 도움을 주고받고, 보호도 받을 수 있어 생존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2,500년 전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말을 했던 이유다. 우리 뇌의 구조를 보더라도 이해가 간다. 10조개나 되는 뇌세포들이 각자 홀로 있으면 아무런 존재 의미가 없다. 그들이 서로 서로 가지를 쳐 신경전달 물질들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 회로(신경망)를 형성해야 뇌기능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과 뇌기능의 기본 목적은 자신의 생존과 자손의 번식을 위해서다.
약 20만년 전에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촌에 모습을 드러냈다. 신체적, 환경적, 수적으로 불리한 상황에도 호모 네안데르탈인을 비롯 다른 호모종을 제치고 지금의 현생인류로 살아남게 된 이유가 있다. 진화 발달과정에서 지혜롭고 현명하게 상호 협동하는 연결된 삶을 보여준 결과였다. 하지만 서로 함께 살다보면 여러가지 일로 부정적 스트레스가 쌓이게 마련이다. 원시시대 때 맹수들의 위험에 잘 대응하는 유전자가 있었다. 위험 상황에 도망가거나 싸우거나 하는 행위의 결과는 기껏 5-10분만에 결판이 났다. 지금은 매일매일 부딪치는 각종 스트레스가 맹수 대신 생존에 위협을 준다. 문제는 현대인의 스트레스가 단 기간에 끝나지 않고, 스트레스에 과잉 반응을 보여 뇌에 계속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결과 우리 뇌의 편도체는 필요 이상으로 활성화되어 몸과 마음에 해를 입히고 있다.
해로운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의 체액이나 공기를 통해 타인에게 급속히 퍼지는 것이 전염병이다. 정신과 환자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말이 스트레스 아웃(Stressed out)이다. 스트레스는 자연스런 감정으로 삶에 없어서는 안 될 평생의 동반자지만 신체적 전염병처럼 주위 사람들에게 퍼지는 심리적 전염병의 주요 요인이란 사실이 문제다. 실험에 의하면 스트레스에 직접 노출되지 않았지만 스트레스로 고통 받는 사람을 지켜보는 주위 사람들의 콜티졸(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25% 가량 올라가있었다. 자신과 가까운 사이면 거의 40% 상승했다. 이런 실험 결과를 볼 때 실제 스트레스를 받지 않더라도 생각하거나 상상하는 것만으로 우리 뇌는 같은 반응을 보인다. 아주 가까운 부부, 자식 간의 스트레스가 가장 심하게 우리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부정적 스트레스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17세기 철학자 겸 수학자, 신학자인 데카르트는 몸과 마음이 서로 다르다는 이분법 개념을 주장했다. 의료체계도 이분법으로 몸을 치유하는 의사와 마음을 치유하는 의사로 나누어졌다. 그러나 의학의 발달로 지금은 몸과 마음이 서로 연결된 하나의 공동체로 생각한다.
대중을 상대로 말하는 직업인 성직자, 교육자, 상담사, 정신과의사는 매일 사람들의 고충을 듣고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노력한다. 그런 감정노동을 많이 하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스트레스는 쌓여만 간다. 그러다보면 항상 하던 일에 쉽게 피로하고, 왠지 일하기 싫고, 능률도 떨어지는 무기력, 허무감에 자신은 물론 동료, 가족, 심지어 환자들에게까지 짜증과 분노를 나타낸다. 일에 지친 심한 과로로 인해 신체적, 정서적, 정신적 탈진되는 상태가 번아웃이다.
동료 의사 중 심한 번아웃 증세를 보여 일찍 은퇴하거나 알코올, 약물남용, 노름에 빠지고, 때론 부도덕한 이성관계로 가정과 직장에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를 보았다. 당시 그런 동료를 바라보던 나 자신도 소진 비슷한 증세를 느꼈던 경험이 있다. 불안장애, 우울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신체화 장애 등이 주위 사람들에게 전염이 잘 되는 정신질환이다. 자신의 병이 전염 안 되도록 스스로 치료를 받는 것이 사회 공동체의 선을 위해 모두에게 이익을 주는 넌 제로섬(Non Zero Sum) 게임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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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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